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에 대한 진실 <울지 않는 늑대>
늑대에 대한 진실
- <울지 않는 늑대>(팔리 모왓 지음/이한중 옮김/돌베개) -
시튼의 동물기에 나오는 늑대부터 <최후의 늑대>, <늑대의 눈>, <회색늑대의 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늑대에 대한 완결판과도 같은 책이다. 시튼이 동물도 사람과 함께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눈여겨 관찰하고 사랑했던 늑대, 지금 이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라서 늑대를 복원한다고 난리를 피우는 시점에서 '늑대'란 말이 오슬오슬 소름이 돋도록 가깝게 다가온다. 집단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마녀 사냥을 하던 인간의 오만한 눈동자 속에서 사라졌던 늑대를 다시 보는 듯 생생한 이야기였다.
"동쪽 어디선가 늑대가 울었다. 가볍게, 궁금하다는 듯이,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전에 많이 들어본 소리였기 때문이다. 조지였다. 없어진 가족의 대답을 듣기 위해 황야에 울려 퍼뜨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소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조화롭지 못한 역할을 선택하기 전, 한때는 우리의 것이었던 세계. 내가 얼핏 알아보고 거의 들어가기까지 했지만, 결국 내 스스로가 외면하고 만 세계에 대한 노래였다."
- 본문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중에서 -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오만함으로 잃어버린 세계가 많다. 동물 세계에서 공존하는 질서를 가장 먼저 깨뜨린 인간들 스스로 가장 약한 근거를 없애고 세계를 송두리째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온 것이 인간의 역사인가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곧 수많은 동물들을 혐오스럽고 악독한 꼬리표를 달아 죽이는 정당화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의 말대로 학살의 명분이 모자랄수록 흑색선전은 심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늑대들을 가장 악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으로 단정짓고 학살해 온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 문명은 거창해 보이지만 바로 잃어버린 세계의 터전 위에 세워진 것에 지나지 않다. 그 잃어버린 세계는 곧 멸종된 동물의 세계이자 조화로운 삶이 신화처럼 살아있는 녹색의 세계인 것이다. 그것을 잃고 나자 인간의 세계는 갈수록 궁핍해지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거창한 문명 비판서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장 미워하고 적대시해온 늑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값진 보고서이다. 그들을 가상의 적으로 만들어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전염시킨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보여주는 휴머니스트의 기록이기도 하다.
팔리 모왓은 북극에 연구원이자 학자로 파견되는데, 순수한 연구활동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늑대를 교묘하고 깜쪽같이 사라지게 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것이 처음부터 충격이었다. 어찌 늑대를 전멸시키는 것이 국가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지, 한 번도 늑대들의 생태를 관찰하지 않고 싹쓸이를 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학살이란 냄새나는 가면을 쓰고 스포츠로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신물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늑대는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닥치는 대로 사람의 터전까지 위협하는 존재가 아님을 팔리 모왓는 북극의 늑대에게서 배우게 된다. 자신들의 경계 속에 끼워주고 배려해 주는 것까지, 그리고 생태계에서 병들고 불구가 된 동물들만 골라서 잡아먹음으로서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이것은 곧 모든 동물은 배고프지 않으면 더이상 먹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스스로 먹이사슬의 건강한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참실천임을 보여주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인간만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으며 먹이사슬의 질서를 깨뜨리고 파멸을 자초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늑대의 일원인 것처럼 늑대의 영역 안에서 펼치는 활동이 재미있기만 하다. 상부의 지시를 어겨가며 늑대를 다시 보려는 자세나 느긋하면서도 집요하게 늑대들의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모습 말이다. 늑대의 눈으로, 그 어디보다 평화로운 공간에서 보는 늑대들의 삶이 우리의 가족관계를 보는 듯하다.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와 있음을 알고서도 간단하게 무시해버리고 자신들의 생활에 충실하는 늑대 가족들, 그러면서도 늑대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왜소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들, 순록들 가운데 병들고 불구인 존재만을 솎아내는 늑대의 지혜라든지 수많은 가족 단위의 늑대들이 어떻게 교신을 하고 주위 동물들, 사람들과 발 맞추어 사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가의 유머와 풍자가 깊게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은 인간 됨됨이를 지적하고 있고 자연파괴로 이어지는 문명의 오만함에 대한 유머이자 풍자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시에 나오는 늑대 학살에 대한 집단광기와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숨까지, 마지막 피까지 쫓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이 사냥에서, 나는 빠지고 싶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이,
음흉한 웃음 지으며 길목을 지키는 도살자들의 영원한 몰이.
일제 사격한 총탄이 나뭇가지들에 튕기고
사냥꾼들은 나무 그늘에 숨는다.
숨 쉬는 과녁, 늑대들은
눈 위로 고꾸라진다.
광란의 늑대 사냥,
회색 육식 동물, 그 중에서도 수컷과 새끼 늑대를 잡아라.
몰이꾼들과 개들은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핏빛 눈밭에서
구역질이 나도록 짖어댄다.
<중략>
마지막 숨까지, 마지막 피까지 쫓기 위해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이 사냥에서
나는 간신히 나를 그들의 입김과 그들의 피로부터 떼어놓는다.
오늘에 어제를 되풀이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늑대 사냥> 부분
그렇지만 늑대는 울지 않는다. 인간의 그 울음을 신파조로 대신할 뿐이고 더 처절한 가슴의 상처로 안고 그들의 지나간 자리, 잃어버린 세계를 향해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