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공존을 위하여
또 다른 공존을 위하여
- 김정애 장편동화 『안녕, 나야 미호종개』(옐로스톤)
이종수
남한강에 사는 어부가 있었다. 평생 남한강 지류에서 고기를 잡아 손님 대접을 하며 살다 보니 검게 탄 그의 몸은 메기나 쏘가리과에 가깝다. 이름도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김선달로 불린다. 그가 아재개그처럼 하는 말 가운데 아직도 웃기는 것은 “잉어한테 뺨 맞아봤냐”는 말이다. 사람 몸집만 한 잉어를 잡은 이야기를 하며 그가 실제로 버둥대는 잉어한테 뺨을 맞았다는 말이다. 다 남한강이 만든 전설 같은 이야기다.
김정애 소설가의 『안녕, 나야 미호종개』를 읽으면서 남한강을 생각했다. 고기를 잡는 어부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왜 서두를 이렇게 꺼냈을까, 묻는 분이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김정애라는 이야기꾼의 미호천 이야기가 남한강 지류에서 작살과 그물로 고기 잡고 사는(미호종개와 날파람 부대가 숱한 고초를 겪는 것을 떠올려 보면 부적합한 조합이긴 하다) 어부 이야기와 억지로 꿰어서 말하는 것은 따로 있다. 언젠가 그가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잡아주는 쏘가리를 본 적이 있는데, 거친 숨을 몰아쉬고 깊은 물까지 들어갔다 온 그의 모습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잡혀 온 쏘가리마저 행복해 보였고 이것이 다 남한강을 지키고 있는 어부의 힘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물고기만 보면 어릴 적 체를 들고 도랑을 쑤시고 다니던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이니 용서하시라. 『안녕, 나야 미호종개』에 나오는 미호천의 물고기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가 오래 오래 숨을 참나, 내기를 해며 물속에 들어갔을 때 생각이 절로 났다. 그때보다 더 오래 숨을 참게 된 어른의 몸이지만 물속에서 바삐 몸을 뒤채며 지느러미질을 하는 물고기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쑥을 찧어 물안경 안쪽을 닦고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미호천은 이름만큼이나 오래오래 남아야 할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막 미호천 탐사를 다녀온 소설가를 통해 듣는 미호종개의 삶 또한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될 내리내리 이어져온 이야기의 젖줄이 아닐 수 없다. 왜 미호종개가 미호천에만 살게 되었는지 생물학적 고찰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네 삶의 공간 사이를 흘러 바다로 나아가는 이야기 또한 우리가 숱하게 넘던 고개처럼 지켜져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날파람 부대’를 만들어낸 이야기꾼의 재치는 미호천을 아끼는 작가로서의 또 다른 사명이지 않을까.
날파람 부대는 미호천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미호강에서 가장 빠르게 헤엄을 치는 건강한 젊은 청년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날파람 부대에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지형을 잘 보는 방향 감각의 천재 참붕어, 상처가 난 곳을 치료해주는 치료사 버들치, 미호강 민물고기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신호 수신의 대가인 전령사 강준치(강춘치에서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베스와 같이 공격성이 강한 강준치는 바다에 사는 준치가 민들화되었다는 설과 오래 전 어부를을 위해 어느 대통령의 부인이 들여왔다고 해서 ○○○고기로 불리기도 했다는 설 따위가 있지만) 등등 (P 54)
날파람 부대야말로 미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다. 날파람 부대를 이끄는 메기 대장이나 눈치, 대농갱이, 납지리, 모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던 이름들이다. 어쩌면 리처드 부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란 소설에서 미국이 잃어버리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낙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문이 떨어진 간이화장실이 이야기하고, 램브란트의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나는 『안녕 나야 미호종개』를 읽으며 다시 꿈꾼다. 남한강 어부와 브라우티건이 “나는 녹슬고 구부러진 못에다가 마치 내 어린 시절처럼 흰색 줄을 묶고, 사슴고기를 떡밥으로삼아 송어를 잡으려고 했다. 정말이지 거의 잡을 뻔 했는데, 하필 끌어올리는 찰나, 송어는 못에서 벗어나 램브란트라는 이름의 화가의 이젤에 속한 17세기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는 마지막 대목에 말한 것처럼 기이하지만 그 셋이 함께 공존하는 미호천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브라으티건의 짧은 소설에서 나오는 카르사지 강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구에서 왔다가 지구로 돌아가는 격류다. 나는 내 물의 주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나는 비를 한 방울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부럽고 강한 흰 근육을 보아라. 나는 나 자신의 미래다!” 미호천 또한 카르사지 강처럼 말하고 싶을 것이다. 모두에게(하늘, 바람, 근처의 나무, 사슴, 그리고 별에게까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강인지 말하고 싶어한 것처럼.
그런 점에서 미호종개 이야기는 김정애 소설가가 막 시작한 이야기의 첫 시작이라고 여기고 싶다. 벌써 앞에 낸 미호천 탐사기가 소설 속에서 램브란트 하천과 카르사지 강처럼 펼쳐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