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광주 대인예술시장

참도깨비 2021. 9. 8. 08:28

“ 광주 대인예술시장 ”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광주는 물론 주변에 있는 젊은 작가들이 난장을 연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진 찍고 커피 내리고 시장 이모들에게 사랑받는 세현 씨에게 들은 이야기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에도 나왔다는데 그건 보지 못했고, 물어 물어 찾아간 대인시장 한평 갤러리 앞에서 직접 만났다.
세현 씨는 사진을 찍는다. 문화의집 행사때마다 왕눈이 같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살아 있는 표정을 잡으려고 애쓰던 모습만 보았을 때는 그저 사진 잘 찍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작가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대인 예술 시장을 찾았다. 예술가들이 먼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는 거미줄 친 자리에 들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에는 야시장 사업까지 늘어서 전국에서 둘러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이름하여 대인예술시장. 대인시장은 1959년 공설시장으로 출발하여 옛 광주역 동편 공터에 뜨내기 상인들이 모여들어 좌판을 열던 곳이라고 한다. 1980년 시장 복판을 가로지르며 흐르던 동계천이 복개되고 동문다리에서 시작되는 중앙통 지역을 아우르는 시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시장이 으레 그렇듯이 역과 터미널, 전남도청이 옮겨가고 난 뒤에는 시장 노릇하기에도 벅찬 곳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2008년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대인시장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온 나라 재래시장에 불기 시작한 문전성시 사업이나 최근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관광형 시장 사업과는 동떨어진 접근이었다고 한다.
 
 시장과 예술가,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의 맞선과도 같은 어색한 만남이지만 예술가의 각성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도시에서 예술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게다가 성과위주와 학벌, 문화권력의 배경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젊은 예술가들에게 시장이란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삼각주에 펼쳐진 모래톱과도 같은 곳이지 않을까.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중간쯤에 걸친 모래톱이 철새들의 터전이 되었듯이, 방방곡곡을 거쳐 흘러가다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여러 영양분들이 뒤섞이는 곳이 물과 고기, 새들의 시장이듯이 대인예술시장도 그런 뜻에서 시작된 곳임에 틀림없다.
 

 
 
 몇 군데 돌고 나면 대인 시장은 자본시대를 대표하는 대형마트 하나가 차고 있는 전대만도 못한 곳임을 보게 될 것이다. 청주에서 가장 작은 중앙시장이나 사직시장, 내덕동 자연시장 같은 곳보다는 크지만 칸칸 걸린 오색의 현수막과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간판 아니면 정말 장사는 잘 되는 것일까 걱정부터 앞서는 곳이다. 점포마다 달린 꽃등(백열전구에 종이갓을 씌운) 아래로 칸칸 점포들이 구획을 나누어 식육, 맛집, 옷가게, 술집 등등으로 하염없이 손님들을 기다리는 곳. 이제는 광주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광주광역시의 후원 속에 각지에서 벤치마킹하러 몰려드는 곳. 몇 년 세월 속에 대인 시장은 허벌나게 성장한 셈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시장 한구석이 시끄럽다. 오늘 저녁에는 야시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좁은 시장길마다 분필로 칸을 나누고 번호가 매겨져 있는 걸 보았는데, 제비뽑기로 정한 자리마다 먹을거리며 잡화들이 파는 손수레가 들어선다고 한다. 걸쭉한 남도 사투리로 싸우는 것이 분명 자리 싸움이겠지 싶어 구경꾼인 듯 다가가니 역시나 한 평도 안 되는 영역을 치고 들어온 것 때문이다.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것이니 싸움 소리도 들을 만 하다. 시장에 싸움이 없으면 마트지 어디 시장이겠는가. 얌전히 진열된 대량생산품을 기계산책자들이 하나 둘 카트에 싣는 곳에는 흥정이란 사라지고 없으니 싸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래 전 시장에 정착한 우리 집도 그랬다. 다른 장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싸우며 지켜내던 텃새들의 시장이었으니.
 

 
 
 한켠에서는 조용히 미싱을 돌리고 있는 분도 있다. 싸우는 사람들만 열이 나고 흥이 깨지게 마련. 오랫동안 있어온 바닷물처럼 들고 나는 현상인 것이다. 웅숭깊은 불빛에 이끌려 다가가니 일감이 꽤나 있는듯 미싱이 돌고 또 돈다. 집집마다 발틀 달린 재봉틀에서 튿어진 괴비가 제자리를 찾고 형 옷이 줄여지고, 설날 때때옷에 동전이 달리던 생각을 하니 미싱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땀들을 채우고 있다.
 

