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한 나날

내암리에서 워터멜론슈가를 떠올리다

참도깨비 2021. 9. 6. 16:30

 당신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에 나갔다가 "참, 어릴 적에는 여기서 물놀이하며 지냈는데" 하고 추억에 젖었을 때쯤 냄새 나는 물 속에서 은어와 빙어를 만났다면 어떤 기분이 날까? 냇물에는 송사리와 붕어, 피라미만 사는 줄 아는, 물고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물어 물어봤더니,
 
 "은어는 늦가을에 부화한 뒤 가까운 바다로 내려가 연안에서 겨울을 나고 3,4월쯤 하천 상류쪽으로 올라와 9.10월쯤 알을 낳는, 몸에서 수박냄새가 나는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 물고기다."
 
 "빙어는 회유성 물고기로 겨울철 얼음낚시로 많이 잡혀 유용한 수산자원이다."
 
 라는 지식검색을 했다면, 이런 *물에 이런 고기가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놀랄까? 아니면, 심드렁하게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냐고 소 닭 보듯이 하고 말 것인가? 청계천에도 물이 흐르고 고기가 살듯이 그저 물만 흐른다면 감지덕지하며 사진을 찍으며 누군가의 치적을 자랑스러워하는 시민이 될 것인가?
 그러나 물풀이 하느작거리며 물을 쓰다듬으며 물고기들을 감추기도 하듯이 은어와 빙어가 보이는 저 자연스러운 하천에서 우리는 한 번쯤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두물머리를 지나 강으로 흘러들고 끝내는 바다로 가는 물길을 잡고 가파른 물의 꼭대기에 올라봐야 할 것이다. 바위였다가 돌멩이였다가 끝내는 모래가 되는 순례의 길도 길이지만 한 방울의 물로 돌아가는 순례의 길 또한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암리는 오욕칠정에 물든 도심의 평범한 시민으로부터 작가에 이르기까지 가봐야 할 내밀한 공간이다.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부는 바람은
      언제나 남쪽에서 불어와 북쪽으로 간다
      입으로 먹고 똥구멍으로 방귀를 뀌는 일은 있어도
      똥구멍으로 먹고 아가리로 트림을 하는 일은 없다
 
      수다라전 넓은 창문과 굵은 간살로 들어온 바람은
      부처 말씀을 찬찬히 만져보고
      북쪽 좁은 창문 가는 간살을 빠져
      벽을 타고 천천히 법보전으로 간다
 
      법보전 넓은 창문으로 넘어온 바람은
      나직나직 불경을 외우다
      북쪽 창문을 통하여 가야산으로 되돌아갈 때
      바람은 해탈한 법풍이 된다
 
      하기야 장경각 경판이 썩지 않고 트지 않는 데는
      결삭은 후박나무가 욕심을 버린 데도 있고
      숯과 소금으로 채운 기초가 습기를 조절하는 데도 있지만
      오고 가는 데 무념무상한 바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신경득, <장경각> 부분
 
 
 
 내암리는 무심천이 시작되는 탯줄이다. 무심천에 대한 전설이 여럿이지만 누구나 무심천의 '무'가 '無' 라는 것과 '심'이 '心'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무'는 무념무상만큼이나 어렵다. 끝내는 장경각의 팔만대장경을 지켜내고 법풍이 되기까지 안다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이치는 다 똑같다. 어느 하천이나 강물이 한 쪽에서 흘러와 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입으로 먹고 똥구멍으로 방귀를 트는 일은 있어도/똥구멍으로 먹고 아가리로 트림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증거하는 것이니 새삼 말해야 무엇하리. 장경각의 구조가 하천과 강물의 구조이듯이 그 안의 내밀한 법풍은 팔만대장경에 하나 하나 새겨진 물고기와 풀이며 그것에 깃든 새들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장경을 이룬 무념무상의 바람을 빌어 하나의 집을 지을 줄 아는 옛사람들의 먼 과거의 찬란함이야말로,
 
