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일기

야, 장사 잘 된다

참도깨비 2021. 9. 3. 15:51

봄이 되면서 도서관에도 아이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거인의 정원에 한창 겨울만 있다가 아이들이 샛구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봄이 온 것처럼 마당에도 도서관에도 아이들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당 한켠에 있는 목련나무가 벌긋벌긋하니 겨울눈을 벌리려고 합니다.


한겨울 내내 준비하고 지금에야 시작한 꼴이니 더디기도 한참 더딘 꼴입니다. 큰길가에 있다고는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와 있고 바깥에다 커다란 간판도 못 달고 기껏해야 나무판에 그림을 그려서 내놓았으니 찾아서 오기란 힘들지요.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굼뜬 것이지요.
그래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책 읽으러 오라고 한 것인지 하나 둘 친구들과 동생들과 함께 오기 시작하더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아이들까지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큰 마음 먹고 총천연색 전단지를 만들어서 학교 앞에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한길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갔다가 1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이지요.


"이게 뭐예요?"
"응, 책 읽으러 오라고"
책이라는 소리에 어떤 아이는 금방 자석처럼 끌리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우리 집에 책 많아요" 하고 거들떠도 안 보는 아이도 있더군요. 학교 앞에서 돌리는 학원 전단지며 학습지 전단까지 워낙 많이 받아본 아이들이라 바삐 가는 길에 뭘 들려준다는게 그렇지만, 대뜸 책 많다고 도서관이 다 뭐냐고 하는 걸 보면 고 녀석의 뒤통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더군요. 이게 어디 그 녀석 탓이겠냐만은.    
"그런데 도서관이 뭐예요?"
"언제나 와서 책 읽고 가도 되고 빌려가도 되는 곳이지"
"어, 한길이네!"
반으로 접는 홍보물 표지에 한길이가 강아지풀수염을 달고 달맞이꽃을 들고 웃는 사진을 넣었더니 반 아이들이 알아보고 한 마디씩 하더군요.
"그런데, 한길이가 왜 나왔어요!"
"내가 여기 도서관에 사니까 그렇지"
그 소리를 듣고 한길이는 부끄러우면서도 좋아서 얼굴빛이 카멜레온 같더군요.
"아빠. 내가 스타야!"
금세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으니 정말 스타가 된 줄 알고 들떠서,
"저기도 오네. 얼른 줘. 우리 가다가 아줌마, 아저씨들한테도 주자!"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발가방 쥔 손에 가까스로 전단지를 받아들고 문구점으로 떡볶이집으로 달려가지만. 몇 몇 아이는 벌써 길바닥에 버리고 가고, 한길이는 득달같이 달려가서 주워 오고, 점심 무렵이 북적이고 흥이 나더군요.


그렇게 1학년 아이들에게 돌리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더랬습니다.
"아빠, 몇 명이나 올까?"
"글쎄"
"그럼, 과자랑 사탕도 준비해야지? 내가 사탕 사 올게"
"..... 도서관에 책 읽으러 오지 사탕 먹으러 오냐?"
한길이 마음에는 구름떼마냥 올 것 같나 봅니다. 그러면 작은 도서관이 터지고 말겠지만.
도서관에 와서도 한길이는 들떠서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더군요. 얼마 뒤에 할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셨을 때는 더 한층 들떠서 떠벌리더군요.
"할머니, 내가 스타가 됐어요"
"무슨 일은 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구요"
"아니, 뭘 잘 했으니까 스타가 됐을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완전히 찬물을 뒤집어 쓴 꼴이지요. 스타가 되었는데 뭘 잘해야만 되는 일이냐고 물으니 답답한 것이지요. 이 녀석 성미가 불 같아서 차근차근 이야기하면 되는 걸 처음부터 막힌다고 생각하니 "그게 아니구요" 하고 얼굴만 찡그리는 것이지요.

얼마 뒤에 한길이 친구들이 몰려왔습니다. 날마다 오는 아이도 있고 오랜만에 오는 아이도 있는데, 전단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도서관으로 데려와서 떠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야, 장사 잘 된다"
"야, 이게 장사냐?"
이 녀석 딴에는 돈이 오가지 않는 이런 것도 장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줄곧 장사가 잘 된다느니 하며 아이들에게 책은 네 권 빌려가도 된다느니 비디오는 2편이라느니 하면서 소개를 하더군요.
"이건 장사가 아니고..."
뭐 정확한 말이 없나, 머뭇거리자 "그봐 장사 맞잖아" 하면서 떠들어대니 진짜 내가 전단지를 돌리고 짜장면이라도 말아서 팔려고 나선 것 같더군요.


그렇게 들뜬 하루가 갔습니다. 이 녀석들은 도서관을 한바탕 뒤집어놓고 마당에 나가 축구를 한다고 넘어져 뒹굴고 난리가 났고요. 그래도 아이들이 찾아주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아빠, 내가 스타니까 텔레비전에 또 나오고 싶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집에 들어와 한다는 소리가 내일이라도 당장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단지에 표지모델로 넣은 값을 톡톡히 하는 것이지요. 모델료는 주지 않았으니 웃고 넘어가야 할 일이겠지요?
"아빠, 내일도 돌리자!"

 

2005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