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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그림자가 묻는다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9. 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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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그림자가 묻는다 ”

 
 
 
시 계간지에 나온 '산 그림자'를 읽다가 내가 버려두고 온 터럭 생각이 났다. 아니 짐승의 터럭이 뭉쳐 있던 산길을 생각했다. 해질녘 산길에서 소름이 돋던 터럭. 이제는 사람들 발길에 쓸려 숲길 어느 틈엔가 수채구멍에 걸린 머리카락처럼 있겠지만.
그때는 그 터럭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기보다는 급하게 나를 불러세울 것만 같은 어두컹컹한 울부짖음으로 느껴져 소름이 돋았던 것인데, 그래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산이 죄어오는, 물레질 소리 같은 삐걱거림에 도망치듯 내려왔던.


어수룩한 짐승이 산을 내려와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태양이 탕, 탕, 짐승의 등을 조준하며 총을 쏘아대고 있다
허기를 달래려 산을 내려온 짐승이 울부짖으며 그러면서도
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때
그것을 보는 우리의 허기는 민망해진다
짐승의 순한 눈망울에 걸린 우리의 형체는 먹잇감이 아니어서
그저 움직이는 나무일 뿐이어서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짐승은 결국 산을 파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산의 메아리나 먹고 헛배를 부를 것이다

침묵하고 있는 산과
허기로 침묵하지 못하는 짐승 사이에서
우리는 어정쩡 산책을 하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본다면 우리도 짐승처럼 우우 울부짖으며
산을 파먹게 될까봐
우리의 정신도 허기질 대로 허기져 있었으므로

김충규, <산 그림자> 전문


 사실 그 길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이력이 난 포장도로였다.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허기질 대로 허기져 있는 몸이 저절로 찾아가는 참회의 길인 지도 모른다. 울부짖으며 길을 내는, 그리하여 다시 찾아올 때를 위해 꼬리표를 달아두는 자동기술기법과도 같은 길.
 
 그곳에는 어김없이 버려진 둥지 하나, 허투루 쌓는 돌탑처럼 있다. 돌구럭 하나 하나는 파편일 뿐,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의 기원만이 있다. 전혀 비밀스럽지 않은, 공공연한 바람들만이 눙쳐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어리숙하고 허기진 짐승을 어쩔 것인가. 산의 메아리나 먹고 헛배나 부르는 산 그림자를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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