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단짝은 계속 있을 거다-음성 원당초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나와 단짝은 계속 있을 거다
-음성 원당초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복숭아나무마다 노란 봉지들이 달렸다. 감곡은 복숭아 그 자체인 것 같다. 노란 봉지마다 포슬포슬한 복숭아를 감쌌을 시간이 느껴진다.
겨울치고는 햇살 따듯한 날, 감곡 원당초등학교 아이들 얼굴이 복숭아 같다. 3, 4학년 열일곱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여느 때와 같이 시 쓰기에 앞서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재미있는 시를 보여주고 자기만의 시를 써보자고 했다. 어이없어 보일지 모르는 저학년 시가 놀라운 직관을 보여주고,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짧고 간결한 고백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들.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과 끄덕임이 코로나 초기 때와는 완전 달랐다. 간간히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서 시의 매력에 빠진 뒤에 쓴 시들은 놀라웠다.
단짝이랑 손가락 하트
1, 2, 3, 4, 5개까지 만들 수 있는
손가락 하트
5개보다 더 만들 수 있을까?
나만의 단짝이랑 노는 건
너무 재미있는 일
단짝과 놀면 너무 재미있다
난 단짝을 소중하게
좋아한다.
나와 단짝은 계속 있을 거다.
김채빈(3학년), <나의 단짝>
채빈이는 스스로 ‘채빈 작가’라고 이름을 썼다. 단짝과 꼭 붙어서 시를 썼는데 그야말로 ‘단짝 시’였다. ‘코리안 핑거 하트’라고도 하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서로에게 무한 사랑을 보낸다는 것이 학교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단짝과 노는 일은 더 재미있으니 ‘난 단짝을 소중하’ 생각하고 ‘계속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귀하게 여기겠다는 것이니 함께 쓴 진아는 어찌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단짝이랑 하트
1개 하트
2개 하트
3개 하트
4개, 5개 하트
5개 하트는
단짝의 존경함
4개의 하트는
단 하나뿐인 친구
이건 내가
단짝이랑 하트를 만들며
생각했다.
박진아(3학년), <존경하는 단짝>
진아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 ‘5개 하트’를 그려보이며 존경이란 말까지 했다. ‘단짝이랑 하트를 만들며 생각’했다는데, 두 개의 시는 비슷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두 쪽으로 나뉘어졌던 표식이 하나로 합쳐진 모양 같다. 서로의 이름을 제목으로 ‘소중’함과 ‘존경’을 담아 써도 좋을 것이다. 서로 다른 얼굴과 마음을 찬찬히 읽으며 그림을 그려보아도 좋겠다.
지는 공부하라고 시키면서 나보다
못한다.
지는 야채를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고기만 먹는다.
지는 운동 많이 하라고 시키지만
어떻게 나보다 못하지?
지는 잘 하는 게 도대체 뭘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해도
나보다 못한다.
오빠는 도대체 뭘까?
김한나(3학년), <지는>
첫 줄만 보면 엄마에게 쌓였던 감정을 쓴 줄 알았다. 시 쓰기에 앞서 오늘 꼭 쓰고 싶었던 것이나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내용으로 써보자는 부탁에 제대로 반응한 것이어서 읽으면서 긴장을 했다. 아이들의 눈빛에도 작은 동요가 비쳤다. 이름을 빼고 읽어준 것이어서 누가 큰일 날 금지어를 말하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2연을 지나 3연에 갈수록 대상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자기한테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보다 못한다고 말할 정도면 흔한 남매 사이의 일임을 알게 된다. 오빠(언니나 형도)에 대한 감정은 일종의 경쟁 상대에게서 느끼는 것이어서 분노의 극에 달하여 “오빠(언니나 형도)가 싫다”는 단발로 끝나는 시가 많은데 이렇게 내려 보듯이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잘 썼다고 박수를 쳐주었지만 ‘오빠는 도대체 뭘까?’하는 감정을 토로한 것을 넘어서 둘만의 얽힌 관계를 풀어가는 숙제가 남았다. 어쩌면 마지막 말이 비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오빠가 이 시를 읽으면 처음에는 화를 불러오고 싸움이 될 지도 모르지만 한나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시를 쓸 때까지 감춰두었던 감정에 대해 낱낱이 말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것이 시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사람은 행복을 버리고 행운만 찾는다.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진 않는다.
역시 사람은 인간이다.
김주아(4학년), <인간>
짧고 간결한 시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시가 주아의 입을 통해 나왔다. 어디에서 들었을까? 벌써 찾아온 행복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이야기에 감응한 모양이다. 주아는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빗대어 행복과 행운의 미묘한 차이를 말했다. 행운은 행복 같아 보이지만 고스란히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로또가 그렇듯 주아는 다시 새겨 들으며 자신만의 시로 썼다.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간’이라는 말로 고쳐 썼다.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호모 사피엔스의 이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나는 하품을 한다.
