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4살 중1 병이다
난 14살 중1 병이다
괴산 오성중학교 1학년 학생 시를 중심으로
어느 시인은 우연히 감물을 지나다가 일찍 떠난 언니의 초경 자국을 감물처럼 기억한다고 했다. 감물은 괴산읍에서 수안보를 거쳐 월악산 가는 길에 지나치는 작은 면소재지다. 아이들에게 잠깐 시를 소개했더니 시큰둥하다. 감물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모두가 다른 곳에 흩어져 살기에 별 관심이 없다. 아재 개그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아, 중1이지! 맨숭맨숭한 분위기이지만 마스크로 가린 또 다른 얼굴들은 무엇인가로 조용히 들끓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랑이 뭐길래 이리도 난리인지
모솔은
서러워 살 수 있을까
연애는 왜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고
현타 온다.
근데 난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
○○○, <사랑>
도서관에 책 빌리러 오던 6학년 여자 아이 생각이 났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듯 소설이고 시집이고 ‘사랑’만 들어가면 빌려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던. 하이틴 소설도 아니고, 누군가 자신의 열병을 몇 문장으로라도 해결해 주었으면 하고 갈망하던 친구도 모솔이었을까. 주위에서 다들 연애사업을 하는 통에 마음에 그쪽으로 가 있다가 이른바 ‘현타’가 오면서 ‘난 아니’고 ‘그렇다고 한’다는 말로 서러움을 토로하는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과연 ‘사랑’을 알까? 어른이라고 섣불리 말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면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제대로 보고 끌어들일 수 있는 멋짐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추상적인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
그 사람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는 것.
사랑하는 만큼 아픈 것.
서로 죽을 만큼 사랑하는 것.
김주하, <연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주하의 ‘연애’는 진행 중일까. 제목을 말하자마자 돌고래 소리가 쏟아진다. ‘사랑’이기 전에 바로 이렇게 얼굴만 봐도, 존재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이지, 그런 만큼 아픈 것이지만 죽을 만큼 사랑하는 것 또한 ‘연애’임을 주하는 어디선가 베낀 듯한 말로 단호하게 써냈다. 보이지 않는 서약서를 쓰기라도 한 듯하다.
쉽게 하면 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수학도 〈2∏r〉로 외우면 되는 것을
(2×3.14×반지름)으로 외우고 있으니
어렵구나……
그냥 쉽게 가면 되지만
연애라는 것은 어렵다.
그냥 무시하고 쉽게 갈까?
아님 어렵게 살까?
나는 쉽게 살련다.
MST, <왜 어렵게 할까?>
그에 비해서 남학생 MST는 수학 공식을 들이대며 왜 어렵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람 관계가 어디 그렇게 될까. 수학 공식을 외우고 푸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인 것을, MST는 사랑에 목숨 걸고 고통스럽다는 것마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세 사람 사이에 논쟁이라도 벌어지고 난 이후의 시 같다. 그러나 사람 관계는 이 모두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를 만나면 한 시간 내내 사랑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거창한 것은 아니고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을 나누고 대화법으로 진짜 사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면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공식이 아닌 진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보물은 살아있고
내게서 하나뿐인 사람이다.
첫 번째는 갈라섰지만
다시 한번 합쳐져 더욱 견고해졌다.
각자의 보물은 다를지 모르지만
나의 보물은 그 사람밖에 없다.
고산, <보물>
아, 그것을 ‘보물’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고산이란 친구가 던졌다. 여기서 말한 ‘보물’이 무엇인지는 다 다르겠지만 이 시에 맞춰 보면 어떤 시작점 같다. 하나뿐인 사람(결국 둘이라면)이 합쳐져 더욱 견고해지는 것, 그러면서도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각자 그 사람뿐인 것. ‘사람’이란 짐짓 그래야 한다는 것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말한 것이지만 늘 이 시를 냉장고에 붙인 당부 말처럼 보고 시작한다면 좋지 않을까.
족바아알
맛있는 족발
다 같이 배달시켜 먹으면
더 맛있는 족발
뼈 있는 건 별로다.
족발은 맛있다.
윤예준, <족발>
진지한 구간을 넘어오니 아무 생각이 없지만 써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일 띤 시가 나왔다. 치맥처럼 빼놓을 수 없는 맛있는 구간이므로 ‘연애’처럼 친구들의 환호성과 함께 지나는 것만으로도 좋다.
시를 써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써야 한다.
다 썼다.
