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나가야 할 고난인 것 같다
버텨나가야 할 고난인 것 같다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 시를 중심으로
거의 28년 만에 전통의 라이벌 학교에 왔다. 아이들이 질문지를 만들어놓고 기다린다. 선생님 말로는 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거의 신상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중학교 1학년은 언제나 새롭게 만나는 벽이기 때문이다. 중2병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라면 중1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섬, 아니 바위섬(여礖; 바닷물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는) 같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태어났다면 어느 중학교 나왔어요?”
이런 식으로 나오니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청주중학교와 전통의 라이벌?”
“아! 거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누르며 야유의 눈짓을 보내는 아이들은 보나 마나 야구 선수들이다. 그때는 무슨 대회만 나가면 응원 연습하느라 바빴다고, 혜성과 같이 나타난 왼손 투수(지금은 레전드가 된) 때문에 날마다 이겼다고 하니 다 옛날 이야기란다. 지금은 상대도 안 된다며 그러는 것이다. 오늘 수업에는 야구 선수들이 반이어서 전통의 라이벌은 제쳐두고 잔뜩 기가 올랐다. 청주중 야구부의 에이스들이 다 모인 셈이다. 포수, 2루수, 투수, 각각의 포지션에 맞게 자리에 앉아 교실 안을 다이아몬드 구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미리 짜고 들어온 듯 보이지 않는 스크럼을 짜고 질문 공세부터 한다. 상대편 선수들 기를 죽이기 위해 별소리를 해가며 떠들 듯이. 그렇다고 기가 죽을 것은 아니지만 정작 기가 죽은 편은 비선수들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질문 속에 시가 있고 시인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가 다 들어 있다. 시 한 편 쓰는데 얼마나 걸리느냐, 얼마나 버느냐, 시 쓰고 아픈 적이 있느냐(이 질문은 선수들이 겪는 슬럼프나 부상과도 같다)는 폭풍 질문 속에 길이 있다. 그리고 오늘 쓸 시가 다 들어 있었다. 전통의 라이벌이었던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은 시만이 가진 힘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것 또한 묘하게 통하는 느낌이었다. 야구 이야기가 나오니 선수들은 신이 났고, 그에 질 새라 게이머가 꿈이라는 친구가 손을 들고 말하기 시작했고 점점 균형이 맞아가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끌어모아 나름의 전광판 점수가 나왔다. 굴욕을 참아가며 버텼던 29:1로 진 경기의 점수가 아니라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낸 전광판을 공개한다.
나는 제목을 안 적었다.
나는 생각을 안 했다.
나는 내용도 생각 안 했다.
우리는 끄적끄적 쓴다.
우리가 끄적끄적 여러 줄 쓴다.
이게 제목 없는 시다.
우리가 끄적끄적 쓰니까
다 썼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조윤서, <무제>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잔뜩 멋을 부르듯 ‘무제’라 쓴 첫 시. 다분히 의도성이 넘치는, 그러면서도 당당한 시다. 무제란 제목을 달 수밖에 없는 시라는 걸 이렇게 간단하게 야유부리며 쓴 시가 또 있을까? 시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무제를 달았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생각하자, 뭐 별 거냐는 식으로 썼다. 다들 끄적끄적 쓰느라고 고생이 많았다고 어깨를 툭 치듯 말하는 배짱이 느껴진다. 어느 학교를 가나 꼭 한 명씩 나오는 배역이다. “시를 쓰고 있다./시를 쓰라고 하기에/시를 썼다 이것은/시다.”( 음성 한일중 김용윤, <시>)과 같은 성격파 배우.
그러니 뒤따라 한준이가 빛의 속도로 쓰고 시 종이를 덮는다.
그에게서 빛이 난다
머리에서 빛이 난다
박한준, <빛>
여기서 빛은 그저 ‘빛’일 뿐이다. 빠르게 첫 인상을 잡아 닭의 목을 친 것처럼, 백지 내기는 그렇고 두 줄 쓰고 덮어놓은 시험지 같다. 때론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빛의 속도로 쓰는 시가 좋은 것도 있다. 누구를 지목하지 않은 제목이라 초간단 시가 되었다. 하긴 시 쓸 시간은 쉬는 시간 합쳐 20분 안팎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하다. 그런 점이 더 솔직하고 빛이 나는 시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새가 되어 보고 싶다.
누군가는 생각해 본다.