버스 탈 때도 나는 하품을 하다
수업 시간에도 하품
동아리 시간에도 하품
몇 시간이 지나면
하품이 사라지고
졸음이 찾아온다.
하루를 하품하고 졸음이랑 지냈다.
신진호(3학년), <하품>
한 아이도 대충 써내는 법이 없다. 졸리고 지루하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한 시가 아니라 진호처럼 재미있게 쓰면 바로 반응이 온다. 천연덕스럽게 하품을 해대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품이 사라지고/졸음이 찾아온다’는 말이 느긋한 성품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하루를 하품하고 졸음이랑 지냈다’고 하루를 다시 정리하니 하품의 왕자인 셈이다. 시 그림책 한 권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심심한 듯하면서 재미있다.
겨울이 오면 우리 가족은 꼭 감귤을 산다.
다음 년도에도
그 다음 년도에도
겨울이 이젠 나한텐 감귤의 날이다.
가끔 봄에도 먹지만
언제나 감귤은 겨울에만 먹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단지 우리 가족만일까?
권유민(3학년), <감귤>
유민이도 흔한 ‘감귤’ 이야기를 ‘감귤의 날’로 만든 것도 모자라 혹시라도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권유하듯 자신의 생각을 버무려 놓았다. 가족 모두 귤을 좋아해서 겨울 동안 감귤의 나라에 사는 듯하다. 복숭아, 자두, 수박으로 늘려나가 시를 써도 좋을 것 같다.
오빠는 나의 분노를 캐치한다.
분노 캐치는 놀리는 거다.
나는 오빠의 분노를 캐치한다.
아빠는 엄마의 분노 버튼을
클릭한다.
밥투정이다.
우리 가족은
별난 싸움 가족이다.
이예림(3학년), <분노 캐치>
예림이와 현준이는 <엄마의 분노 스위치>라는 보기 시를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 앞의 <단짝>들처럼 서로 다르게 썼다. ‘캐치’란 말이 정확하게 쓰이지 않았지만 곧이어 나오는 버튼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가족 모두가 서로의 분노 버튼을 누르며 지내는 것이다. 예림이와 오빠, 엄마와 아빠로 이어지다가 서로 엇갈리기도 할 것이다. 가족이라서 더 그런 것일까? 밖에 나가면 한없이 다정하면서 집에 오면 서로의 분노 버튼을 누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별난 싸움 가족’에서 한 꺼풀 꺾이는 듯해서 다행이다. 뒤이어 분노 버튼을 누른 현준이는 어떤가.
나는 분노했다.
나의 마음속의 분노 로켓이 곧 날아가려고 한다.
3, 2, 1, 땡, 발사!
내 마음의 분노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김현준(3학년), <분노>
현준이는 분노 로켓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발사체가 되어 카운트다운 끝에 하늘로 솟구치는. 어디로도 향할 데가 없어 하늘로 솟구치는 분노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솟구쳤다’고 하니 자기만의 해결법을 찾은 건 아닐까 싶다. 발사체가 말로 나와 누군가의 마음에게 가길 빌어 본다.
집에서 축구를 했다.
동생이 공을 뻥!
찼는데, 퍽! 하고 내 명치에 맞았다.
아팠다.
한 대 때리고 싶었는데 참았다.
내가 참은 이유는
뒤에 엄마가 있었다.
장도윤(4학년), <축구>
도윤이의 시를 읽으면서 또 한 번 웃었다. 5행까지는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다. 예림이 시처럼 자주 부딪히는 남매나 형제간의 화 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도윤이는 그 순간을 억울하겠지만 재미나게 비껴가고 있다. 6행에 이어 7행을 뜸 들이며 읽어주자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양 소리소리 지르며 외치면서 도윤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다. 처음과 마무리를 잘 하기 어려운데 간결하게 잘 썼다.
바다와 하늘은 같다.
하늘이 파랑색이면
바다도 파랑색이다.
하늘에 해가 있으면
바다에는 물고기가 있다.
그리고
하늘은 높고
바다는 넓고
바다와 하늘은 같다.
이찬미(4학년), <바다와 하늘>
바다는 정말 예쁘다.
바다를 보면 바다로 풍덩 빠져들고 싶고
그리고 바다랑 같이 수영도 하고 싶다.
바다 색깔은 색깔이 다양해서
정말로 예쁘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다를 보면 정말 멋지다.
