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곳이 그림을 낳는다
어쩌다 그림 비슷한 것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냥 발음 연습으로 하던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암기린 그린 그림~'할 때의 그림 정도로 여기고 싶어서 제목도 그렇게 잡았다.
처음 도서관을 시작하면서 문학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 얼굴을 그린 적이 있긴 하다.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꿈꾸는 일은 무엇이며 식구들 이야기도 들어가면서 그림은 얼추 그 아이가 되어간다는 착각을 했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그냥 흉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마음을 담아서 그림 속으로, 내가 보고 있는 대상에게로 들어가는 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 아이가 태어나서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을 때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기쁨 속에서 처음 그림을 그려줄 때를 떠올린다. 어쩌다 우리한테 왔을까? 어떻게 이런 녀석이 찾아와 주었을까 신기해 하며 얼굴을 들여다보며 무작정 그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리다 보니 평화롭게 잠이 든 아이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있던.
자주 가는 연밭에서 거의 날마다 연잎 사이 개구리처럼 놀았다. 색연필 몇 자루로 절집 한 채 그대로 앉아있는 듯한 연꽃을 그려보았다. 그 빛에 놀았던 여름 한쪽이나마 전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림을 끄적거리면서 자주 가는 곳이 그림을 낳는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많은 말로 표현을 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색과 빛 모두에 맹하다는, 언어마저 잘못 보고 느낀 어눌함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리면서 느끼다 보니 더 자주 쏘댕겨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