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식 염색가 신상웅의 <푸른 기록> 참도깨비 2024. 11. 29. 13:06 염색가 신상웅의 산문은 쪽빛을 내고자 고향 산천의 바람과 햇빛과 하늘과 호흡한 문장 그대로다. 진한 푸른색 바탕에 흰 꽃무늬를 넣은 무명인 화포의 푸른 색을 쫓아 여행한 날적이여서 여느 문인의 산문보다 뛰어나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일본의 오지와 도시를 여행하며 푸른 쪽물을 내기까지 호흡이 담긴 글이어서 더욱 더 빛난다.맨 처음 흰 무명에 푸른 쪽물을 들이던 순간을 기억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색도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올과 올 사이를 밀물처럼 파고들던 색의 움직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올과 색소의 결합은 느리지만 강렬한 소용돌이처럼 짜릿했다. 항아리 속을 떠돌던 색은 흰 천을 만나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자리를 얻은 듯했다. 밭에서 늙으신 할머니는 잡초나 다름없어 보이는 쪽을 못마땅해 하셨다. 나는 콩 대신 색을 수확했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무명을 마당에 널었다. 쪽에서 풀려난 색이 하늘로 이어졌다. 너풀거리는 천을 매만지며 할머니가 그러셨다. 참, 곱다. 내 두 손도 푸른 물이 들었다. (머리글 13쪽) 신상웅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충북 괴산으로 내려와 쪽을 기르고 염색에 몰두하며 지낸다. 더욱이 생계를 위한 학문을 등지고 자신만의 염색 공부에 성찰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번 책을 인문 에세이라 부를 만하다. 쪽물에서 푸른색을 건져 올리던 처음 그때처럼 가라앉았던 설렘과 흥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어떤 푸른색과 화포가 있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시야를 밖으로 돌리자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엔 늘 푸른색이 있었다. 나라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해 온 것이 쪽에서 나온 푸른색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물들인 무명 하나를 챙겨 길을 나섰다. 푸른색과, 색들이 살아있는 거리와, 사람들이 애달프게 궁금했다. (머리글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