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를 찾아서 ”
두 번의 구술 자료집을 낸 적이 있는 사직동 옛 골목을 지나다가 일종의 페티즘 같은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문고리. 대문고리? 말이 맞나 싶지만 오래된 대문마다 문고리가 달랐는데 오래된 골목일수록 사자 문고리가 많았다. 왜 사자였을까? 오래된 사자 생각이 났다.
서커스 천막을 치고 공중그네 3회전 돌았다가 받아내고
철망 안에서 오토바이가 돌아도 생각나는 건
늙은 사자, 비루 먹은 개마냥
어슬렁거리지도 못할 만큼
좁은 철창 외투를 입고 눈곱 낀 눈시울에
눈물길만 깊어보이던
사자 생각
이종수, <서커스>
오래된 철 대문이든 나무 대문이든 사자들은 서커스단과 함께 왔던 그 사자들을 닮아있었다. 외화를 볼 때마다 왼고개를 틀고 포효하던 사자가 아니었다. 서커스의 사자는 언제 출연할 지도 모를 좁은 철창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대문마다 부식되어가는 사자들도 그랬다.
몇 번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자칫 개처럼 보이는 것은 문고리를 들여다 볼 때마다 짖어대던 개 때문이었을까. 아마 돌출된 바위가 그렇듯 비와 바람, 햇빛을 단 세월 탓이겠지. 사자의 눈이 깊었다. 슬픈 눈이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저 창자 깊숙이 담고 있을지 모를 야생 한 줌도 뱉어내지 못하고 찌들어가는 사자 생각이 나서 사자 문고리만 찾아다녔다.
코뚜레는 아니고 입에 쇠고리를 문 형태들이 한 곳에서 주물되어 나온 사자머리들은 집 주인을 닮아가는지 하나같이 다른 얼굴이다. 처음 나온 얼굴은 심바처럼 늠름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주술이 서려있었지만 같은 문을 지키고 있는 사자들마저 다른 얼굴이다. 엄숙하기도 하고 비장해 보이기도 하고, 문고리를 물지 않고 있는 사자와 문고리를 물고 있는 것 또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대부분이 비슷한 색깔로 대문을 칠하기는 하지만 짙푸르다 못해 검은 대문들보다 파란 대문에 사자들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다른 색깔보다 바래는 속도가 느린 파란 색깔의 특성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자의 원형이 다른 색깔에 비해 오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늙은 사자는 쇠고리를 물 힘도 없다. 백수의 제왕답게 갈기털을 휘날리면서도 이미 저 세상(고물상?)으로 떠난 짝 잃는 신세로 간신히 부실한 고리를 아물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대문을 활짝 열어본 일이 몇 년 사이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 문이 떨어지도록 열다 고리 먼저 백수의 이빨처럼 허물어진 뒤 다시는 열 일이 없어 그대로 둔 세월 탓이겠지.
어느 집 사자들은 마법에 걸린 듯 멈춰버린 시간 속에 붙박혀 있는 듯하다. 먼지와 녹을 털어내면 금방이라도 꿈틀하면서 콧김과 함께 빗장과도 같은 문고리를 뱉어버리고 포효할 것처럼. 나니아 이야기에 나온 아슬란도 황금빛 갈기를 휘날리다가도 더 극악한 힘 앞에 예수처럼 팔과 다리를 내놓은 적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힘 앞에 일초의 틈도 없이 멈춰버린 그때의 표정으로 말이다.
어느 집 사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자들이었다. 좀처럼 쓰지 않는 색깔을 입힌 대문, 그 자체였다. 몇 번을 다른 색깔로 입혔을 테지만 아무래도 사자 체면이 말이 아닌 듯 문고리마저 내뱉고 시위하고 있는 듯한 날것 아닌 날것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색깔로 연출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서로 다른 내면의 얼굴 같아 보인다. 몇겹의 칠 자국을 긁어내면 보일까.
예술가는 아니지만 작정하고 대중예술 운운하기도 부끄럽지만 저 사자머리들만 모아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군상이 만들어내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나 각자 다른 대문을 읽고 그 대문을 가면 삼아 들어앉았을 집과 사람 이야기가 보이는 것 같다.
