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한 나날

난 콩이 아니야

참도깨비 2021. 8. 24. 09:07

참새 떼

난 콩이 아니야

음성 평곡초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오늘 시 쓰기는 번갯불에 시 구워 먹기’. 다른 때보다 시간이 없어 으름장을 놓고 시작했다. 시간이 모자라니 천둥이 치고 온 하늘의 기운의 모아 번개 치듯 시가 될 만한 것들을 모으는 것이 큰일이다. 시가 되려다 만 것도 괜찮다고 했다. 1, 2학년이 먼저 들어왔던가? 3, 4, 5, 6학년이 다음인지 기억도 없을 만큼 도서관을 번갈아 쓰면서 한 가지 당부한 것은 따로 있다. 정 생각이 안 나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잘 빌려 쓰라는 것, 책 제목만 봐도 생각이 쏙쏙 날 것이라고 한 것 뿐이다.

어느 학교에 가거나 1, 2학년들은 시 이전에 글씨를 쓰는 것부터가 힘들지만 뭘 모르니 순전히 자기 안에 붙어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쓸 줄 알고, 조금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라고 생각하는 본보기 같은 것에 대략 시 비슷한 것을 입히거나 아예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잘못된 생각이거나 누군가의 생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뜻밖에 좋은 시를 부려놓기도 해서 끝까지 북돋워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쓰나 마나한 교과서 위주의 시라든지 누구나 생각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바닷가에는 물고기가 많다

메기도 있고 복어도 있고

바닷가에는 물고기가 많다

바닷가에는 쓰레기도 많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서다.

 

최소연(1학년), <바닷가>

 

1학년 소연이는 언젠가 바다에 다녀온 모양이다. 수족관에서 메기 비슷한 물고기부터 많이 보고 온 모양인데 그때 기억을 되살려 생각나는 대로 썼다. 문제는 바닷가에 쓰레기가 많다는 것. 물고기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버린 쓰레기인 것이다. 아마도 뉴스에서나 가족끼리 있는 자리, 학교 교실에서 기후 문제에 대해서 들었던 것이 생각났고, 물고기 구경에 이것저것 신났던 바닷가의 기억을 불러온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기억을 만들게 한 사람들에게 그것 보라고 말하듯 썼다.

 

봄이 오면

바람이 살랑살랑

옷이 바뀐다

꽃이 핀다

 

해가 뜬다

머리를 묶는다

벚꽃도 핀다.

 

김하랑(2학년), <>

 

2학년 하랑이의 <>은 한 권이 책과 같이 쓴 시다. 종이를 여러 겹으로 접어 표지로 만든 작은 봄책인 셈이다. ‘봄이 오면이 한 페이지이고, ‘바람이 살랑살랑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책이라서 존 버닝햄의 그림책 <사계절>을 읽는 기분이다. 대개 따로 쓸 것이 없을 때 가장 많이 골라잡은 제목이 계절 시인데, 하랑이도 지금 봄을 골라잡았다. 한 줄 한 줄 에 대해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을 쓰기 쉽고도 어려운데 자기만의 을 잘 써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옷이 바뀐다는 말이 쉬운 것 같지만 무엇보다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계절의 변화를 잘 짚어냈다. 그리고 해가 뜬다/머리를 묶는다/벚꽃도 핀다.’ 도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1연만 있던 시인데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고 2연을 새로 붙여 쓴 것이다. 봄이긴 해도 날씨가 더워서 머리를 묶는다가 자연스럽게 자기 행동에서 나온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간략하게 할 말만 하는 것이 1, 2학년 시의 멋이다.

 

여름은 좋다.

바닷가에서 상어를 잡아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좋다.

물총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좋다.

아이스크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혁(2학년), <여름>

 

옆 자리에서 비슷하게 시 종이를 접어 여름책을 쓴 종혁이.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하랑이와 둘이서 사계절 시 책을 만들고도 남을 것처럼 여름또한 잘 짚어내었다.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먹고 마시고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잘 써냈다. ‘상어를 잡아서 먹는다는 말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렇다는 말이니 여름을 기억하는 방식만 재미있게 들어주면 된다.

