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쑥 캐다가 버드나무를 바라보다

참도깨비 2021. 9. 7. 09:07

 “ 쑥 캐다가 버드나무를 바라보다 ”


오창으로 넘어가는 팔결다리 밑으로는 미호천이 흐른다. 무심천 까치내와 함께 미호천, 이름 좋은 봄날 둑에서  쑥을 캐는데 아이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호득호득 잘도 논다. 한동안 뿌옇던 허공중에 봄이 오는 길목을 알리는 연초록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니 아이들은 가지를 붙들고 싶어서 신이 났다. 봄바람이 가는 곳 모르게 낭창낭창 불어대니 가지가 눈을 찌르기도 하는데 그저 신이 나서 벌써 나뭇잎처럼 매달리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저 아이들만 했을 때는 봄이 오는 냇물이나 강가에는 온통 버드나무 가지였던 것 같다. 호드기를 만들어 불면서 가지를 붙들려고 까불었던 기억이 가뭇가뭇 떠올랐다. 그러다가 여름이면 가지 몇 참 휘어잡고 그네를 타다가 냇물로 떨어지던 기억에 이르면 가슴 언저리부터 선뜩해진다. 딴에는 감수성이 예민해서인지 삼단 같은 머리채를 날리며 뛰던 짝사랑처럼 보이기도 하고 업어키우다시피 하던 누나의 뒷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쥐불을 놓은 강둑 아래 또 그렇게 여린 쑥이 쑥국쑥국 올라오는데 흥에 겨워 꼭 버드나무 가지 흔들리는 가락으로 뜯는다.
"불 타고 난 뒤에 나오는 쑥 색깔이 더 고울까?"
옆에서 열심히 쑥을 캐던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불 난 산에서도 가장 먼저 쑥이 나오듯이 저것도 희망의 빛깔이어서 그럴까? 정말 타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쑥 색깔과는 다르다. 인생을 갑절도 넘게 더 사셨으니 그런 것쯤 모르실까, 알면서도 뒤늦게 "너네들 잘 되라고 가는 거지, 기도 드리는 거지" 하며 뒤늦게 교회에 다니시며 깨알 같은 성경 귀절을 읽으시는 마음 그것이나 다름없겠지. 입맛이 없어지고 더 맛난 것 없이 아이들 남긴 밥에 국 말아 드시는 마음을 어찌 모를까, 아니 이제야 그걸 아니 벌써 한 소끔 끓어넘친 쑥국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 따라 버드나무 가지를 붙들고 그네를 타고 싶지만 참는다. 아직 여린 가지들이 허락하지 않기도 하지만 바람 사이에 호득호득 소리내며 춤을 추는 가지만 바라봐도 아이들이 물바가지에 띄어 건넸다는 그 버들잎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일이다. 아이들 데리고 호드기 만들어주러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