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란 남의 눈치를 보며 숨어있지 않는 것
용기란 남의 눈치를 보며 숨어있지 않는 것
옥천 청산중 3학년 학생 시를 중심으로
다시 청산에 왔다. 청산고에서 처음 만났던 시인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시를 읽어보면 이곳은 깊은 바다를 가진 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가 있어
한없이 깊고도 푸른 바다
사람들은 그곳을 ‘슬픔’이라 부르지
이따금 그곳에 누군가가 빠지면
어떤 이들은 쉽게 헤엄쳐 나오지만
어떤 이들은 하염없이 가라앉아
손을 잡아달라 애처로이 외치지.
이따금 그곳을 내다보긴 했어도
그곳에 있는 사람을 구해주지는 않아
그곳에 가본 적이 없는 이들은
얼마나 그곳이 깊은지 모르거든
얼마나 푸른지
얼마나 무서운지
가라앉아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사람들은 그곳을 ‘우울’이라 부르지
사람들은 그곳을 ‘고립’이라 부르지.
○○○, <바다>
어떤 친구는 청산의 창문 밖을 내다보며 큰 도시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거나, 불투명한 미래와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고립’과 ‘우울’의 바다를 말하자 모두가 큰 파도가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더랬다.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친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라앉아보지 않으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심연의 바다, 고립과 우울, 그리고 저마다 품고 있는 마음의 바다를 이렇게 시로 겪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우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이쪽을 갔는데 저쪽에서 만나고
저쪽에 갔는데 이쪽에서 만났다
우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그때의 추억이
우연과 같다.
추억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전민영, <우연>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민영이의 시를 읽고 다시금 떠올렸다. ‘추억’이란 말은 가볍기만 하다 그보다 ‘기억’이라는 말이 더 적확할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이어져 더 놀랍고 반갑고 살뜰한지도 모른다. ‘이쪽을 갔는데 저쪽에서 만나고/저쪽에 갔는데 이쪽에서 만났다’는 말은 어느 한 지점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시를 쓴 사람이 설명하면 되겠지만 그럴 의무는 없다. 그런 상황이 어떤 것인지 헤아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앞의 사건 때문에 뒤의 일이 이어지는 ‘필연’도 필연이지만 우연처럼 다가오고 만나게 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그때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면 더 쉽게 화자의 마음을 알 수 있겠지만)한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를 짚어 말할 줄 아는 것이 시의 기본이지 않을까.
개미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한다.
김상현, <개미>
그런 점에서 상현이의 <개미>는 아쉽기만 하다. 짧은 시간 안에 뭘 쓸지 고르고 써내기까지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맛보기 시를 통해 어느 것 하나라도 쓸 수 있었을 텐데 그야말로 아주 쉬운 길을 선택해 버렸다. 그래도 ‘개미’의 일을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행복은 늘 찾아온다.
어느 누구에게나 행복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엄청나게 큰 행복
어떤 사람은 소소한 행복
우리는 행복을 멀리서 찾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지금은 내 얼굴이 웃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행복이다.
윤시인, <행복>
자신 안에 복작이는 이야기를 선뜻 꺼내 쓰기 어려운 일이어서 소재를 찾다가 흔히 가져다 쓰는 ‘행복’을 쓴 시인. 이 시의 골자는 ‘내 얼굴이 웃고 있다면/바로 그 순간이 행복’에 있다. 자신에게 묻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가족이든 친구와 얽힌 학교에서든 틈만 나면 우리는 묻는다 ‘행복’하냐고. 선뜻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이란 말이 없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에게 ‘잘 살고 있느냐?’고 묻는 듯 압박감이 느껴져서 그럴까? 시인에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행복’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을 넣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행복’이란 말은 거창하든 소소하든 자기가 만족하는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니. ‘지금 내 얼굴이 웃고 있다면/바로 그 순간이 행복’이라고 하는 시인에게 행복은 소소한듯하면서 시를 읽는 사람에게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을 강조해서 다시 읽어주니 다른 친구들이 훨씬 더 공감하는 것으로 보아 적절한 시점에서 잘 쓴 시가 되었다.