아니지. 사자머리만이 아니라 대문을 통째로 뜯어야 할까? 어려운 일이겠지. 이 대문은 사자머리에 비해 좀 더 세련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집과의 차별을 두고자 한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문고리를 잃은 사자머리를 따로 가져다 붙힌 듯한 느낌도 나고, 이러다 전시회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닌지. 대문이 없으면 사자머리야 고물상에 쌓인 바퀴나 다름 없을 테니까. 걱정도 팔자다. 아무튼 이런 승부욕 비슷한 것 때문에 예술을 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맹랑한 사자 같으니! 외주한 제작사가 다른 곳인듯. 최근의 일인 듯 보이지만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캐릭터에 가깝다. 무슨 꽃도 아니고, 그 비슷한 문양을 만들려다가 탄생한 사자 같다. 그도 아니면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석탑이나 돌확?을 지고 있는 사자 같다고나 할까. 라이온스? 옛 사직 골목에 있었던 시멘트 사자동상? 역시 고양이과답다는 결론밖에.
어딘가 교회에서 보았던 예수의 얼굴과 비슷하다면 벼락맞을까. 어쩌면 가장 사자다운 듯 보이면서도 숭고해 보이는 얼굴이다. 대문과 함께 잘 늙었으면서도 위용을 버리지 않은, 안에 감춘 포효 그 자체다. 백수의 제왕 수사자가 암사자들이 사냥해 놓은 먹잇감을 취하는 게으른 권력인 듯 보여도 먹잇감을 노리며 깐족대는 하이에나 앞에 나타나 단단히 겁을 주듯 다리 몽댕이 하나 부러뜨려놓던 수사자를 닮았다. 아니 그렇게 나서기 전, 필름을 거꾸로 돌려 멈춘 얼굴이라고 할까.
사실 문고리는 쓸모가 없다. 문고리가 떨어져도 사자머리만으로도 충분히 벽사든 집을 지키는 단순한 집사의 노릇이든 다 하고 있는 것이니, 문을 열 용도라면 대세를 따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문고리를 잡고 당기거나 내려놓을 때의 묵직함은 그만 두고서라도 저 심술난 듯 보이는 얼굴이 아무리 사자모양이라고는 하지만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여는 일이라면 저 버스 손잡이 같은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 그것에 내어주고 반편이 된 대문의 마음 또한 사자머리에 그대로 씌여있다.
이 사자는 일종의 업그레드 버전 같아 보이는 문고리를 물고 있지만 왠지 앞선 사자들보다 낯설고 어색해 보인다. 노예 같아 보인다. 어떤 상징물 같은 것으로 재갈이 물린 듯 뭔가 압제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색깔에 따라 다르지만 검은 색은 한때 관용차량(아, 아직도지)에나 어울렸던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문고리가 화룡점정이라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 그대로 권력을 잃고마는, 그러면서도 계속 그 주변을 알짱거리는 모 전 의원을 닮았다. 불에 그을린 자국이 조폭의 문신처럼 남아 뇌물을 밝히는 습성 그대로 어느 기념식장에서 챙겨온 사은품을 들고 있는 듯한 초라함마저 느껴진다.
겁 먹으면 사자는 그냥 사일 뿐이다. 스스로 죽을 때까지 기품을 내려놓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야성이 그렇게 사람들과 싸우게 되어있는게 자연인 것처럼 피를 묻히며 살점을 뜯던 야성이 자동차 본닛 위에 올라선 상징이서는 안 된다. 사자 문고리를 잡으니 개가 짖더라도 사자가 개가 될 수는 없듯이 필생이 사자여야 한다.
문고리권력 운운하며 몇 백 년을 해먹겠다고 겉은 사자인데 안은 개 만도 못한 권력을 생각하며 골목을 떠돌며 선소리를 해 보니 뭔가 울컥 하는 것이 있다. 왕이 왕관을 내려놓을 수 없고 왕관이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미 끝난 권력은 대문이나 충실히 지키며 굳게 닫힌 대문을 자주 열고 닫으면서 손자들에게 과자를 쥐어주고 훌라후프를 쥐어주는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자는 진정한 권력이다. 대문을 해 건 사람들이 저마다의 긍지로 지켜내야 하는, 헌법 제1조에 나오는 권력을 지켜주는 상징이자 내장이 떨리도록 내지르는 포효여야 한다.
언젠가는 높으신 분들의 청사 앞에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 같은 뜻을 품은 예술가 동지들의 도움이 있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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