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식

고두미 시선 <그곳이 어디든 데려다주게>와 <그렇게 많은 날이 갔다>

참도깨비 2022. 6. 30. 16:27
친환경 유정환 시인의 고두미 출판사에서 연이어 시집 두 권이 나왔다. 이재표 시인의 <그곳이 어디든 데려다주게>에 이어 김은숙 시인의 <그렇게 많은 날이 갔다>가 산뜻한 디자인으로 이어달리기로 나왔다. 두 시인은 상생충북협의회를 만들고 이끌어오는데 산파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다.
 
이재표 시인은 유사언론이자 대체언론으로 부르는 미디어 Z에서  일하며 꾸준히 시를 써왔으면 두 번째 시집 <그곳이 어디든 데려다주게>를 내었는데 무엇을 닮았을까 생각하던 차에 딱 들부처가 어울린다. 
 
들부처라 썼더니
돌부처의 오타가 아니냐고 묻는다
들부처가 맞다
돌국화 돌쥐가 아니라
들국화 들쥐인 것처럼
돌부처는 좌 보타 우 낙가산 아래
빛바랜 절집 연화대좌에 나투셨고
들부처는 이정골 들판에
벌서는 아이처럼 서 있다
결가부좌로 꼬고 앉을
다리도 깎지 않은 그저 돌기둥
벅수 선돌이라면 몰라도
이게 무슨 부처냐고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도 선돌인데
잘 봐라
머리에 육계肉髻도 그리고
이마에는 떡하니 백호白豪도 있다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삐뜔빼뚤 그려놓은 듯한 상호도
뉸바와 바람서리가 고치고 또 고쳐
세상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지 않으냐
그러니 통곡하는 까마귀도
정수리에 앉아 슬픔을 재우고
철모르는 동네 개들도 다리를 들고
오줌이나 갈기고 지나가는 것 아니냐
 
이재표, <들부처> 전문
 
그냥 지나치면 모르지만 걸어다니며 꼼꼼히 살펴보면 눈에 들어오는 우리네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들부처가 이정골 들부처로 김은숙 시집에도 나온다. 읽고 싶고 기다렸던 시집을 사러 가는 날은 언제나 즐겁다. 시집이 나오면 당연히 증정본을 받는 것보다 먼저 사서 사인까지 받으면 처음 독자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기도 한다. 명퇴 이후 가장 값진 문화 매개자의 삶을 살고 있는 김은숙 시인의  '많은 날' 이 그렇다.
 
무엇보다 만인보처럼 써내려가는 사람 이야기는 '바람 불면 같이 몸 흔들어주는'(<종이약국>) 나무와 같다. '쓸쓸한 사람숲'에서 만나는 마음자리가 짠하게 다가온다.
멀지 않은 곳에서 촉발된 풍문은 시작부터 독했다
코로나, 그 붉고 푸른 왕관에 대한 드센 소문이
들뜷고 증폭되는 지루한 날들 이어지고
한 계절 꽃들도 마음 놓고 피기를 주저하는 거리에는
함부로 눈길 발길 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는 표식들이 자리 잡았다
오르내리는 미열에 예민하고 잔기침에 눈치 보는
착하고 두렵고 가련한 눈동자 사이에서
두 눈이 지표가 되고 눈빛의 말을 제법 읽어 낼 무렵
검열과 혐오가 모여들어 불온한 연대기를 새롭게 써 갔다
닫고 잃고 무너지고 지우고 떠돌다가
놓치고 떠나고 꺾이는 사람들 많아지고
여기저기 뜨겁고 서늘한 아우성 굽이치는데
이 지대의 끝도 분명 있을 거라고
일상의 평화와 온기를 바라는 몸짓들이
흩뿌려진 순백의 체온을 끌어모아 여기저기 눈사람을 만들면
마침내 눈사람마저 농담처럼 마스크를 쓰고 서 있고
서로 기댈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며
언어와 표정을 지우고 살아가는 것이
쓸쓸함도 잊은 채 편안한 일상이 되었다
김은숙, <그렇게 많은 날이 갔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