작든 크든 강하든 약하든
꿈에서처럼
자유롭게 저 멀리
날아가 보고 싶다.
김무섭, <새>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 다르지 않다. 한 번쯤은 꿈꾸었을 새. 무거운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욕망은 항상 현실을 생각하게 하기에 ‘작은 크든 강하든 약하든’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누군가는 생각해 본’다고 했을까? 스스로의 갈망이면서 주춤거리듯 감추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다음 행에서 말한 ‘~든’에 해답이 들어있어서 저 스스로 날아가는 마지막이 여운이 남는다. 차별 없이 누구나 그런 꿈을 꾸는 존재임을 말하면서 ‘자유롭게 저 멀리’ 날아가고 싶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흔히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몇 자를 덧붙이고 방향을 틀었기에 새로운 시가 되었다. 화장실에서 자주 보는 명언들이 자기 몸에 들어와 날개를 만들어주고 스스로 날게 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것처럼 시가 그런 쓸모를 찾은 경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친구
모든 것이 새로워서
재미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이 새로워서
떨리기도 한다
장현일, <새 학기>
평일마다 매일 오는 학교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매일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교.
친구들 모두 모여 놀고 공부하고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학교.
종류가 4가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학교부터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교.
대학교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도록
만드는 학교.
우리 모두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하자.
송민준, <학교>
그러면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두 편의 시처럼 고여 있는 시. <새 학기>의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학교> 안에서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더군다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현실까지 덧붙여 생각하면 ‘새로움’과 ‘노력’ 앞뒤의 이야기가 더욱더 아쉽다. 마스크를 쓰고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선생님이 “내가 네 담임이야?”하고 말하니 엄마 차 유리창을 열고 한참 바라보다 얼굴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일화처럼 한 가지라도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 학교는 더 말해서 무엇할까 싶을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 공간이니.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읽은 시는 그나마 학교 안에서 이루어진 이야기의 끈이 보여서 좋았다. 아이들이 겉멋을 부리는 자주 하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그 점을 손수 보여준 친구가 승윤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식으로 잔뜩 멋을 부리듯 쓴 존재감이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는, 살아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존재감 그것은
사람의 물건 그리고
버릴 수 없는 감옥 같은 존재
우리는 존재감을 갖고 살고
존재감을 갖고 죽는다.
우리는 존재감을 모르고 살고
알다가 시간이 지나 죽는다.
존재 안엔 존재 그마저도 존재감
우린 존재감이다
김승윤, <존재감>
역시 어디서 본 것과도 같은 ‘존재감’ 이지만 스스로 눈덩이 굴리듯 몸집을 불린 티가 난다. 존재감이란 사람을 간지나게 하는 물건일 수 있고, 버릴 수 없는 감옥일 수도 있다는 것은 어디에서 찾은 것일까 궁금하다. 존재감에 살다가 존재감에 죽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뭔가 삶의 광맥 같은 걸 찾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혹 모르고 살더라도 알고 나면 죽는 존재임을, 서양 철학의 중심 주제인 ‘주체’를 달리 말하는 듯 보인다. 무엇에 영향을 받았든 허세로 말했든 자유로운 시 날개 하나를 가졌으니 잘 되었다 싶다.
지우개야 내가 널 안 지워줘서 미안해!
하지만 안 지워지는 지우개도 있어
그리고 잘 지워지는 지우개도 있어
유택은, <지우개>
‘지우개’는 초등 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지우개가 지우개를 낳고 지우개로 마무리되는 안타까운 반복. 그러나 여기 지우개는 뭔가 다르다. 단순하게 지우는 소대로 쓰였던 것에서 벗어나 지우개를 지우는 주체로 화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우개로 말끔하게 지울 수 있으면 좋을 것들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면 일종의 역할 놀이처럼 지우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널 지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우개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게 마련이라는 말일까? 지우개를 스스로 지우고자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면 또 다르게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자기가 썼다고 해서 읽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기에 역시 읽는 이들이 다양하게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못 생겨서 놀림……
공부 못 해서 놀림……
운동 못 해서 놀림……
여친 없어서 놀림……
핸드폰 없어서 놀림……
왜 놀림을 받는 걸까?
임동진, <놀림>
2학기 주제 선택
슬기로운 국어생활
재미있는 국어
벌써 인원이 다 찬 국어생활
한 명만 빠질 수 없을까
나도 들어가고 싶다.
