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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성자' 장 주네 장편소설 <꽃피는 노트르담>

참도깨비 2024. 8. 30. 17:13

 

1942년 서른두 살 때 프렌교도소에서 집필하여 1943년에 나온 장 주네의 첫 장편소설이다.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자들 편에서 시대의 금기에 맞선 작가이자 매춘과 절도죄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이력을 바탕으로 써서 '악의 성자'로도 불리는 장 주네. 1951년 영역될 때만 해도 작가가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했으며, 1960년 독일 출간 때는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2년이 지나서야 무죄 판결을 받을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다. 장 주네를 알린 장 콕토가  “이 시대의 위대한 사건”이자 자신을 “격분시키고 질색하게 하며 놀라게” 한다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로 꼽았다. 장 주네는 감옥에 비치된 누런 종이에 무한과 교류하는 내적 삶의 진실한 자유를 써내려갔다. 소설의 화자 또한 프렌교도소 429호에 수감된 ‘나’로 설정하였는데 신문에서 오려낸 범죄자들 사진으로 벽을 꾸미고 죄수의 불안과 고독, 환상을 숨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관능적인 상상세계를 바탕으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추방당한 죄수들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트렌스젠더 디빈(‘신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연인 미뇽, 게이-트랜스 친구들, 디빈의 유년기와 삶 속에 들어온 연인들, ‘꽃피는 노트르담’이라는 디빈의 연적이자 젊은 살인자가 등장한다. 살인과 반역죄로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감금되었다가 법정 단두대에서 처형된 범죄자들, 제도권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낙오자들로, 소설 초반부터 “이미 죽은 몸들”이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죽음의 제단에 바치는 희생제물들을 그리고 있다. 장 주네는 책머리에 “필로르주를 향한 나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고백한 인물 ‘꽃피는 노트르담’은 닫힌 감옥에서 디빈과 ‘나’의 운명을 시험하는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장 주네는 ‘낮고 부도덕하고 추한 것들’ 편에서 시대의 편견과 금기에 맞서온 작가이자, 68혁명부터 난민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 흑인민권운동, 성소수자운동, 팔레스타인해방운동 등 정치적 사회문제에도 활발히 참여한 운동가다. 혼외자로 태어나 절도와 부랑과 매춘으로 연명하면서 열여섯부터 삼십대 후반까지 교도소를 수없이 들락거리다 계속된 범죄로 종신형과 유배형에 처하기도 했으나 장 콕토, 사르트르, 피카소, 자코메티 등 문화예술가들의 탄원으로 사면된 그는 작가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또한 이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매춘부, 범죄자, 흑인, 군인, 동성애자 등 대부분 제도권이나 문학사에서 배제된 인물들이다. 이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사회가 죄악시하거나 지배체제의 질서 유지에 위배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서 새로운 자유의 신성함, 진실의 미를 구현하려 한 그의 세계관과 궤를 같이한다. (출판사 책 소개 중)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문장에 '꽃피는 노트르담'이 등장할 이야기의 실마리가 담겨있다.

"나를 즐겁게 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나의 정신은, 주문에 따라 영예롭거나 매혹적인 모험들을 제작해냈다. 이따금 머릿속에 떠올려보건대, 무엇보다 슬픈 건, 내겐 지난 영적 조화의 총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창작의 대부분이 깨끗이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것들이 존재했는지조차 이젠 알지 못한다. 어쩌다 그런 삶들 중 하나를 꿈꿀 때는 그것이 마치 새로운 삶인 양 받아들이고, 나의 테마에 승선하여 나는 항해한다. 십 년 전 이미 그것에 승선했고, 망각의 바다 속으로 기진맥진 침몰했음을 기억하지 못한 채, 도대체 어떤 괴물들이 나의 심연에서 삶을 지속하는가? 그들의 분비물, 배설물, 그들의 잔해가 나의 표피에 모종의 미美와 추醜를 북돋아 피어나게 하는 것인지. 그들의 영향력, 그 멜로드라마의 매력이 느껴진다. 나의 정신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망상들을 만들어내지만, 오늘에 이르도록 실체를 갖춘 것은 하나도 없다. 전혀. 단 한 번도. 이제 내가 몽살을 시도할라치면, 목은 바짝 타들어오고, 절망이 두 눈을 지지면서, 수치심이 고개를 떨어뜨려, 나의 몽상은 산산조각나버린다. 가능한 행복은 여전히 내게서 도망치고, 내가 그것을 꿈꾸었으므로 그것이 내게서 도망침을 나는 안다."(98~99페이지)


장 주네는 책머리에 '죽음으로써 지금도 내 삶을 중독시키고 있는 모리스 필로르주가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추억에 책을 바친다.'고 말하고 있는데 필로르주는 장 주네가 1942년 프렌교도소에 절도죄로 수감되었을 때 쓴 첫 시 <사형수>에 영감을 준 인물(1939년 2월 4일 기요틴에 처형됨)로 소설 속에서 이렇게 다시 등장한다. "필로르주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그의 얼굴과 죽음은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돈다. 스무 살 때, 그는 푼돈 한번 훔치겠다고 애인인 에스쿠데로를 살해했다. 재판받는 자리에서 그는 재판부를 조롱했다. 사형집행인이 잠을 깨우자 이번에는 사형집행인을 비웃었다.(줄임) 이렇듯 노트르담은 가슴 속에, 그리고 그 희푸른 치아에,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만들지언정 공포심조차 앗아가지 못한 미소를 담은 채, 필로르주를 향한 나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