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즐겁고 기쁘게 때론 화도 내면서
시와 함께 즐겁고 기쁘게 때론 화도 내면서
-충남 소정초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빠른 기차, 조금 느린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 소정면. 면사무소 옆에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소정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먼저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며 아이들의 발길과 눈길이 닿았을 곳을 찾아보았다. 한 동네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함께 지낸 아이들이라 시시콜콜 이야기도 많을 것이기에 꼭 이렇게 동네 한 바퀴부터 돌아보는 것이다. 문구점, 분식집, 학원, 놀이터, 면사무소, 보건소를 돌면서 아이들에게 학교 앞 분식집은 뭐가 맛있는지 물어봐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나올 것만 같았다.
동네 이야기부터 꺼내 드니 과연 빠삭치킨집 치킨이 맛있다느니 음악학원은 어떻다느니 술술 나왔다. 무엇보다 시 한 편 쓰는 것이 중요하니 되도록 아이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많이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몇 년째 작은도서관을 돌며 시 쓰기를 했더니 정작 시를 직업으로 삼는 나보다 더 나은 시인을 만나게 되더라고 말하니 아이들의 눈빛이 더 또롱또롱해졌다. 그리 멀지 않은 도시와 농촌 친구들의 시부터 들려주고 시를 써 보니 좋은 시들이 많이 나왔다. 시 수업의 제목 ‘시와 함께 즐겁고 기쁘게 때론 화도 내면서’처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면 무엇이든 환영이라고 하니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나 웃음을 사는 개구진 이야기까지 두루 나왔다.
전학을 왔었다.
아주 떨리고 긴장 되었다.
처음은 친구가 없었다.
예전 친구 생각이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많지만
싫어하고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친구도 많다.
<친구들>, 옥윤아(소정초등학교 4학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만의 부끄럽고 슬프기까지 이야기를 쓴 시를 공유했으니 가능한 마음의 소리이다. 일부러 이름은 밝히지 않고 들려주었으나 누군가는 이 시를 읽고 후회하게 될 테고, 시를 쓴 윤아는 부끄러운 것을 떠나서 자신 있게 말을 하고 났으니 홀가분해지고 용기도 났을 것이다.
나는 신호등이 자주 바뀐다.
빨간 신호등은 수학 할 때와 동생과 싸울 때
초록 신호등은 슬라임 카페 갈 때, 친구와 놀 때
노란 신호등은 동생을 때리기 일보 직전의 경고 단계다.
조심해야겠다.
엄마가 노란 신호등을 나에게 깜박거릴 테니까.
<마음 신호등>, 김서율(소정초등학교 4학년)
이런 이야기는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눈초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화를 만들 수 있지만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는 대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당당하게 써야 한다고 하니 이런 시가 나온 것이다.
나는 덧니가 있다.
웃을 때마다 덧니가 나와서
입술에 걸린다.
하지만 덧니도 매력이다.
그래도 덧니 없는 게
더 낫다.
유서현(소정초등학교 4학년)
누구나 숨기고 싶은 몸과 마음의 결점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다. 짧은 시 안에서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웃을 때마다 덧니가 나와서/입술에 걸린다’처럼 짧지만 구체적으로 써주니 덧니의 매력이드러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자세가 그대로 잘 나타났다. 이 정도만 해주어도 좋다.
1. 축구가 좋다. 장래희망도 축구 선수다.
2. 축구를 볼 때도 좋다. 그런데
3. 아빠가 못 보게 한다.
<축구>, 김민규(소정초등학교 4학년)
공을 차고 있는 자신의 그림까지 그렸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늘 반대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빠가 반대하는 이유도 이렇듯 확실할 것이다. 어쩌면 시의 형식이 아닌 듯 보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것이 시이므로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용기를 내어 집에 가면 냉장고 문에다 붙여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마음의 전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마음에 꾹꾹 눌러두고 있는 것보다 좋다고.
우리 동생은 박쥐 같다.
맨날 내가 핸드폰을 보면 아빠한테
“아빠, 일루 와봐!” 라고 그런다.
그리고 나를 계속 따라 한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고 말하면
동생도 “하지 말하고!” 하고 말한다.
근데 이상하게 동생이 누구한테 당하거나
혼자 놀고 있으면 동생이 박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다! 그래도
동생은 박쥐!!
<내 동생은 박쥐!>, 홍채린(소정초등학교 4학년)
흔히 자기 가족에 대해서 쓰게 되면 아주 단순하게 감정만 드러내는데, 이렇게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시에서 들먹인 사람이 볼까봐 그런지 감정의 골만 말하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금방이라도 눈앞에서 보일 듯 동생과의 관계를 뚜렷하게 써주어서 좋은 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짧은 한 줄로도 좋은 시가 된 경우도 있다.
재미있다면 1분이 1시간
재미없다면 1시간이 1분
평일이 24시간이면
주말은 24분이다.
<시간>, 이호영(소정초등학교 4학년)
길지 않아도 자신이 발견한 시간의 명언이 나온 셈이다. ‘시간’이라는 제목에 딸린 시들 대부분이 진짜 재미없는 베끼기가 많은데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자신만의 느낌을 말해주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다.
엄마와 금붕어 밥을 주러 갔는데
간판에 금붕어 밥 100원이라 써 있었다.
어떤 아이가 금붕어한테 100원을 던질라 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막았다.
정말 웃겼다.
<금붕어 밥>, 전민경(소정초등학교 4학년)
잘 읽어야만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시다. 금붕어 밥이 100원인데 어떤 아이가 100원 짜리 동전을 던지려고 한 것을 마치 금붕어에게 직접 밥을 던지듯 했다는, 서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시가 꼭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다.
여자는 왜 있을까
왜 여자만 아이를 낳을까
남자는 못 낳고
남자도 아기씨가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
남자만 있어도 되는데……
<여자와 남자>, 한성민(소정초등학교 4학년)
여자와 남자 이야기는 이 무렵에 꼭 나온다.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성에 대해 오해를 가지거나 상처가 있는 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애 낳는 기계를 도입해서 여자와 담을 쌓고 지내겠다고 선언하는 아이도 이 무렵에 자주 등장하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시를 읽어주고 함께 고민하거나 토론하면 되는 것이니 시 쓰기를 적극 활용할 일이다.
아빠랑 나랑 같이 과자를 사러 갔다.
과자를 사서 집으로 왔다.
그 이후로 아빠가 오빠들하고만
놀았다.
짜증 나고 아빠가 날 무시하니까
너무 슬펐다.
그때 제일 많이 울었다.
심장이 너무 아팠다.
슬프다.
<나의 슬픈 사연>, ○○○(소정초등학교 4학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친구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떠올라 쓴 시다. 차별일까, 아니면 긴한 사연이 있을까. 이런 감정의 골은 그렇게 느낀 사람만이 가지기에 사연의 중요도를 떠나 오래 남는다. 알고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든 대화를 통하든 풀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들려주었지만 서로 공감하고 자기 나름의 해법을 전하는 친구도 있었으니 이렇게 시를 써서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이밖에 많은 친구들의 시가 있지만 다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시를 써서 공감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나중에는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도서관과 학교에서 적극 끌어들여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소중한 그릇으로 쓰였으면 한다. 다음 달 다른 지역 도서관에 가서 소정초등학교 아이들의 시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설렌다.
* 이 글은 문화가 있는 날 작은도서관 예술강사 파견 사업에서 나온 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