이서윤, <시>
얼마나 부담되었을지 안다. 모두가 쓰는 시간이니 뭐라도 써야 한다는 마음 그 자체로 다 쓰고 만 시. 어디서나 한 둘은 꼭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어서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 됐든 써야 할 상황은 있기 마련이고, 자기도 모르는 말과의 밀당(하지만~그래도의 구간)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졸리다.
자고 싶다.
언제 잘 수 있을까.
너무 졸리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눕고 싶다.
침대가 제일 편하다.
밤은 짧다.
○○○, <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된다. 잠은 또 다른 ‘시’처럼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상태를 만들어야만 나오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잘 잡으면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는 마지막 행이 살렸다. ‘밤은 짧’기만 하니 다시 졸리고, 자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처럼, 왠지 아무것도 아니라 돌멩이를 툭 던진 것 같은데 그 자리에 잘 어울린다.
나는 14살
중1 병이다.
이규미, <중1 병>
이제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올랐다. 스스로 난 14살, 중1 병이라고 말하는, 더 이상 무엇을 더 쓸 수 있을까. 격하게 친구들이 반응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1
하지만 괜찮다.
조금 있음 중2다.
장예린, <중1>
그 구간을 함께 지나고 있는 다른 친구도 인정하면서 지금은 헤매는 구간임을, 뚜렷하게 잡히는 것도 없는, 지나가는 구간임을, 조금 있음 중 2로 올라갈 것임을 믿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사춘기.
세상 모든 게 다 짜증 난다.
엄마 잔소리도 짜증 나고,
아빠 잔소리도 짜증 난다.
지나가던 개가 짖어도 짜증 난다.
나도 내가 왜 짜증 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 친구는 짜증 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왜 이런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다 짜증 난다.
민현서, <사춘기>
현서는 그 구간을 누구보다도 격하게 겪고 있는 듯하다. 지나가던 개가 짖어도 짜증 나는 것을 무엇으로 다그칠 수 있을까. 외계인 같다고도 하지만 두텁게 담을 치고 그냥 지나가길 기다리는 조바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친구는 짜증 나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누구보다 같은 길을 걷는 친구는 왜 그러냐고 묻지 않기 때문일까. 부모님도 어서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냥 이해가 안 간다고 끝났으면 모르겠지만 부모님도 아는 일이니, 한바탕 접전이 일어났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게 조금씩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모두가 ‘그냥’으로 말할 수만은 없으니 자기 선언부터 이렇게 한 부분만이라도 말해주는 것이 좋다.
거울을 본다.
낮은 코
졸린 눈
실테 안경
동그란 얼굴
긴 생머리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
거울이 없으면 나는 내 자신을 모른다.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보일까?
나는 누굴까?
전윤서, <나는 누구일까?>
이렇게 말이다. 윤서는 거울을 통해 자신에게 묻고 있다. 거울이 자신을 비추어서 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낮은 코/졸린 눈/실테 안경/동그란 얼굴’에 ‘긴 생머리’를 한 모습에서 약간 자존감을 낮아지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정작 ‘거울’이 없으면 ‘내 자신을 모른다’는 말과 연결하면 끊임없이 찾고 있는 듯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자신을 남들이 어떻게 볼까 궁금하고 걱정이 앞서는 것인지도. 정작 거울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묻는 것은 중요하다. 다 드러내지 않고도 이렇게 몰입해서 알아보려고 애쓰는 중임을 밝히는 것 또한 필요한 법이니. 그런 점에서 ‘나’는 또한 시를 읽고 있는 ‘너’에게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스럽다.
귀엽다, 이쁘다.
멋지다. 그리고 내 미소에 얘들은
뻑 간다.
이게 내 자기소개이다.
정수정, <자기소개>
윤서와 달리 수정이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자기애를 무한 발산하고 있다. 진정한 자기 사랑과 위안과는 달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자기애도 필요하다. 어느 아이돌 그룹의 노래처럼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기소개를 이렇게 다양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들의 앞길을 밝혀주고
어두운 밤에 우리들을 지켜주는 가로등
우리의 보디가드같이 지켜주는 가로등
난 이것 덕분에 오늘을 살아간다.
이대희, <가로등>
‘가로등’이란 제목은 ‘시’라는 제목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이런저런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바람이지만 어찌 보면 늦은 수업이 끝나고 밤길을 걸어야 하는 학생의 숙명을 말해주는 듯하다.
가기 싫은 학교
방학 땐 가고 싶다.
가기 싫은 학교
금요일 시간이 안 간다.
가기 싫은 학교
벌써 10달이나 다녔다.
가기 싫은 학교
벌써 수요일 3교시네.
