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목련꽃을 보내며
참도깨비
2021. 9. 7. 09:14
“ 목련꽃을 보내며 ”
꽃샘추위를 이겨낸 목련나무가 비릿한 황사와 빗속에 떠내려갈 뻔한 날 살렸다. 겨울눈에 눈이 내려 쌓인 모양이 봉곳한 산사의 탑처럼 보이더니 어느새 목련꽃이 탁발하듯 조용히 펼칠 때 고개 아프도록 하늘을 쳐다보아도 좋았더랬다. 목련꽃 아래 겨울눈을 보니 짐승털이나 마찬가지로 따뜻하여 한참을 어루만졌다. 웬만한 추위도 이기지 못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니 목련꽃을 감쌌던 껍질이 진짜 짐승의 털처럼 보였다.
그런 목련꽃도 져내리는 날. 생각은 생각을 불러온다고 목련꽃잎들이 소지라도 올린 것처럼 보였다. 종이가 원형을 그대로 드러낸 채 타버린 것처럼 보여 나무 아래 어슬렁거리다가 혼자 웃었다. 잎들이 타들어가는 것도 제각각인데 몇 몇 꽃잎들이 사람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할머니부터 어린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고 술이 덜 깬 사람 얼굴로도 보여 한 데 모아놓았더랬다. 꼭 다음 생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끝없는 이야기처럼 돌고 도는. 곳곳에서 꽃들은 앞다투어 피었다가 져내리는데 사람들만 심사가 부풀어올랐다가 다시 틀어지니 꽃잎들도 분분히 날리며 할 말이 참 많겠다 싶다. 저 꼬락서니들 좀 봐, 하면서 혀를 차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혼자 웃게 해 준 목련꽃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