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아, 책 좀 골라줘
한길이가 스스로 참도깨비어린이도서관 부관장이라고 말하고 나니까 자꾸 도서관을 비우고 밖으로 돌게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꼭 따라나서려고 하지만 모임이다 자잘한 일을 하느라 나가면 도서관을 지키고 있는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일을 맡기게 되는 것이지요. 아내야 혼자 두고 나간다고 걱정하지만 자전거 타고 시장 할머니한테 가서 반찬거리도 사 오고 세탁소에 옷을 맡길 줄 아니 자꾸 써먹는 것이지요.
아무튼 도서관을 비우고 우체국을 가거나 모임에 다녀올 때면 이 녀석이 손님을 맞아 책을 돌려받고 빌려가는 책은 종이에 꼭 적어놓으라고 하는 한길이. 컴퓨터 밑에 꼬불꼬불한 글씨로 "아빠 핸드폰 번호를 모르는 사람은 전화 하세요 019-***-0200" 하고 써놓은 걸 보면 제법이란 생각이 듭니다. 모임을 다 끝나갈 때쯤에 전화해서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밥 줘!" 하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만 빼놓으면 아주 듬직한 부관장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한길이에게 책을 골라달라는 아주머니들도 늘었습니다. 감히 읽을만 한 좋은 책을 골라 채워놓았다고 하지만 그림책이다 동화책 고르는게 낯설어 하나 하나 권해달라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한길아, 책 좀 골라줘"
한길이 또래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한길이한테 재미있는 그림책을 골라달라고 해서 이 녀석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기가 읽은 책 가운데 재미있는 걸 골라주면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이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한길이가 좋아하는 또래한테 맞는 책이니 재미있나 봅니다. 어떤 책은 글이 많아 "어떻게 다 읽어주냐?" 하고 볼멘소리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낌없이 읽어주는 일이야말로 거르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고 귀뜸을 하면 그 아이에게도 재미있는 그림책이란 게 증명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서관에 올 때마다 한길이를 찾는 것이고요. 그렇게 책을 골라주는 일이 책을 제자리에 꽂고 정리하는 것보다 좋아 다른 아주머니들이나 아이들 둘레를 얼쩡대며 "이 책 재미있는데" 하고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그 어떤 자원봉사자보다 믿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울이도 크면 형 뒤를 따라다니며 이런 일을 하겠지요? 지나친 욕심이지만 도서관을 찾아주는 어머니와 아이들만큼이나 힘이 되어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4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