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얼굴, 혹은 마지막 거인
“ 슬픈 얼굴, 혹은 마지막 거인 ”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에 보면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라는 학자가 흑해 밀림에서 만난 거인이야기가 나온다. 그 거인들은 밤새도록 별들을 차례대로 불러내어 이야기하고 혀와 이를 포함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불구불한 선, 소용돌이 선, 뒤얽힌 선, 나선, 극도로 복잡한 점선들로 이루어진 금박 문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나무, 식물, 동물, 꽃, 강, 대양의 모습이고 그들이 하늘에 대고 부르던 악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피부는 대기의 미세한 변화에도 말을 하듯 떨렸고, 식물, 흙, 바위를 먹으며 운모판 가루를 뿌린 편암으로 파이를 만들거나 장밋빛 석회 조각을 먹었으며 바위던지기와 높이뛰기 시합과 춤, 씨름을 즐기고, 밤이면 계절의 순환과 천체의 운행, 물과 땅과 공기와 불이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서로 결합하는, 감미로운 노래로 이어지는 퍼레이드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루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가 ‘거인나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을 써서 성공을 거두었고, 전국을 돌며 순회 강연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여행을 하기도 전에 여섯 마리 송아지가 끄는 수레에 실려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의 머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거인의 얼굴이 마치 저 바닥에서 올라오듯 애절한 목소리로
“침묵은 지킬 수 없었니?” 하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명예욕에 눈이 먼 한 남자의 이기심이 포병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했다는 자괴감으로 마무리하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운주사 천불천탑, 그야말로 이야기가 나은 시 같은 운주사에서 유난히 눈길을 잡아 끄는 돌부처 얼굴이다. 마지막 거인의 머리처럼 보였다. 처음에야 돌미륵이었겠지만 세월을 겪으면서 영욕의 인간 세상 얼굴을 보여주는, 우리네 초상처럼 보였다. 닳고 닳아서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는 천불천탑의 세계. 오래전에 절터였다지만 돌미륵들은 논과 밭 사이에서 쟁기질하고 가을걷이를 했던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별 헤는 밤, 신화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상향이지 않았을까? 살갗에 우주의 기운이 돌면서 노래 그 자체였던 자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동학농민혁명 때 머리 잘린 농민군들 같기도 한, 어디에나 볕들자 사라져버린 이야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