강영빈, <학교>
‘학교’에서 ‘학교’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2행시나 다름없을 만큼 호불호만이 있을 뿐이다. 그냥 ‘개싫다’고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럼에도 학교란 공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진짜 궁금하다. 어떻게 그곳에서 하루를 통째로 보내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듣고 싶기도 하다.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의 공간이 대부분 학교이기는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되어 나왔으면 한다. 얼마나 가기 싫으면 두괄식 문장으로 네 번이나 했을까. 그래도 시간은 가게 마련이고 벌써 10달을 다녔고, 조금만 버티면 집으로 가는 시간임을 히죽 웃듯이 표현한 것만으로 좋다.
겨울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겨울방학이 빨리 되면 집에서
놀고 학교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집에서
다 할 수 있으니까 좋다.
겨울방학이 되면 마스크 쓰고 눈싸움도 하고
눈도 구경하고 집에 키우는 동물들에게 따뜻한 집도 만들고
집에서도 그림자 색칠도 연습하고 전화도 하고
텔레비전과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영화도 보고 하루종일
즐겁게 겨울방학이 왔으면 좋겠다.
이단비, <겨울방학>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방학’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텔레비전을 없애면 할 수 있는 백 가지 일이라는 어느 그림책 이야기처럼 ‘겨울방학’만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일이 되면
난 놀아야지
난 잠을 자야지
난 공부해야지
그럼
난
무엇을 할까.
황하은, <내일>
단비의 ‘겨울방학’ 또한 내일이어서 기다려지는데 비해 하은이에게 ‘내일’은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일까. 내일이면 ‘놀고/잠 자고/공부해야’한다고 하면서 정작 오늘은 ‘무엇을 할까’ 모른다는 말에 숨이 막히는 듯하다. 두 개의 자아를 보는 것일까. 내일에 저당 잡힌 오늘일까. 정작 내일이면 모자랐던 것을 보충하는 시간이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그 날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처럼 강박해오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시각 11시
점심 먹으려면 1시간 30분에서
더 남았다.
10시 50분 전부터
뱃속엔 알람이 울리고
아침 알람을 끄듯이
나의 뱃속 알람을 참는다.
5분에 다시 울리는 알람처럼
내 배도 5분에 다시 알람이 울린다.
현재 시작 11시 5분
점심 먹으려면 1시간 25분에서
더 남았다.
오늘의 점심 한우불고기 덮밥
신현주,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런 점에서 하은이는 현주처럼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하고 바랄 지도 모른다. 1분, 2분 이렇게 세고 있는 것조차 조바심이라기보다는 한우불고기 덮밥에 대한 상상과 기다림이니 얼마나 간결한 마음가짐인가.
맞기 전에 자신만만
맞고 나서 자신만만
하루 동안 자신만만
다음날은, 자신만만하지 못한 아픔.
이지우, <독감 주사>
독감 주사처럼 이후에 오는 아픔이라면, 하루 동안이라도 자신만만하게, 다음날은 다음날 겪는 것으로 여기면 좋지 않을까. 맞닥뜨리기 전까지 ‘내일’이면 모두 할 수 있을 것처럼 과도한 짐을 지기보다 닥쳐서 생각하고 잘 해내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먹은 것만큼, 걱정하는 것만 잘 되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니 온몸으로 마주쳐 본다는 아픔만으로도.
친구
어려울 때 함께 있어 주는 친구.
내 이야기 잘 들어주는 친구.
나를 웃게 해주는 친구.
하나뿐인 비밀을 서로 이야기하는
그런 친구.
안지은, <친구>
학교라는 공간을 견디게 하고 공부와 경쟁을 견디게 하는 친구라는 존재만으로도 좋다. 하나뿐인 비밀을 서로 공유하며 참아내고 길을 가는 존재이니 서로를 마주보며 다음 시처럼 써보는 것도 좋다.
오성중에 있는 내 친구 동현이
충북 증평군 뇌실길에 사는 내 친구 동현이
장구 치는 내 친구 동현이
볼살이 귀여운 내 친구 동현이.
참 소중한 내 친구다.
이지우, <한동현>
오성중에 있는 내 친구 지우
충북 괴산군 북정면에 사는 내 친구
첼로 치는 내 친구 지우.
여자 친구 있는 내 친구 지우
여자 친구한텐 잘 하겠지?
안경 쓰고 검은 마스크를 쓴 친구야
만약 선생님이 내 걸 뽑으시면 일어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지우 내 친구.