 

가을은 좋다.

왜냐면 낙엽이 예쁘니까

그리고 안 좋은 점도 있다.

은행을 밟으면 똥 냄새가 난다.

 

이승기(2학년), <가을>

 

연이어 나온 가을은 예쁜 낙엽과 똥 냄새나는 은행 열매로 강렬하게 그린 승기와 눈사람을 만든 2학년 친구들은 함께 재미있는 시를 만든 셈이다. 유치원이나 1학년에 처음 들어온 동생들을 위한 시 놀이책처럼 잘 쓰면 좋겠다.

 

바람이 쌩쌩 분다

추워서 옷을 여러 겹 입었다

여러 겹 입고 나가서

눈사람을 만든다

 

○○○(2학년), <겨울>

 

샐러리로 먹는 야채 샐러리를 생각하지만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게임크리에이터인

장뜰, 공룡, 각별, 마플, 유성, 꾸몽, 운터가 들어간

마크크리에이터그룹이닷!

 

○○○, <샐러리>

 

또 다른 모둠에서 나온 샐러리시는 게임에 이어 요즘 돌아가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대표하는 시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직업으로 한 요즘 아이들의 꿈을 대변하는 말이어서 이 시에서는 자랑스럽게 일러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크크리에이터그룹이닷!’에서 자신의 꿈을 미리 말하는 듯한 호기가 느껴진다.

 

별똥별은 예쁘다

그런데 별똥별은 눈이 있었다

이상했다

무서웠다

그런데 별똥별이 나를 위로 올린다

하늘 위로

 

김민지(1학년), <별똥별>

 

이번 시는 가장 놀라운 시다. 별똥별의 을 거꾸로 쓴 것만 보면 아직 글씨를 다 배우지 못한 느낌이지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자신만의 놀라운 발견을 잘 잡아내었다. 이 시를 어른들 몇 분과 보고 공유한 결과,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별똥별은 예쁘다라는 1행부터가 별똥별을 눈앞에서 보지 않고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흔한 생각과 달리 밤하늘을 아름답게 긋고 떨어지는 별똥별의 궤적을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말이라는 분과 별똥별에 대한 자연책이나 영상 비슷한 것을 보고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기는 했으나 바로 이어진 2행이 있기에 단순한 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별똥별이 있다는 말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뒤이어 나오는 이상하고 무서운 감정을 이끌어낼 만큼 강렬한 만남의 순간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말인 셈이다. 자신에게로 떨어질 것만 같이 밤하늘을 가르는 그것이 또 다른 눈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져서 이상하고 무서웠던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런데 별똥별이 나를 위로 올린다는 표현은 더 놀랍다. 벌써 별똥별의 느낌이 가져다 준 환상적인 변화에 이끌려 몸이 위로 뜨는 듯했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시인의 발견이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시가 저절로 찾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제주도 바다에

삼겹살이 살면 좋겠다.

그리고 목살과 육회도 있으면 좋겠다.

그럼 음식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약 내가 거인이라면

고기 나라도 만들겠다.

 

○○○(3학년), <고기 바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는지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 이야기를 학교 선생님과 나누던 아이다. 과연 무엇을 보고 와서 말할지 궁금했는데 반은 예상이 빗나가고 반은 맞아떨어졌다. 앞선 1학년 시처럼 바닷가에는 물고기도 많다로 끝낼 생각이 없어보이는 고기 바다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제주 바다에서 삼겹살과 목살, 육회를 찾는 이 고기주의자를 이쩔 것인가. 게다가 음식 부자에 거인이라는 엉뚱한 생각은 끝 갈 데 모르는 욕망을 그대로 담았다. 아마 그림을 그리라고 했으면 그렇게 그렸을 것이다. 바다 목장에 기르는 삼겹살 고기와 목살 고기, 그 자체로 육회 고기를 포식하는 거인의 상상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즐기는 시의 멋이 있어 좋다.

 

난 피구를 정말 못한다.

진짜 아주 못 한다.