임동진, <슬기로운 국어생활>
두 편을 쓴 동진이는 선수가 아니기에 그런지 몰라도 다른 편 스탠드에 앉아 자기만의 고민 지점을 말했다. <놀림>은 1인칭 시점인지 관찰자 시점인지 알 수 없으나 ‘못’ 하고 ‘못’생기고, ‘없’다는 것 때문에 놀림 받을 일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친구들의 공감을 얻었다.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무엇보다 놀림을 놀림으로 받아들이는 당사자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 이의 다양한 대답이 필요한 시가 되었다. 다음에 오는 시는 학교 안의 이야기가 하나씩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마중물 역할을 한다. 알고 보니 어느 과목을 좋아했는지 물어보던 친구다.
읽고 씹고를
반복하여
친구를 생소하게
만들고
1이 없어져도 답하지 않는
나
친구는 나를 만나자마자
눈으로 욕을 한다
이로운, <읽씹>
이름과 시 내용이 엇박자를 보이는 재미있는 시다. 요즘 쓰는 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들러냈다. 이로운의 재해석 같다. 학교 안의 이야기가 물꼬를 트도록 돕는 서로의 시가 끼친 좋은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공감만 있어도 좋은 것이니까 ‘읽씹’이란 말이 재미있게 읽힌다. 이어 나온 ‘시계’도 그렇다.
시계는 매일 돌아간다
하지만 건전지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시계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
특히 점심 시간에 시계를 많이 바라본다.
그래도 시계는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내가 시계라면 빨리 돌아갈 것이다.
점심을 빨리 먹을 수 있게
이예원, <시계>
점심 시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배고플 나이니 충분히 공감이 가는 시다. 시계 또한 지우개처럼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부끄러움도 타지 않고 빨리 시침을 돌려 점심을 빨리 먹을 수 있게 하는 ‘시계’는 예원이의 독보적인 발견 것 같다. 중 1학년다운 발상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쓴 시라 고맙다.
학교 지각해서 시간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밥 먹을 때 늦게 와서 죄송해요.
수업 시간에 종 치고 들어와서 죄송해요.
시간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서지호, <시간 약속>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미안해요
온라인 안 들어서 미안해요
말대꾸해서 미안해요
사고치고 다녀서 미안해요
수업 시간에 떠들게 해서 미안해요
선생님이 말할 때 떠들고 딴짓해서 미안해요
뭐든 게 다 미안해요
서지호, <선생님 미안해요>
지호는 두 편의 반성문을 냈다. 숙제라고 해서 낸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반성문이 요구하는 것이 스스로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아는 것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수면은 정말 이상하다.
평일에는
졸리고 늦잠을 잔다.
그리고
수면은 불면증이 된다.
수면은 이상하다.
주말에는 일찍
일어나며 졸리지 않다.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수면 부족이 된다.
수면은 억울한 존재이다.
김다니엘, <수면>
다니엘(흘려 써서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는 잠의 다른 이름으로 썼다. ‘잠’이라 하지 않고 ‘수면’이라고 하니 뭔가 더 이상하고 억울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수면이 불면증이 될 법도 하다.
나에게 있는 큰 상처
나의 팔에 있는 상처
1학년 때 놀다가 난 상처
그때는 큰일인지 몰랐던 큰 상처
지금 나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존재
하지만 믿어야 하는 나의 상처
하지만 믿지 못하는 상처
그래도 믿어야 한다.
나의 큰 상처.
최규영, <나의 큰 상처>
규영이는 그림까지 그려서 자신의 상처가 큰 상처임을 보여주었다. 길게 흉터가 남은 까닭이다. 그때는 큰일인지 몰랐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오래 간다. 잊을 만하면 떠올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다. 규영이의 자신의 상처와 대화를 나누기라도 한 것처럼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다. 치유는 스스로 믿는 것으로 시작하고 좌절하고 다시 믿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음을. 큰 상처로 인해 왠지 부쩍 큰 느낌마저 든다.
예전에는 새 것이었던 내가
이제는 고물이 되었다.
쓸모없다……
“버려지겠지”
지난날들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태현, <고물>
규영이에 비하면 태현이의 <고물>은 쓸모없어 버려질까 두려운 또 다른 상처이다. 중 1학년이 벌써 ‘고물’이라면 표현을 쓸 만큼, 게다가 ‘지난날들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 것은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어떤 물건처럼 새 것이었다가 쓸모 없어 버려지는 것에 대한 간접 경험이라도 좋으니 잘 썼다 칭찬을 해 주었다.