        산짐승도 목을 축이고 돌아가
        가는 길 잃어버려 홀로
        바위 틈서리로 흐르는 박샘은 어디 있을까
 
        안개처럼 흐린 머리
        새벽처럼 맑게 깨워줄
        그런 샘은 어디 있을까
 
                         신경득, <샘> 부분
 
 '밤하늘 은하수 쏟아져/찰찰찰 맑은 물 넘치는'(<샘>) 샘이지 않을까?
 내암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차로 갈 수 없는 길이다. 차를 타고 가면 몇 번이나 길을 잃고 물어야 할 것이다. 불공 드리겠다고 절에 왔으면 일주문 밖에서 걸어들어와야 마땅한 것처럼 순례를 해야만 하는 길이다. 그곳에는 한 방울의 물에게는 바다가 굽이쳐 오르는 이무기나 용에게 하늘이듯이 샘 하나 있다고 한다.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부분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던 시인을 품어낼 줄 알았던 땅의 시학은 '감자를 묻고 나서/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뒷산이 꽝꽝 울리'(위의 시)던 별이다. 별을 바라보는 땅을 가질 줄 알았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나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간다는 믿음을 가졌던 과거의 찬란함을 떠올려보라.
 
 


 
 처음 본 별꽃에게 선뜻 "야, 막내별이다!" 하고 내지를 줄 아는 아이의 마음이 내암리에는 있다.  맑은 물로 만든다는 청량음료가 김이 빠지고 나면 달착지근한 설탕물일 뿐이듯이 좀 더 내밀하게 들어서면 시에서의 그 짐승이 바로 제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그것이 무릎에서 무릎으로 전해지던 옛이야기든, 신화처럼 꿈꾸는 노래이든 아랑곳없이 뿌리째 캐가서 돈벌이로 쓰거나 앵벌이로 부린다고 해도 지워질 수 없는
 
     어여뻐라. 한양성 가는 방자처럼 걸어서 날 찾아오는 사람. 아니면 어이 가리너. 혼자서
    어이 가리너,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칠흑의 어둠 속에서 열나흘은 흐느끼겠지. 어이 가
    리너, 이정표도 없는 길을. 울부짖으며 맨발로 내닫겠지. 생각으니, 안개 속 구만리 벼랑
    길로 나를 데리러 오는 그이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 그 먼 길을 오토바이도 없이 걸어
    서 오는 사람.
 
                                       윤제림, <그는 걸어서 온다>
 
 
 사람으로 치면 그런 사람 하나 두었는가. 백만 번 뒤집어서 생각해도 그 별과도 같은 샘은 맨발로 한 달음에 마중나오는 사람이 아닌가. 그것이 내암리에서 걸어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위고하 막론하고 혼자서 걸어오게 하라(위의 시)고 했던 말은 거듭 우리에게 '생전 처음 가본 나라'이고, '늙은 밀수꾼모양 국경선 길잡이나 해야' 할 지도 모르고 '기행문 한 편 없는 나라'(위의 시)이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더냐.
 
 


 
 
   천변의 갈대숲에서 죽은 듯 잠을 자거나 모래톱에 남겨진 빈 소주병마냥 피리를 불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암리에 닿기 전까지는 우리는 손짓 한 번 하지 않는 사이보그문학과도 같은 것이지 않을까.
 
 


 
 내암리는 새들이 떠난 둥지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한잠 달게 자고 가더라도 누구 하나 출근하라고 돈 벌어 오라고 밥 달라고 닦달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장경각이다.
 
       철새들이 둥지를 바꾸고, 나는 고운 머리핀을 꽂고, 빨간 스웨터를 입고, 봄볕 따라
      오며가며 연신 그의 눈길을 훔쳤다. 그 눈부심만으로도 열병처럼 달아오르던 내 끊
      임없이 쏟아지던 눈길 느꼈는지 몰라, 잘 익어 빛깔 좋던 호밀밭 가에 서 망초꽃 이
      파리 하얗게 묻은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는 처음으로 나를 보고 맑게 웃었다. 그리
      고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처럼 푸른 손으로 나를 손짓했다.
 
