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갈피 ”
그 많은 책갈피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점에서 끼워주던 코팅된 책갈피부터
몇 주년 기념 14K 책갈피까지
마침 갈피끈이 달려있는 책이었으면 모르지만
대부분은 읽던 책에 끼워두고 잊어버렸겠지
읽다가 만 책이라면 손때가 묻은 중간 어디쯤 꽂혀 있겠지만
다 읽어버린 책 어디에 끼워두기가 그래서
제대로 읽어보자고 어느 법문 사이에 끼워두고
영영 찾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책갈피를 잊었던 까닭은
책날개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들짝 뒤집어지는 낱장 표지가 아니라
날개를 단 책,
접힌 날개를 깃마냥 읽다 만 쪽 깃털 속에 묻어두고
다시 헤아리는 것도 괜찮아서
책갈피를 영영 잊어버리고 말았으리라
책날개를 이용한 갈피는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일회용 종이컵을 쓰는 것처럼
좌우 날개를 알맞게 써서 갈피를 잡는다는 것까지
잘못 입은 옷처럼 비뚜름해 보여
뭔가 책에서 얻지 못한, 아니 난독하거나
오독하며 지나쳐버린
갈피를 못 잡는 생각들만 같아
미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잊어버린 책갈피들은 책 속에서
지난 가을날의 단풍처럼 저릿저릿 숨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한번쯤 더 들춰내어 생각의 꼬투리를 벗었으면 하고
한번에 갈라지는 잘 익은 수박처럼 짱짱하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갈피를 꽂았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오거나
밥 먹으라고 불렀거나
알 수 없는 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들다가 깼거나
다시 살자고, 맞교대 또는 2교대 3교대의
신들메를 고쳐 신었던 자리였겠지
다시 찾아오리라, 돌아보던
옛애인의 골목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허투루 놓치거나 저버린 좌표가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숨 한자락 그곳에 파닥거리며 살아있으리라
사랑에 데이거나 아멸차게 등을 돌렸어도
사람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이기에
누구는 눈물 몇 줄기 떨어뜨리고
누구는 부석부석 떨어지는 돌 같은 비듬살을 떨어뜨리며
갱신갱신 건너며 가슴에 손을 포개듯
책장을 닫았으리라
이제는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를
구설에 오른다고 해도 환란을 피하듯
책갈피와 함께 눈보라와 바람을 끼워놓으리라
책갈피는 내 스스로 걸어가야 할 길의 시작점이자
벌써 내딛고 있는 걸음걸음의 진앙지이기에
책장을 덮는 날이 오면
밀화密話부리 새였던 것처럼 가슴에 꽂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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