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연 시인의 <가리봉 호남곱창>
조하연 시인은 시와 동시를 쓰면서 오랫동안 가리봉 일대의 단짠단짠한 이야기를 모으며 예술공동체 '곁애'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동시집 <하마, 비누>, <눈물이 방긋>을 내었고, '곁애'란 공동체를 통해 그림책 <형제설비 보맨>, <소영이네 생선가게>를 낸 적이 있다.
<가리봉 호남곱창>도 진도에서 올라와 '호남곱창' 가게를 열면서 가리봉의 터줏대감이 된 어르신의 이야기를 구술 받아서 재창작한 그림책이다. 손찬희 작가의 그림과 시(詩) 시리즈로 내고 있는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진도서 나고 자랐지
바다 향 안 나는가?
곧 결혼이 환갑이여
우리 집 아저씨 해남군 산이면 농협 다닐 적엔
'김주사네 초장 먹으러 가자'가
한 잔 하자는 윙크였지
빻은 찹쌀 똥그라메 구멍 뻥 뚫버
장 대리는 날 넣어가 고추장 담 가 만든 초고추장
막 잡아 온 낙지보다 그 맛이 좋았다면 말 다 한 거지
초장이 뭔 안주라고.
김주사네 목포 나와 초장 단지 한 자까지 싹 없애불고
싹둑, 가리봉 호남곱창 호남댁이 되었지
삼 년만 할랬던 게 손님 두고 갈 수 없어
내일 내일 하다 그만 삼십 년 되었응게.
그란디 가리런하던 여덟 곱창집
그 실허던 이 다 나가고
이잔 여 하나 남았으
잇몸으로라도 여서 시절을 뭉개야지
나마저 없으면 영 사라지는 거 아녀 우덜 모두 말여.
삼십 년이면 바람고 갈아타
중국 바람이 불더니
싸우고 찢고 할퀴고 난리도 아녔지
원래 들고 날 땐 기운들이 요란한 법이여
방 빼고 넣는 일이 수훨한가
지나믄 것도 다 사람 사는 일이지
잠잠하지 않고는 바람 지도 못 버티지
이자는 단골이 죄 중국동포들인걸
막 담은 김치를 얼마나 좋아하는디
할미 어미가 여준 거 새처럼 받아먹고 자라
그거이 손끝 마디마디 스며 손맛이 되었지
어깨너머로 익힌 시어머니 물간은 어떻고
바람 맞다보면 내가 바람이 돼
가만 가만 몸을 맡기면 내가 축인겨
달 가고 해가는 대로 자는 듯 둥둥 데려가 달라고 기도햐
괜찮은 기도지?
긍게 억지로 축내지 마
눈 감았을 때 보이는 걸 잘 붙들어
눈 감고도 나헌티 떳떳하믄 되는겨.
조하연 시, <가리봉 호남곱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