송미현(4학년), <바다>
찬미와 미현이 시는 조금 아쉽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떠오르게 하지만 단순 대비 외에는 새로울 게 없다. 차라리 언젠가 다녀왔던 바다를 떠올리며 상상이라도 했더라면 바다와 하늘, 깊고 푸른 물고기와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현이도 그냥 소재만 따와서 맞춤식 정답처럼 썼다. 기분이 상쾌해지고 멋지다는 말은 신기하다는 말처럼 얼마나 실체가 없는 말인지 알아야 한다. 어둠이 오는 것도 그렇듯 좀 더 대상에 가까이 맞서서 느끼고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계절을 다루는 시에서도 마찬가지만 한 해도 같은 계절이 없다는 말처럼 대상 안으로 더 들어가서 자기만의 시를 써야 한다. 비슷한 것에 만족하기보다 좀 더 나아가서 하늘과 바다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를 쓸 때는
그 쓰고 있는 공책 그림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생각이 나면
너무 좋다.
권나연(4학년), <시를 쓸 때>
나연이 시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써보려고 애쓴 흔적만으로도 만족하지만 3행과 4행 사이는 너무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남들이 내뱉는 가시 돋친 말에
내 마음속에는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마음을 그냥 두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니
바람이 조용히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선한혜(4학년), <위로>
한혜의 <위로>는 <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란 그림책을 보는 것 같다. 가시 돋친 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어쩌면 현명한 대처를 한 것인데 쓸쓸해 보인다. ‘비가 내리는 마음을 그냥 두고’란 말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시 돋친 말로 되갚아 주지 않고 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선택했으니 현명하다. 찬미의 ‘하늘’과 ‘바다’가 그렇듯 ‘바람’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새로운 시를 쓰게 하는 것이다. “시는 다른 것에게로 가려고 합니다. 시는 이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마주 선 대상이 필요합니다. 시는 그것을 찾아냅니다. 스스로 그것에게 말을 건넵니다. 모든 사물, 모든 사람이 다른 것을 향해 가는 시에게는, 이 다른 것의 형상입니다.”(파울 첼란)에서 보듯 다른 것에 다가가서 찾아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쏘피가 큰 나무 위에서 멀리 내다보며 바람을 맞은 것처럼 한혜도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나는 재채기를 했다.
침방울이 고양이한테 튀겼다.
고양이는 놀라 뛰다가 오토바이에 박았다.
오토바이는 이상한 데로 가다가 다시
고양이 꼬리를 밟았다.
고양이는 아파서 건물 안에 들어가서 날뛴다.
사람들은 놀라서 넘어져서 미사일 버튼을 눌러서
북한에 떨어져 북한은 우리 땅이 됐다.
재채기는 위험하다.
조인성(4학년), <재채기의 위험성>
인성이는 다른 아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아이였다.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제풀에 지치기도 하면서 자꾸만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 만화영화 주인공 같았는데 시 또한 그렇다. 어떻게 하면 튀어볼까 작정하고 쓴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이 재미있다가 난데없이 미사일이 나와 걱정이지만 마지막 행처럼 ‘재채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니 웃고 넘어갈 일이다. 로알드 달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 온갖 위험한 물질을 써가며 어른들의 괴력에 맞서는 인성이만의 판타지.
겨울이다.
추운 겨울이다.
내 마음 한구석에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서인지 통일이 안 됐다.
어쩌면 남북한 모두 차가운 마음으로 물들어
통일이 안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도 따뜻한 마음을 품어
모두 따뜻해져서 봄이 되면
그때는 통일되겠지.
최성원(4학년), <봄이 되면 통일되겠지>
인성이에 비해 성원이는 차분한 방식으로 통일을 생각했다. 서로의 마음에 분 찬바람으로 통일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좋다. 그리고 다음에 온 ‘나라도 따뜻한 마음을 품어’야겠다는 것이 단순한 통일 공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다가온 온갖 어려운 일 또한 ‘나’라도 떨치고 일어서야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 집에 쥐가 산다.
쥐덫을 뒀다.
찍찍! 쥐가 잡혔나 보다!
쥐 대신 치즈가 잡혔다.
이루리(4학년), <쥐>
이 시는 아무 설명이 없으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쥐덫을 놓았는데 쥐 대신 잡힌 것이 미끼로 놓은 치즈라면 얼마나 기발하고 우스운 일인가. 거기까지 노린 것은 아니지만 쥐는 안 잡히고 반려견이나 고양이가 잡혔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 웃픈 일이 되어버렸다.
두근두근 내가 잘 찰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공을 찬다.
과연 잘 될까?
펑! 골대에
가까이도 못 갔다.
이수(4학년), <페널티킥>
수의 시가 재미를 주고 마무리를 해주어서 감곡의 복숭아를 만지며 끝난 기분이다. 모두가 기대하면서 멋진 골을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깨주었으니 이 또한 성공한 셈이다. 이럴 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실패마저 멋지게 처리하면서 웃음을 주었으니 좋다. 무엇보다 ‘시’ 하면 정해진 틀과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디에서나 보았을 법한 비슷한 시를 써내기 쉬운데,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자기 이야기로 간결하게 채워준 감곡의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