항상 부족하다
잠만 자도 부족하고
공부를 해도 부족하고
놀기만 해도 부족하다
지금도 부족하다
기다려 달라고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매정한 놈
이규형, <시간>
‘행복’만큼이나 ‘시간’도 각자가 정의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시간이 빠르고 느린 것도 각자의 시간이 다른 형태로 흐르기 때문이듯이 규형이에게는 시간이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그저 벅차고 부족할 뿐이다. 잠을 자도 공부를 해도 놀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어서 늘 쫓아가다 마는 듯 느껴지는 모양이다. 인생은 놀다 가도 부족하고 공부를 해도 다 하지 못하고 잠만 자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게으르다고만 할 수 없다. 그저 볼멘소리로 들어달라는 듯 ‘매정한 놈’으로 말하고 있는 규형이의 얼굴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색
검은 색
눈을 감으면 보이는 색
검은 색
지나가다 보면 보이는 사람들의 옷색
검은 색
그리고
내 미래도
어두컴컴 검은 색
김소희, <검은 색>
시간에 이어 ‘미래’는 어떤가. ‘행복’의 뒷장처럼 넘기면 있는 ‘미래’이자 ‘앞날’에 대한 불안은 여러 시에서 중복되는 말이다. 왜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일까. 어느 철학자는 과거의 일이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집어삼킨다고 했다. 여기서는 딱히 과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꾸만 재촉하는 지금의 요구들에 휘어잡힌 느낌이다. 어떻게 해라, 무엇이 되라는 강요이거나 그것마저 가늠할 수 없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의 불안을 ‘검은 색’으로 칠한 것 같다. 어둠의 실체는 없는 것이고 그저 빛이 없는 상태란 말처럼 불안한 것인데 시로 질문을 던졌으니 그것을 찾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가끔 나는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래서 찾게 된 결론,
나는 나 그 자체다.
복민수, <나>
그런 점에서 민수가 찾은 ‘나’는 최소한의 징검돌이다. 생각하고 찾는 지금이어야 한다는 듯 다시 외길 ‘나’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그래서 시를 읽어주고 공감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이나 ‘미래’까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는 길이야말로 ‘검은 색’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지 않을까.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늘도 우울한가 보다
비가 그치고 나면
이번엔 내가 울 것만 같다.
장욱현, <비>
욱현이는 비를 바라보며 ‘우울’하다가 비가 그치자 ‘내’가 울 것 같다고 했다. 끝내 숨겨두었거나 눌러놓았던 감정의 물꼬가 터지는 걸까. 짧게 쓸수록 반향이 큰 시다. 이렇게라도 자신의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쓴 시와 다른 친구가 쓴 시가 만나 묻고 답하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해결책을 찾게 해주는 시간이기에 시화를 곁들여 전시회를 하며 또 다른 만남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1년이란 모든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뜨는 날
1년간 나는 무엇을 하였을까
다치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내 꿈을 찾으며 나라는 존재에
한 발자국 나아갔을까?
남은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지냈을까
김홍찬, <1년 365일>
그러면 홍찬이에게도 앞의 시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라는 너무나 큰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모래로 만들어 노는 것처럼 ‘다치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들이 1년을 채우고 ‘나’를 만들어가는 길이란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새벽 향기가 코끝 맴도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새들의 아침 인사와 가족들 벌어먹이려는 엔진 소리
조금은 어두운 하늘
그마저 혼을 쏙 빼놓았다.
박수미, <병>
수미가 제목으로 잡은 ‘병’은 유리병이다. 제목 옆 그린 유리병(그대로 ‘병’인 것인지 아니면 맥주병인지 B가 적힌)이 아니라면 아침나절의 혼곤함이 느껴지는 일상이다. 제목과 바로 이어지지 않는 내용 때문에 갑자기 어려운 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병이 놓여있는 아침이라면 뭔가 다른 이야기를 숨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 제목일 수도 있다고 봐도 좋을, 시는 이런 어렵고 알싸한 맛에 읽는다는 말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들어보고 시의 다른 면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처음엔 살기 위해 도망 가겠지
두 번째엔 죽지 못해 발버둥치겠지
세 번째엔 죽음을 체념할까?
네 번째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겠지
내가 개미라면
밟혀 죽는 게 나의 운명이라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 죄 없이 밟혀 죽는
개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김지슬, <개미가 네 번 밟히면>
아버지 ……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김지슬, <아버지>
지슬이의 시는 우화처럼 ‘개미’ 이야기를 꺼내들었지만 뭔가 절실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개미’는 자신이거나 그런 상황에 빠진 누구를 말할 수도 있다. 도망갈 수 있는 처음 상황에서 발버둥치고, 체념하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우리 사람에게도 다가오는 당연한 죽음의 과정이기도 하기에 ‘개미’에게도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 하고 우문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달아 쓴 <아버지>도 같은 시처럼 보일 만큼 더 큰 존재에게 묻고 있는 듯 절박하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교와 가족 안에서 만들어주는 환경 또한 필요해 보인다. ‘날 보고 있다면’에서 뭉클해진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말해준다.
