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이거
"이거, 이거!"
한울이가 책을 꺼내들고 읽어달라고 합니다. 이제 좋아하는 책이 생겨서 책꽂이에 있거나 텔레비전 밑에 쌓아놓은걸 꺼내다가 읽어달라고 머리끝까지 치켜듭니다. 지금 한울이가 좋아하는 책은 <냠냠 짭짭>(보리), <까꿍놀이>(보림), <사과가 쿵!>(한림), <누가 숨겼을까>(비룡소)인데 하나같이 흉내말이 재미있는 책이지요. 그만큼 이 녀석은 인간복사기가 따로 없다 싶을 만큼 많은 소리를 따라 합니다. 그러잖아도 엄마, 아빠 소리에 '엉아' 소리까지 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데 새로운 소리를 따라 할 때마다 마음이 나뭇잎마냥 한들거리며 좋습니다. 상황에 따라 엄마,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가 달라서 어느 때는 송아지 소리 같다가 어느 때는 고양이 같다가, 어느 때는 다 큰 녀석 같아서 한길이보다 말이 빠르고 영리하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답니다.
"딸기 먹자/그래 그래/냠냠 짭짭"
보리 아기그림책에 나오는 딸기는 세밀화라 정말 먹음직스러워 첫장을 열기 바쁘게 침을 흘리며 "양양양" 하고 흉내를 내는 한울이. 금방 군침이 도는가 봅니다. 이럴 땐 읽어주는 나도 덩달아 입에 침이 고여 배가 고파지기도 하고 철지난 딸기를 먹고 싶어집니다. 그 뒤로 자두가 나오고 복숭아가 나오고, 참외가 연달아 나오는데 이 녀석은 "냠냠 짭짭" 하는 소리가 딸기 색깔과 함께 가장 눈에 들어오는지 자꾸 책장을 거꾸로 넘겨 딸기만 봅니다. 나도 침이 흘러나올 것 같아 입맛을 다셔가며 읽어주는데 이 녀석은 거의 목덜미가 다 흥건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딸기를 여러 번 먹고 나면 이제 <까꿍놀이>를 가져오는 한울이.
"없다, 멍멍 강아지 없다"
"까꿍"
벌써 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가 살짝 떼면서 까꿍놀이를 즐기는 한울이한테 더할나위없이 재미있는 그림책입니다. 역시 이 책에서도 강아지를 좋아해서 몇 번이고 강아지 앞에서 실실거리면서 까꿍을 되풀이를 하지요. 길에서 자주 보는 강아지 때문에 그렇겠지요. 자꾸 손짓을 해서 부르기도 하고 "와와와" 하고 입을 달싹거리면서 좋아하는 강아지라서 몇 번이고 강아지와 노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부엌이나 방에서 저지레를 하며 둘러엎을 때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 즉각 "까꿍놀이"에 들어가는가 봅니다. 할머니도 읽어주고 가물에 콩나듯 형까지 읽어주고 아내가 읽어줘도 나까지 한바퀴 돌아야만 고개를 돌릴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사과가 쿵!>으로 들어가는데, 이 책만 펴들면 연신 손으로 방바닥을 쳐대면서 눈웃음을 칩니다. 그래서 "커다란 커어다란 사과가" 그야말로 에드벌룬마냥 부풀어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커어어다란"이라고 한껏 부풀렸다가 숨을 멈추고 재빨리 쿵! 하고 방바닥을 치면 서있다가도 엉덩방아를 찧으면 바닥을 칠 정도로 좋아하니 덩달아 기쁠 수밖에 없지요. 역시 이 책에서 흉내말이 많이 나와 "사각 사각" 하는 대목에서는 목덜미를 침으로 적실 수밖에 없지요. 아무래도 침을 많이 흘리는게 밥도 있지만 먹는 흉내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한 바퀴가 돌고 나면 이제 사다리 의자를 타고 다락에 올라가고 계단을 올라가는 한울이. 한길이가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책을 읽어주는건 두 말 할 필요없이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있으니 자연스레 책을 읽고, 마주 앉거나 무릎에 앉혀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이 빛나고 마음이 빛나는 것이지요.
"이거, 이거!"
한바탕 책을 읽어주고 올라왔는데 어느새 책을 집어들었는지 한울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두 손을 한껏 치켜들고 있군요. 바쁜 일이 있어도 접어두고 내려가는 마음이 한결 가볍기만 합니다.
2004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