친구들은 피구를 잘하는데

나는 아주 못 한다.

나도 친구들처럼 잘하고 싶다.

난 피구왕이 되고 싶다.

난 피구왕이 될 거야!

 

이윤홍, <난 피구왕이 될 거야!>

 

피구왕 모여라

피구왕 모여라

!

이제 두 명이다.

 

피구왕 모여라

피구왕 모여라

!

이제 네 명이다.

 

이제

피구를 할 수 있겠다.

야호!

 

음태경(4학년>, <피구왕 모여라!!>

 

윤홍이와 태경이는 피구라는 같은 소재로 겨루듯 썼다. 도무지 쓸거리를 찾지 못하다가 옆에 있는 친구가 쓴 걸 보고 자기만의 시로 써내는 것도 좋다. 비슷하게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이렇게 빗대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시에서 서로 다른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니 것이니. 태경이가 피구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하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 아이라면, 윤홍이는 진짜 아주 못한다고 인정하고 들어간 조금은 자신이 없는 체 피구는 즐겨 하고 그것을 통해 장차 피구왕이 될 거라고 의지를 내보이는 아이다. 피구왕들끼리 마지막까지 겨루는 것과 친구들 틈에서 더디게라도 배워서 피구왕이 되겠다는 차이가 커 보이지만 시를 통해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루어내겠다는 뜻을 비출 줄 아는 힘이 대견하게 보여서 서로서로 도움이 되는 시처럼 보인다.

 

엄마는 잔소리를 아주 많이 한다.

잔소리를 듣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또 잔소리를 한다.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방법 없다.

그냥 조용히 듣는 수밖에.

 

김하다(4학년), <엄마는 잔소리왕!>

 

어른들이 저절로 반성하게 만드는 시다. 아주 간결하게 하고 싶은 말만 제대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만의 생존 비결을 보여주는 웃픈 시라고 할까. 대부분 엄마를 고발하듯 몰아붙이는 시를 쓰지만 이름부터 상반되는 하다는 방법 없는 이 어설픈 대국을 그대로 써냄으로써 어른들을 머쓱하게 할 줄 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조용히잔소리를 듣고 있는 4학년 아이의 속내가 시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제목만이라도 성공했으니 된 셈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나는 학교에 갔다.

내 별명은 콩이다.

마음에 안 든다.

애들이 콩으로 부르니깐

짜증 났다.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엄도영(4학년), <난 콩이 아니야>

 

이 역시 조금은 억울하고 방법 없음에 대해 공감할 만한 시다. 김용택 시인의 동시 <, 너는 죽었다!>를 읽어주고 났는데, 아차 싶을 만큼 되돌아 나온 시여서 웃음이 났다. 별명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써내기까지 얼마나 짜증스러웠을까. 그런데 자기 별명을 강종해서 , 너는 죽었다!”하고 말했으니 시를 읽어준 나에게도 책임은 있다. 시를 읽어준 자리에 선생님도 계셨으니 뜨끔하셨을까? 그 반응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대답을 주셔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바로 책 많이 읽기 올림픽.

너도나도 책 많이 읽겠다고

읽지도 않을 책을 대출했다, 반납했다.

과연 누가 가장 많이 읽었을까?

 

김별(4학년), <도서관 올림픽>

 

학교마다 하고 있는 도서관 올림픽, 독서 마라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너도 나도 많이 읽을수 있는 기회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고까운 심정을 드러낸 별이. 문제는 읽지도 않을 책을 대출 반납 기록에만 적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제대로 읽어내는 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깔고 있는 듯하다. 독서왕 겨루기도 그럴 것이다. 아무튼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물음을 던졌다는 면에서 쉽게 쓸 수 없는 시이고 잘 쓴 시다.

 

누에고치를 처음 보았다.

누에고치가 물 것 같아서 못 만졌는데

용기 내고 만졌다.

만져 보니 말랑말랑했다.

누에고치를 더 못 만져서 아쉽다.

 

홍정민(4학년), <누에고치>

 

스포츠실에서 VR로 농구를 했다.

!