무뚝뚝하신 아빠.
말이 많지 않으신 아빠.
맨날 집에서 누워 계시는 아빠.
술 마시고 오셔서 행패 부리는 아빠.
엄마와 싸우시는 아빠.
아침 일찍 나가시는 아빠.
항상 나를 생각하시며 자랑하시는 아빠.
가족을 위해서 항상 수고하시는 아빠.
힘든 일을 하시고 돌아와서 피곤하신 아빠.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는 아빠.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아빠.
○○○, <아빠>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시를 읽어줄 때 서로의 첫 부끄러움 때문에 이름을 빼고 들려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아픔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아빠!’를 외치는데 가족이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충동이 앞선다. 그렇지만 그럴 권한이 없으니 조심스럽게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왜 아빠는 이 친구에 집착하는 것일까, 잘못 되풀이되고 있는 일을 알면서도 왜 ‘나를 사랑하시는’ 아빠일까. 서로의 관계는 어느 지점에 엇갈린 것일까. 연원이 깊어 보이는 문제다. 이것마저 스스로 풀 수 없다면 시로 인해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를 써서 표현하고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함께 고민하고 해주어야지 않을까 싶다.
혀는 사람들에게 고운 말과 고마움을 표하는데
도움을 주는 선의의 도구이다.
하지만 혀는 불화와 악담의 원인이자
사람들의 거리를 멀게 하는 고문 도구이다.
어쩌면 혀는 신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자 재앙인 것 같다.
그 도구의 사용 방법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황윤하, <혀>
윤하는 그 시발점을 아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가진 ‘혀’가 선의의 도구이자 고문 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불화와 악담의 원인, 폭력의 원인이기도 하니 어떻게 쓸 것인가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시에 나오는 아빠가 그냥 누워만 있지 않고 진짜 ‘사랑’의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안타까움이 밀려들게 한다. 그러니 ‘혀’는 간단하면서도 깊은 생각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뿌리를 짚어 내려가면 모든 것을 만든 원인과 해결 방법이 보이는 것임을 ‘혀’ 가 보여주고 있다.
모기는 대체 왜 있는 걸까?
모기가 옆에 있으면
좋은 건지 손사래를 치게 된다.
밤에 모기가 시끄러운
노래를 부른다 왜앵~ 왜앵~
내가 말했다
모기야, ―조용히 해줘
모기가 말했다 ―왜용? 왜용?
이민수, <모기>
승자는 기뻐하고
패자는 슬퍼한다
마치 나와 태욱이처럼
마냥 패배하는 태욱이
내가 승자니까 이해해주며
하루하루 참는다.
○○○, <승자와 패자>
폭풍 같은 시가 지나가고 잠시 비 갠 하늘 아래 웃고 지나가는 모퉁이 같은 시 두 편. 민수의 <모기>는 <승자와 패자>와 한통속처럼 보인다. <모기>란 존재가 그렇다. 파리보다 단순하지 않아서 온 신경을 쓰게 하는 존재여서 어른들의 시에도 자주 등장한다.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에 “왜용! 왜용?” 하고 말하는 모기와 패자의 자리에서 한껏 폼을 잡으며 승자니까 참아준다는 목소리가 닮아있다. 이 또한 웃음을 주는 것이니 잘 쉬었다 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웃픈 재미를 주는 것도 요즘 미덕이니.
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일본 애니, 미국 애니, 한국 애니를 많이 좋아한다.
내 최애 만화는 요괴워치, 항상 요괴워치는
‘게라게라포게라라게라포’ 거리는
민호와 아주 초코바를 좋아하는 지바냥
아주 멋있는 만화이다.
그리고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맨날 ‘××짱’ ‘짱’ 이러기 때문이다.
그게 중독되면서 ‘현준짱’ ‘현준짱’이 있다.
백준석, <애니메이션>
우리 형 날두
“날두 형 왜 그랬어, 형”
날두 형은 노쇠로 인지도가 낮아졌다.
하지만 난 날두 형을 좋아한다.
‘날두 짱’ ‘날두 짱’ 나도 모르게 부르게 되는
나의 마약 날두 형
호날두를 보며 나도 멋진
선수가 되어야겠구나 생각한다.
