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년들을 위하여
늙은 소년들을 위하여
- 『풍운아 채현국』(피플파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21세기북스)
오늘 끝 곡으로, 386이란 말도 이제 화석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늙은 소년들에게 바칩니다. ‘풍운아 채현국’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이상 정오의 희망곡 ○○○였습니다.
비오는 오후, 출장을 다녀오는 길, 강렬한 비트와 속사포 같은 노랫말 속에서 왜 나는 나른해지는 것일까. “여보, 아무래도 우리가 아이들을 잘못 키운 것 같아.” 어젯밤에 나눈 아내와의 대화 내용도 끼어들어 나도 모르게 깜박이도 켜지 않고 들어선 차량에게 욕을 하고 만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맨날 대통령에 정치인 디스를 하고, 불만만 많으니,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허세를 날리며 갈수록 시니컬해지는 고딩은 팔척거구처럼 보이고, 그래 우리도 힘들고 앞날을 내다보기 어렵고 두렵다고 말하지 못하는 난세에, 그래 참고 견디고 버티라고만 할 수 없는 씁쓸함. 아들도 나도 늙은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을 멈추고 정체되어 있는 듯한 막연함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이런 생각을 단박에 깨우는 두 거인이 있다. 아주 작지만 올려다 볼수록 커지는 도깨비 같은 사람. 노래 제목 같기만 한, 정오의 희망곡에 어울리는 사람. 채현국과 무히카.
채현국은 무엇보다 이 시대를 케케묵은 이념과 권력으로 점거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일갈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노인들이 들었다면 전국 조직의 명운을 걸고 시위를 했을 만한 파급력이지만 늙은 소년들이 들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이마저 찻잔 속 태풍으로 머물고 마는 것은 아닌지. 기성세대를 욕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거리로 나섰고 지구를 몇 바퀴 돌아왔던 청년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채현국. 고딩에게, 늙은 소년이 된지 오래인 나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똑같은 꼴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채현국, 그는 제목에 나온 것처럼 풍운아만은 아니다. 풍운아는 홍길동으로 끝냈어야 마땅한데 이 거칠고 뜨거운 땅 덩어리 위를 흘러다니는 풍운이라니, 구술자서전 사업을 몇 년째 하며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채현국의 삶은 우뚝 선 봉우리 이상의 진실이 느껴진다. 젊었을 때 이루었던 가치는 위대하다. 충분히 어려운 삶을 버텨오고 자식들을 가르쳐 세상에 보낸 가치는 숭고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 뚫린 곳 투성이다. 또 다른 학습과정과 그로 인한 가치관 형성이 생짜배기 삶의 진실에서 한참 멀어져 앞길을 열어주지 않은 고루함으로 남아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그처럼 자신의 학교 마당을 쓸면서 늙어감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싶다.
채현국과 함께 무히카 대통령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 지고 난 뒤 겪어야 했던 무력감 또한 늙은 소년의 변명일 테지만 나라와 국민의 뜻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최선의 대통령으로서의 무히카는 채현국과도 닮아 있다. 대통령이 권력의 상징이자 나라의 수반이자 초헌법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들에게 내려와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존재임을 무히카는 보여주고 있다.
우루과이 대통령으로이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렸던 무히카는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게릴라였다. 10년이 넘는 감옥살이 끝에 석방 된 다음에는 민중에게로 들어갔고 하원, 상원을 거쳐 우루과이의 농업, 축산업을 책임지는 장관을 지낸 후 대통령이 되었다. 이 과정만 보면 우리가 겪었던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홍해 가르듯 반쪼가리도 만들고야마는 이념의 나라답게 그런 대통령을 만들지 못한 안타까움이 깊다. 권력의 끝자리, 가장 높은 자리라고만 생각하면 가히 제왕적인 통치를 꿈꾸던 그동안의 대통령들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존경할만한 대통령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쉬움을 접고 그의 삶에 들어가 보면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엘리트코스를 밟아 권력과 부의 가장 큰 정점에 오른 우리들의 지도자들과는 생긴 그릇부터가 다르다. 새삼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부러워질 만큼. 세상은 언제나 혁명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적용하면 금세 빨간 딱지가 붙을 우리 현실에서 보면 그는 총과 폭력을 의미하지 않는 진정 국민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장애물과 특권을 고쳐잡는 혁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손에 무기를 지닌 사람은 커다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그것이 돈이자 권력이고 독설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삶을 긍정하고 한 인간을 신뢰의 연장선상에서 보려고 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혁명가의 자리에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도 스스로 가난한 삶을 화두로 정치를 펼쳐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 없이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다. 철학에는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을 바라보며,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새로운 기치처럼 펄럭이며 난무하는 ‘생명’이며 ‘행복’ ‘인문학’ ‘철학’의 의미가 어떻게 쓰이고 귀결되는지.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삶에는 가격이 없다고 말한다. 지나친 소유와 소비의 삶만이라도 지양하며 살아야 한다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그러지 않으면 늙은 소년들이 판을 치고 이 땅의 모든 생명마저 의미가 없는 것임을.
채현국과 무히카의 삶이자 철학이 우리에게 묻는다.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