한 골을 넣었다.

! 빗나갔다.

그래도 농구가 재미있다.

!

골을 넣으니 좋다.

 

이서연(4학년), <농구>

 

정민이와 서연이는 서로 다른 체험을 하고 시를 썼다. 누에고치와 VR이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누에고치가 좀 더 겪은 내용을 잘 표현했다. 누에고치를 쉽게 만질 수 없어서 망설이고 만진 이후에는 좀 더 느껴보지 못한 아쉽다는 표현을 VR에 적용하면 어떨까. 직접 농구대에 넣은 것과 화상으로 겪는 것의 차이가 그렇다. ‘!’좋다는 표현이 화상과 실제 체험을 차이를 적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니니 아쉬울 따름이다.

 

도서관에서는 항상 책들이 수군거린다.

역사책에서 역사에 대한 얘기를 수군수군

예술에 대한 책 쪽에 예술에 대한 얘기를 수군수군

동화책 있는 곳에서는 여자 공주들이 왕자가 어디 있는지

수군수군

책들은 우리가 없는 사이에도 수군수군

맨날맨날 수군수군

 

김민경(4학년), <도서관에서 책들이 수군수군>

 

민경이의 도서관 이야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도서관 책들의 제목이 그렇듯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느낌이 확 들어온다.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역사책은 역사책끼리, 예술책은 예술책끼리(그게 무슨 이야기일지 따로 말하는 것 또한 얼마나 재미있고 새로울지) 수군수군대는 걸 떠나 동화책에서는 여자 공주들이 왕자를 찾아 떠들고 있다니, 얼마나 발랄한가. 책 읽는 재미를 단번에 불러일으키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 주간에 이 시를 붙여놓고 홍보하는 것 또한 고려해 보면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시는 자신만의 성정이 잘 드러나도록 쓰는 것이니 이렇게 누가 뭐라하든 바로바로 써내는 친구가 있어 번갯불에 시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치킨은 맛있고 종류가 다양하다.

치킨은 양념치킨, 후라이드치킨, 허니콤보치킨, 간장치킨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은

양념키친, 2. 허니콤보치킨이다.

왜냐하면 양념치킨은 양념이 맛있고

속이 부드럽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이다.

 

이정우, <치킨>

 

정우 시는 살짝 아쉽다. 맛있는 치킨까지 그림으로 그린 것까지는 좋은데, 그냥 좋아하는 치킨 종류를 늘어놓고 그 가운데 좋아하는 치킨을 고르고 왜냐하면 하고 다시 설명하는 식으로만 써내서 아쉽다. 치킨의 맛을 가족이나 친구들의 평가를 통해 그렇게 꼽을 수밖에 없는 맛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뽀깩~

사탄이 벌을 내려줄 시간

5시까지만

슬픈 내 인생 FJO

다음 생에는 부서지지 말기를

 

김민우(6학년), <부서진 FJO>

 

피코는 부프와 위티와 함께

램배틀을 했다.

그런데 위티는 죽었다.

왜냐고? 걸프 아버지가 죽였다.

왜냐고 몰라질거냐고?

응 위티야, 잘 가

 

박영준, <프나펑>

 

6학년 민우와 영준이는 자신만의 게임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 같다. 영문 이니셜은 게임 덕후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프로그램이거나 커뮤니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웹소설이나 판타지 종류의 것이기도 할 텐데, 더는 알 필요가 없다는 듯 대략 그렇다는 식으로만 써도 아쉽다. 그래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니 쓰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선생님은 솔로다.

남친이 있다가 헤어졌다.

그때 그 남자가 전화할 때

고백을 받지

선생님은 남친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선생님은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별로 없다.

어떤 남자나 그냥 사귀지

선생님은 남친이 없다.

선생님이 혼자 걸어갈 때

커플들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또 눈물도 흘린다.

중학교 가기 전 소원을 빌고 싶다.

선생님, 남친 생겨라!

 

김주하(6학년), <선생님은 남친이 없다>

 

선생님은 사자다.