사람들은 표현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해 라고 하고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해 라고
쓰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 좋아해보단
사랑해라고 하고 있다
근데 사람들
표현은 모두
다르다.
○○○, <좋아해>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까. 읽는 과정에서 눈빛과 약간의 동작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설레는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한 시다. “걔, 지금 짝사랑 중이야!” 하고 다들 알아보는 눈치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좋아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사랑해!”라는 말이지만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는 ‘좋아해’라고 쓰는 것만 해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마무리로 다시 말한 ‘근데 사람들/표현은 모두/다르다’를 빼면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용기란
남들의 눈치를 보며 숨어있지 않는 것.
자기 혼자 생각이 다를 때도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무엇보다 다퉜을 때 먼저 사과할 수 있는 것.
설준서, <용기>
준서의 시가 조금은 힘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자기만의 ‘마음사전’을 만들 듯 ‘행복’에 이어 ‘용기’를 꺼내든 준서의 말은 확신에 차 있다. 이렇게 같은 말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마음사전으로 재편성해보는 것도 좋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처럼 세상의 말들을 자신의 언어로 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준서의 ‘마음사전’에 따르면 ‘용기’란 남들 눈치 보며 뒤에 숨어있지 않는 것이자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하는 것이자 자신이 초래한 잘못 앞에 재빠르고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하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오호!”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다.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해’라고 쓰는 것도 ‘용기’일 테니 서로 서로 주고받는 시가 되었다.
사랑은 불꽃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잘 타는 장작을 썼다
나는 더 크고 예쁜 불꽃을 갖기 위해
나의 잘 타는 장작을 다 넣었다
정말 정말 크고 예쁜 불꽃이다
나도 나의 여자도 감탄하며 계속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더니
불꽃은 사라지고 불꽃을 유지하기 위한 장작도 없다
나한테 남은 거라곤 탄 냄새나는 재만 남았다.
안치국, <사랑은 불꽃>
치국이는 그런 ‘좋아해’와 ‘사랑해’의 험난한 길을 다녀온 듯하다. 한껏 멋을 부리고 허세를 떨치듯 ‘나도 나의 여자도 감탄’하며 바라보는 불꽃이라고 하여 환호성을 받은 시이지만 그것도 이내 꺼지고 나면 허무해지는, 실패의 묘약을 받아든 치국이에게도 또다른 ‘용기’와 ‘진심’이 필요해 보인다.
여름 하늘 공활한데 높은 구름 없이
하늘 보는 우리는 맑은 사람이다.
하나둘 해가 지고 더워지는 날
우리는 성장하고 땀을 흘리고
에어컨을 찾고 아이스크림도 찾고
더위에게 화를 내며 날씨는 차가워진다.
윤희준, <6월 1일>
해가 쨍쨍하게
뜬 아침
해가 뜨는데
바람이 쏠쏠 불어온다
해가 쨍쨍 했더니
바람이 쏠쏠
이은지, <해>
희준이와 은지의 덤덤한 시를 읽고 나서 진석의 <가을>을 읽으면 거창하게 보이는 ‘시’는 각자의 마음사전에서 꺼내든 아름다운 말과 소중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시로는 도저히 이어질 것 같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함께 나눠 읽으면서 소통의 길을 찾게 해준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어가는 단풍의 계절
단풍 든 잎새가
말합니다
아름다운 시로 세상을
물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설진석, <가을>
단풍은 잎새들이나 꽃들이 말하는 것은 ‘아름다운 시’로 물들여보라는 자연의 ‘명령’이자 따뜻하고 아름다운 권유이지 않을까. ‘많은 생명이 태어나는’ 계절을 지나 시들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반복과 차이가 무엇인지 쓰는 것이 바로 시인 것이다. 그러니 마무리로 든 ‘용기’를 각자의 아름답고 당찬 말로 세상을 물들이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인 셈이다. 초여름, 청산의 아이들과 함께해서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하루였다,
봄이 끝나고 더워지는 4월에서 5월
이동안 많은 생명이 태어났지
가을과 겨울에는 생명이 시들고
그 시든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나는 초여름이 좋다
김홍찬, <초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