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덜 말라서 그래
"아무래도 한길이 소금밭에 보내야겠네"
주말이면 으레 1층에서 형, 누나와 함께 할머니방에서 자는 한길이가 오줌을 쌌습니다. 무슨 닭이라도 되는양 쇼파에 혼자 올라가 자다가 오줌을 눈 모양인데, 이상하게도 이불에는 오줌자국이 없더군요. 팬티와 내복이 뒤엉켜서 있을 뿐 어디에도 오줌 자국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제 1학년에 들어갈 녀석이 오줌이나 싸고, 어떻게 된 거야?"
도끼눈을 뜨고 한길이를 몰아부칩니다.
"아니야, 옷이 덜 말라서 그래"
"뭐야? 그러면 왜 덜 마른 옷은 입어갖고 난리야?"
"진짜라니까, 자, 팬티에도 오줌이 안 묻었잖아"
팬티 속을 까뒤집어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결백을 주장하는 한길이 얼굴만 봐서는 거짓말인지 아닌지 가리기 힘듭니다. 새벽에 오줌을 누고 나서 내복과 팬티를 갈아입고선 천연덕스럽게 둘러대는 말이 웃기지도 않습니다.
"거, 희한한 일이네. 참 기술도 좋다 좋아"
새벽에 생쥐마냥 2층에 올라와서 내복과 펜티를 가져간 게 틀림없는데도 버젓이 거짓말을 하는 한길이 앞에서 멍한 기분이 들더군요. 요즘 들어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앞서 해야 할 것들을 미뤄놓고도 분명히 했다고 거짓말로 들이대고 보는 것을 보면 오줌 또한 간단한 일이겠다 싶더군요. 아무래도 내가 확인 절차까지 거치지 않으니 그냥 넘어갈 셈인 것이지요. 그냥 속아 넘어가 주기로 하고 쇼파에 올라가 자면 추워서 오줌이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니 바닥에서 자라고 일러주기만 했더랬습니다.
얼마 전에 내건 회초리 10대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까지 따지면 요즘 한길이의 행보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난장판이 따로 없다 싶습니다. 그때마다 1학년에 곧 들어갈 녀석이 어쩌구 저쩌구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리 약발이 오래 가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요. 한껏 노리다가 강수를 쓸라치면 동생네 집으로 도망가버리니 리듬이 끊기는 것이지요.
"한길이 목욕시킬 때 꼭 안고 탕에 오래 앉아있어봐"
할머니가 꺼내놓은 약인데, 이 녀석이 정신을 딴데 두고 뛴다 싶으니까 나더러 탕 속에서 살을 비비며 성질 좀 누그러뜨리라는 말이지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탕 속에 들어가 있으면 뱁새눈이 될지라도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도 그런 시간이 모자라니 한길이가 나부댄다고 생각하니 약발이 들어먹히는 건 따로 있는 셈입니다.
아무튼 겨울방학은 뭐하나 변변히 해본 것도 없이 길기만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런 만큼 개학하고 졸업하고 다시 입학하고 긴 긴 1학년에 들어가기까지 적응하는 일도 벅찰 것 같습니다. 옷이 덜 말랐다고 둘러대며 오줌 싼 옷가지를 바꿔치기하는 것도 심심찮게 나오겠지요. 한두 가지가 아닐 듯해서 그야말로 우리가 더 긴장하게 됩니다. 단지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예방주사에서 머물지 않는 커다란 파도와 같은 것이 몰려오는 듯합니다.
2005년 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