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식
로베르트 아를트 소설 <미친 장난감>
참도깨비
2022. 11. 17. 17:50
어쩌면 강렬한 표지만 보고 고른 책인 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강렬한 표지가 내용마저 꿰맞추고 있을 듯하여 골랐다. 로베르트 아를트는 낯설다. 더 알아보니 보르헤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한다. 그의 첫 소설인데다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고 했다. 유럽과 남미 어디든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낯선 거리와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재미있다. 역자의 말 가운데 압권은 자본주의 사회 돈을 향해 날리는 묵직한 ‘크로스 펀치’라는 것. 무엇보다 로베르토 아를트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운 것이 없어서 밑바닥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이른바 제도권 문학에서 철저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문체로 아르헨티나 사회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좋다.
“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을 하라는 거예요? 제발…… 엄마는 내가 뭘 하기를 바라는 거죠? 나더러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는 거예요? 내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거 엄마도 잘 알잖아요?”
나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틈만 나면 심한 말을 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하루하루를 가난에 시달리면서 살아도 무관심하고 냉담한 세상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이와 동시에 이름 모를 고통과 슬픔으로 나를 몰아넣은 것은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확신이었다.(76쪽)
주인공 실비오가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다. 일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반을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밑바닥 삶은 그야말로 냉담하다 못해 고통과 슬픔, 인간 이하의 자괴감을 갖게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비오는 엔리케, 루시오와 함께 의적소설을 모방하여 '한밤의 신사들 클럽'을 조직하고 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책이 있는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현실, 책을 많이 읽어서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도 몸으로 때우는 기술 이외에는 그 재능을 받아주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종이만 팔러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질렸어. 매일 똑같은 생활이 반복될 뿐이야. 녹초가 될 때까지 매일 일만 하잖아. 이봐, 절름발이.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먹기 위해서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을 뿐이라고. 즐거운 일도 없고, 파티나 축제에 갈 생각은 꿈도 못 꿔. 그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잖아, 절름발이. 이제 이런 생활도 지긋지긋해.”(238∼239쪽)
실제로 아를트는 제도권 문단에서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실비오가 항공기술학교에 훈련생으로 들어갔을 때 장교들이 이중적인 잣대로 결국 퇴교 조치를 내렸던 것처럼 철자법과 문법에서 취약한 아를트에게 호세 비앙코는 “로베르토 아를트라는 새로운 전염병이 젊은 작가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라며 혹평했다고 한다. 학연, 지연을 따지며 차별을 하는 어느 사회에서나 보는 자본주의 특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아를트의 소설은 보르헤스와 대척점에서 1960년대 아르헨티나 문학을 선도하는 작가로 평가받기까지 성장하였다고 한다. 《미친 장난감》이라는 제목만큼이나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교차하면서 선과 악의 가치판단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실비오가 지물포 영업하며 만난 절름발이의 범행에 가담하려고 했다가 절름발이를 배신하는 모습을 '위반과 범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배신을 통해 법과 도덕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법으로 표현되는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질서에 침투해 그것을 해체시키면서 또 다른 세계를 건절하고자 하는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모색이라고. 타락을 타락으로 극복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목과 상응하는, 과거에서 온 새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