한동현, <이지우>
나란히 앉아 어떻게 쓸 것인지 맞춤하듯 써낸 시다. 지우가 동현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보다 동현이가 지우에 대해 쓴 것이 자세한 것은 부러움이다. 다 가진 듯하지만 이성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완전 백패한 것처럼 머리를 긁는 시. 이것이 남학생 버전이라면 다음에 내놓은 시는 여학생 버전이다. 앞선 ‘사랑’과 ‘연애’에서 보듯 세포 자체가 다른 듯 거침없이 드러냈다.
자존감 높은 내 친구.
자신이 사랑스럽단다.
귀엽고
이쁘고
멋있댄다.
지 미소에 애들이 뻑 간다고 좋댄다.
그래, 차암 멋진 내 친구야.
근데 친구야, 다 좋은데
내 고무줄 가져가서 딴 사람한테
선물이랍시고 주지 마.
이 나쁜 년아.
백서윤, <차암 멋진 내 친구>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말한 앞선 시가 그랬듯이 이 시 또한 공개적으로 비꼬면서 지목한 시다. 그러니 이들에게 가장 멋지고 부러운 것은 연애 세포인 듯하다. 잘 나가는 연애 박사들은 내가 준 선물도 포장해서 줄 만큼 당당하니, 어디 따라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친구임을 말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자세가 아닐까.
동그란 눈에
검고 작은 코.
농사를 지으래.
열심히 살다가
생각을 한다.
아! 이런.
임성훈, <강영빈>
여기서 살짝 비껴 난 자리에 영빈이와 성훈이가 있다. 어느날 영빈이는 부모로부터 짐작이 갈만 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성훈이는 자신한테 쏟아진 말이 아닌데도 깊은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 보기로 든 어른 시인의 ‘감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말이다. ‘열심히 살다가도 그런 말을 들으면 앞뒤 이야기를 떠나서도 깊은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심코 쓰고 버리는 연필이지만
정작 연필은 제 몸을 닳아 글씨를 쓴다.
연필을 깎기도 하고 부러뜨리기도 하는 우리
연필을 소중히 다르면 어떨까?
○○○, <연필>
굳이 모범생이라고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연필’은 그냥 연필로만 들리지 않는다. 연필은 나도 될 수 있고 너도 될 수 있는 것이니 앞선 두 친구의 이야기처럼 소중하게 들린다.
세상이 하얗게 되는 계절
숨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는 계절.
하양색 눈이 내리는 계절
집 앞에 하얀 눈사람이 하나씩은 있는 계절
크리스마스 선물(돈)이 기대되는 계절.
○○○, <겨울>
‘겨울’을 앞에 둔 설레임을 괄호안에 표시한 ‘돈’에 국한시켜 보니 먹을 것을 땅에 묻어둔 다람쥐 같다. 그야말로 단순백치미라고 해야 할까.
가을이 되면서
낙엽이 모두
떨어져 나무에서
멀어져 간다.
간지성, <가을 낙엽>
가을이면 낙엽 먼저 생각하는 시는 흔하다. 그러나 모두 떨어져 나무에게 멀어져 간다는 표현이 돋보인다. 낙엽이 나인지, 나무가 나인지에 따라 그 아득함이 깊어지는 것 같다.
우리들이 등교할 때 보이는 길
낮이 되면 우리들을 환하게 반겨주는 길
밤이 되면 우리들을
집에 보내주는 길
길이 우리를 반겨준다.
전찬욱, <길>
앞선 ‘가로등’이 여기서는 ‘길’이 되었다.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달리 말하고 싶지는 않고 그저 길 자체가 화자의 마음이길 바랄 뿐이다.
기와집과 초가집
부잣집과 초라한 집
도시집과 시골집
누군가에겐 안식처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다르지만 비슷한
비슷하지만 같은
집
한성주, <집>
성주는 뭔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단순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설명하고 싶다고 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는 가려놓았어도 들여다보인다. 이 또한 감물의 시 같다.
거짓이라는 이름의 닭 한 마리
자신의 대를 이으려 또 다른 거짓을
낳고 또 낳는다.
거짓이 늘어날수록
점점 꽉 차는
양심이라는 양계장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괴로워하는 양심
진실이라는 주인이 가두고 있던
거짓을 풀고
양계장을 구원해 주네.
유병찬, <거짓>
병찬이는 가장 앞에 앉아 질문도 하고 적극적이면 이런 시를 써보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거짓과 진실 역시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문제지만 스스로 묻고 답을 찾으면서 고민한 대로의 흔적을 남겼다. 아마 친구들에게도 토론하자고 덤빌 것 같은, 그러면서도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고 있을 것 같은, 이 또한 중1의 시이자 병이다.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의 진한 감물의 시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