 
 
 언젠가 많이 타 보았던 남도행 밤 열차처럼 시장길은 돌아간다. 지붕마다 빼곡히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낯설면서도 만국기처럼 들뜨게 만든다. '대인예술 야시장 별장','소풍유락','대인예술시장 투어' 요즘 복고풍으로 뜬다는 글자체인 '목욕탕체'?인가. 복원하여 다시 세우고 돌려보고, 잡아끄는 '골라 골라 골라잡어' 하는 북적한 말투처럼 절로 흥이 나려고도 한다.
 

 
 
 그러나 골목은 비었다. 시장통과 시장통을 이어주는 골목 가게들은 문을 닫고 예술가들의 가게가 들어서 있다. 한때는 이곳도 다 북적이며 이어지던 물골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가까스로 연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절박함과 강박증이 함께 밀려오는 것만 같다.
 

 
 
 한때는 저 창으로 음식 만드는 연기가 왕창왕창 삐어져 나왔으리라. 담벼락 밑에서 일에 지친 점원이 나와 담배도 피웠을 테고, 다시 불려들어가느라 급하게 비벼 끈 담배꽁초가 늘어졌을테고. 다른 데보다 큰 창틀이 근대식 꽃살창 같다. 절집에 꽃살창만 있을까보냐, 사부대중 시장통에도 꽃살창이 있는 법. 녹이 슨 것마저 함께 쇠락해져가는 화무십일홍이지 않을까 멋대로 둘러대 본다.
 

 
 

 
 
 길을 잘못 들어 5층 짜리 수산물 센터에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 구경을 했다. 발가락에서 분홍빛이 묻어나는 젊은 비둘기 같은 작가들이 몇 평 안 되는 작업실에서 놀고 있다. 시장 사람들도 길을 물으면 다 아는 것처럼 누구 누구 작업실? 저 위로 올라가봐. 하며 가르쳐주는데 수산물센터다 보니 차가 오르내리던 길을 따라 횟집으로 쓰였을 방마다 입주한 작가들의 방이 수족관 같다. 문득 글쓰는 작가들에게도 저런 소중한 공간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앞선다. 몇 군데에 있는 창작실 대관 사업이 아니고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작업실이 있고 함께 모인 작가들을 위한 도서실이나 회의실 같은 곳이 있으면 하는.(모여서  술만 마셔서 안 될까?)
 그렇더라도 작업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여기에 모인 젊은 작가들이 어느 때는 한 데 모여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사고 팔 수도 있는 이른바 청년작가 프로젝트 비슷한 것을 할 수도 있으니 예술시장으로 불릴 만도 한.
 

 
 
 옛 수산물 센터 건물을 나와 다시 골목으로 빠져드니 어김없이 시장 벽화가 보인다. 시장 골목으로 지나갔을 행상이 벽화로 재현? 되었다. 곳곳에 벽화작업은 무슨 분위기 좋게 하는 사업으로 끊이질 않기에 의심이 가지만 이것 또한 시장의 삶에 어울리도록 재현한 것이니 괜찮아 보인다. 리플렛에서 찾아보니 40년 동안 수레로 장사를 한 하문순 아짐이라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대인시장 상인들과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준 분이라고 하니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올 듯이 생생해 보인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도 빠지지 않으니 온갖 사연이 혼재해 있는 시장벽화인 것이다.
 

 
 
 벽화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한평 갤러리'다. 언뜻 보면 한평 막걸리도 보이는 곳. 손바닥만 한 빈 점포를 나누어 그달 그달 젊은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는 갤러리다. 설치작품부터 캔버스 그림까지 크고 작은 작품들이 작가마다의 개성을 느끼게 한다. 젊은 패기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젊은 복서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글러브를 끼게 하고 '원이 풀릴 때까지 때리세요' 하는 흔한 영화의 장면 같다. 그럴 듯한 작품을 유명한 갤러리에 걸고 높은 값에 팔린다는 중견작가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시장에 내걸린 작품인 셈이다. 작은 점포 앞에 내걸은 자신의 그림을 보자마자 "내가 비엔날레에 걸린 사람 아니오?' 하고 자랑을 하는 아주머니처럼 시장 상인들의 삶에서 나온 그림들도 눈에 띄게 많아 친근하다.
 