호날두는 내 꺼!~ 호날두는 내 꺼!~
날두 형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해서 아주 불쌍한 선수여서 좋아하는 거다.
백준석, <호날두>
준석이는 야구팀의 2루수. 작고 똘방똘방한 아이지만 단단해 보이는, 야구팀의 재미와 활력을 담당하는 붙박이 2루수. 자신은 걸음도 느려서 그냥 2루수라고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하나같이 빠르고 능력도 뛰어난 에이스라고 추켜 세운다. 질문도 가장 많이 해서 비기기 위한 축구 경기 전략을 썼지만 두 편의 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보여주었다. 무슨 애니를 좋아하냐, 혹시 축구를 한다면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처럼 그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흔적을 남겼다. 솔직하면서도 단순하게 거침없이 표현을 해 주어서 칭찬을 해주었다. 나중에 큰 선수가 될 것 같다. 호날두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호방하게 쓴 것처럼 어찌 보면 이 시가 자신이 걸어갈 선수의 길 또한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은 재밌다.
나는 재밌는 걸 좋아한다.
게임과 나는 인력이 작용한다.
S극과 N극처럼
새로 뗄 수 없다.
게임은 재밌다.
나는 재밌는 걸 좋아한다.
게임과 나 주변에는 친구들이 있다.
S극과 N극처럼
주변에 있는 자기장처럼.
○○○, <게임과 나는 S극과 N극 관계>
될 수 있을까?
노력을 해도
거기서 거기
정말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
더욱 노력해서 이 꿈을 이룰 것이다.
김관모, <프로게이머>
야구 선수 사이에 앉은 두 친구는 게임으로 의기투합했다. 앞선 시는 게임을 지극히 좋아하는 것 같고 관모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좋아하는 것과 목적을 가지고 그것이 되고 싶다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극과 극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것과 능력이 부족해서 고민하면서 시작하고 있는 관모. 차이는 당연하다. 차이를 어떻게 자신만의 장점과 무기로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 관모는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정말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더니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써 주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말은 단순하다. 노력과 노력 사이에 길이 있다. 더 많이 알아야만 쓸 수 있다. 그 길을 어떻게 찾고 만들어가는지 알고 난 다음에야 쓸 수 있지 않겠냐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하… 또 홈런이네.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할까
우리 팀이지만 우리 투수가 너무 밉다.
다리가 저려오네.
공격 3분, 수비 50분.
너무 괴롭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선
버텨나가야 할 고난인 것 같다.
최현준,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하나>
이제 다시 야구로 돌아가 마무리하는 시간. 야구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고 끝나는 것도 전통의 라이벌 학교 출신다운 일이기에. 현준이는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게 있었다. 집요하게 질문을 하며 도루를 하려다가 잡혀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야구에 대해서 쓰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이 나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패배의 날에 대해서 쓴다고 했다. 29:1로 허망하게 경기를 말아먹은 날에 대해서. 29:1로 제목을 잡을 수도 있었으나 역시 프로 선수를 꿈꾸는 에이스답게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하나>로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같은 팀의 일원이지만 패배의 원흉일 수도 있는 한 선수에 대한 원망을 지우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경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아직도 돌려보는 전통의 라이벌 팀간의 경기에서 웃고 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준이 또한 10년 뒤에 프로 선수가 되어 텔레비전에서 보기로 약속을 했기에 미리 박수를 쳐주었다. ‘흘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 걸어야 할 고난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패배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를 빌리지 않아도 고난의 한 모습이자 성장판과도 같다는 걸 알기에 모두가 박수로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러니 다음에 오는 야구 시는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가면
계속 앉아 있는다
왜냐하면 경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서이다
유다한, <야구장>
나는 야구가 좋다.
야구를 하면 기분이 좋다.
야구를 하면 마음이 맑다.
이상혁, <야구>
무엇보다 상혁이는 왜 야구가 좋은지 확실하게 말했으니 준혁이와 함께 또 다른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경기장에 나서면 마음이 맑아지는 그 기분을 계속 이어가서 훌륭한 선수가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소득이 많다. 두 옆로 나눈 청주중학교 시 관중석에서 나온 여러 편의 시가 있어 기쁘다. 관중석만이 아니라 저마다 선수가 되어 홈런과 안타를 날렸기 때문에 이런 승리의 기운이 학교 생활 내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