                                  허장무, <향香이 누나 4> 부분
 
 
 공장으로 식모로 떠나보낸 누나인지도 모른다. 뒤늦게 참회하듯, 연분홍 치마를 휘날리며 한 곡조 꺾는 우리들의 누나.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 오랜 .........
       세월이 가면 치유될 줄 알았던 이 사랑.
 
                                - 위의 시
 
 
 눈뜨고 나니 사랑이었던 손목이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어디 그런 사랑쯤 안 가져본 청춘이 있을까 보냐고 불콰한 술잔을 건네며 말할 줄 알아도 지키기는 어려운 약속과도 같은 것이 내암리에는 있다.
 
 


 
 버들개지가 짖어댄 골짜기의 적막이 곳곳에 서려있으니 그것이야말로 깨어진 돌연꽃이지 않을까. 구두 수선공이 노련한 솜씨로 박아넣은 징처럼 달박거릴 때까지 고단한 삶을 겪어내고 있을,
 
          그 밤이었을 거예요 언제나 왼편 어디쯤 서성이는 우리는 연등 하나 밝힐 수 없었는
         데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무슨 말인가 목쉰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눈물만 요란했
         는데요 초파일은 지난 지 오래 가난한 길손 대신 손등을 드는 밤, 추녀에 매달린 왼쪽
         날개가 상하고서는 못 속에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었겠지요 흙먼지 휘감듯 멱살을 잡
         는 산길의 반란으로 의지할 먼 불빛도 없이 돌아온 장터, 막차는 벌써 우리를 등졌던
         데요 
 
                                        이정섭, <연꽃 근처> 부분
 
 
 
   처절한 상처와도 같은 곳.
 
 

 
 
 웃고 있어도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기도 하다가, 오히려 붉은 피가 데운 따뜻한 얼굴이 되기도 하는 내암리는 호식총(虎食塚)인지도 모른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넋을 달래며 덮어씌운 무덤이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워터멜론 슈가에서>에 나오는 호랑이들마저 잡아죽이고 세운 송어인공부화장. '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해 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달라'(위의 소설 중에서)고 말하는 시루 위로 삐죽하게 솟은 호랑이뼈. '당신이 오래전에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데 당신은 그 대답을 알지 못했다/그것이 내 이름이다./어쩌면 아주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것이 내 이름'이라고 했던 화자이게 하는, 그러다가도
 
                    여기는 '잊혀진 작품들'의 입구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는 표지를 만날 수도 있는, 실패한 인류 역사의 상징이자 타락한 곳, 목가적 꿈이 부재한 무덤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곳.
 
 


 
 그것은 '대지의 심장부에 내린 뿌리를 통해, 하늘을 가리는 가지를 안테나 삼아, 무슨 일이 튀틀리거나 잘못됐을 때, 온갖 떨림이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캐티 아펠트 소설 <마루 밑>에서)을 지닌 나무의 세월보다 앞서 가려는 사람들의 헛된 꿈이자 헛된 미래에 걸어둔 연과도 같은 이야기임을 내암리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딱새나 곤줄박이, 동고비였을까. 내암리의 새는 꽃처럼 우리를 사로잡아도 꽃이 아니기에 붙들어둘 수 없고, 훌쩍 날아가버림으로써 수많은 착시와 설렘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차 꽃이 될 것들마저 이끼 바른 바위와 나무와 바람과 뼈를 묻고 결연하게 버티고 있는 내암리에 순례자의 얼굴로 걸어들어가 보라. '워터멜론 슈가'는 우리 사회에 없는 정신의 풍요를 말한다고 했다. 한낱 이상이라면 쉽게 파괴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풍요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 지는 순례자의 얼굴로 들어선 사람만이 알게 될 것이다.
 
 


 
 


 
 


 
 


 
 내암리는 모든 것이 눈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하루가 정령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내일이 거짓말이 될 확률이 높을 수 있는, 지금 손에서 놓는 순간, 이별하려는 마음을 되돌려 생각하게 하고 다짐하게 하는 징표들이 내암리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