 
 
 한편의 시이기도 하다. 시장바닥에서 물구나무를 서던 곱배아버지 생각도 난다. 쓰리빠를 내던지고 연탄집게를 내던지며 싸우던 제주돗집 아주머니와 형제들도 생각난다. 왜 그렇게 악다구니하며 살았을까 싶지만 그만큼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치열하게 살았던 것임을 시장은 기억하고 있고,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을 달고 팔고 있는 곳이 이곳임을 깨닫게 한다.
 

 
 
 앞엣국번자리가 하나로 시작되는 무슨 무슨 상회 간판들이 바로 요즘 복고풍으로 나오는 가게 이름들에서 따온 것이지 않는가. 캘리그라핀지 뭔지 하는 것도 저 빨간 손글씨에서 나온 것이지 않은가. 한글을 갓 깨친 아버지, 어머니의 필체를 키워 전시회 제목이나 책 제목으로 써도 자연스럽다고, 오히려 보기 좋다고, 예술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소가 웃을 일이지만 그렇게 사라져간 것들에는 기운이 서려 있다. 현란하지 않은 장사치들의 얼굴이 담겨져 있다. 속고 속이는 게 장사여서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 자본의 두 얼굴과는 다른 장사꾼 본연의 얼굴이자 마음이 있었던 것만큼 확실하다.
 

 
 
 요즘 시장에서는 의심부터 하고본다. 나물이며 풋고추 하나까지 도매상에서 떼 온 것을 집밭에서 캐온 것처럼 판다거나 중국산을 슬쩍 고쳐 국내산이라고 판다는 것, 모두 사실일지 모른다. 눈가리고 아웅하듯 알고도 속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에누리 없는 장사 어디 있느냐고 팍팍 깎아 사는 것이 시장의 생리이고 그만큼 후하게 붙여파는 것이 시장이라고. 그래봤자 그게 얼마나 될까 싶다. 어디까지나 시장은 가까운 이웃 사람들이 먹고 사는 곳이니 여기서 팔고 사는 것이 어디 멀리 누군가의 배부른 주머니로 들어가지는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
 

 
 
 젊은 작가가 만든 돼지꿈도 그러지 않을까. 별무리전에 나온 돼지꿈은 시장의 꿈이자 들고 나는 손님들의 꿈인 것이다. 예술한다는 젊은 작가들이 시장을 끼고 들어온 것도 시장 자체가 발하던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섬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사람 저 사람이 꼬여들어 흥정하고 무르고 끝내는 사가는 것이 있고, 내일이 있는 싸움 또한 잦은 시장통은 골목 골목으로 이어주던 우리네 동네의 축소판이다. 저 멋쟁이 아저씨의 뜬금없는 자존심이 허락한 빨간 바지와 까만 선글라스마저 낯설지 않은 곳.
 

 
 
 다시 한바퀴 돌아 재봉틀 불빛을 기웃거린다. 아직도 숨 죽이며 돌아간다. 시장의 등대 같다. 틀어진 옆구리와 키가 작아 한 번 접은 바짓단을 줄이고 싶어진다. 한쪽 구석에 치마를 대신 빌려입고 기다렸다가 가져가고 싶은 배고픈 저녁이다.
 

 
 
 사진 작가의 작업실에 들렀다. 여러 사업이 겹치다 보니 시장 안에도 예술가들끼리 의견이 갈리고 다툼이 있다는 것쯤은 다 알기에 그의 작업실은 소중해 보인다. 옆집 가게 이모들이 잘 말해줘서 연 200에 도지를 주고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난방도 안되고 물도 안 나오는 좁고 긴 3층이지만 1층은 작업실 겸 손님맞는 곳으로 2층은 이외수의 들개에난 나올 법한 백열전구로 뎁힌 침대가 있고 3층으로 이어진 가파른 계단마저 그럴듯 해보이는 작업실에서 대인예술시장의 끈끈한 멋을 본다. 그가 타주는 커피 한 잔이 해장국이자 국밥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작가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진을 찍기 위해 방방곡곡으로 뛰고, 어둠 속에 돌멩이를 던져 후레쉬를 터뜨리며 물음을 던지는 작품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의 둥지에서 힘을 얻어간다.
 
 어디에나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래 있었던 소통과 나눔의 뻔한 공간이 불러들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