왜냐하면 우리를 혼내시면 사자가 되고

밥 먹고 돌아오면 순한 사자로 돌아온다.

선생님은 차여다(차가운 여자)

왜냐하면 선생님을 좋아하는

남자를 차니까

 

○○○, <선생님>

 

주하는 공공연한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악당과도 같다. 악당이 따로 없다. 썩은 사과를 살짝 아래에 감춘 사과 장사의 사과 상자를 거꾸로 뒤집어놓는 사람이 악당이기도 한 것이니. 이렇게 선생님의 비밀을 자신의 바람에 섞어서 쓰는 짖궂은 시인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젠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일까? 선생님만의 고민을 단순히 지금 없음의 난간함으로 이해하거나 아무나 사귀라는 식의 발언은 아직 진지한 고민이나 현실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재미있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니더라도 웃픈 현실을 툭툭 내뱉듯 꾸미지 않고 써냈다는 점은 훌륭하다.

다음으로 쓴 선생님시는 주하보다는 덜해도 역시 선생님의 비밀을 공유하는 자신감 비슷한 것이 품어져 나온다. 선생님을 매우 잘 알고 교감하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미묘한 느낌이 살아있다. 그러면서도 왜냐하면을 빼고 자연스레 연결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유행은 쓰나미다.

한 사람이 유행을 퍼뜨리면

쓰나미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걸 사거나 따라 한다.

또 유행이 지나간 것은 쓸모가 없어지는 게 많다.

꼭 그렇게 유행을 따라가면 안 되겠다.

 

유성현(6학년), <유행>

 

성현이는 유행에 민감한 모양이다. 유행이 생기는 까닭이나 그것의 결말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썼다. 유행을 따라 가는 사람들에게로 돌릴 뻔한 화살을 자신에게로 던지며 다짐하고 있으니 유행의 피해자는 자신인 셈이다. 유행을 따라 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 같다. 좀 더 에둘러 유행의 길을 연구해 보고 유행에 휘둘리거나 쓸려가거나 즐기는 사람의 차이를 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행을 꼭 그렇게 따라가지않고 살 수는 없기도 하니까, 친구나 가족들 사이 한때 유행했던 것에 대해 써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나는 지금 빠르게 시를 써야 한다.

귀찮아도 힘들어도 이겨낼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시다.

3분이 남았다.

하지만 빠르게 썼다.

 

황현후(6학년), <번개>

 

현후의 순발력이 돋보이는 시다. 어느 학교에 가거나 시를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고충을 이렇게 쓴 시들이 많은데 형후는 제목 하나로 비틀어 놓았다. 번갯불에 시 구워 먹기라니까 그냥 하고 시를 쓰지 못한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번개를 훌륭하게 빌려 썼다. 얼마나 시간 모자르다고 조였는지 귀찮아도 힘들어도쓰고야 말겠다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선생님이 시를 쓰라고 한다.

귀찮다.

나는 변명을 하기 위해

머리를 쓴다.

~ 시는 어렵다.

2분 남았다 망했다.

제목은 변명

1분 남았다 흠~

그냥 내야지.

됐어 다했어.

선생님!

 

RX-78-2, <변명>

 

이 이상한 이니셜을 가진 친구는 번개대신 변명을 선택했다. 둘이 짜고 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듯 음흉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시다. 이런 너스레가 또한 시의 폭과 넓이를 가져오는 것이니 적극 환영이다. 웃음 또한 주니 효과 만점이다.

 

나는 지금 급하다.

시를 빨리 써야 한다.

남은 시간은 30

으아아아

세이브!

난 시를 썼다.

 

김상두, <>

 

선생님이 시를 쓰라고 한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은 쓰라고 한다.

시간이 없다.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정민재, <선생님과 시>

 

상두와 민재도 한 자리에 있었지만 서로서로 자극이 된 듯하다. 민재의 마지막 말이 걸린다. 그렇다면 나는 시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무엇을 한 것일까? 제목도 <선생님과 시>이니 보기 좋게 비교해놓은 제목으로 오늘의 부당함을 표현한 것 같다. 민재가 다음 <월요일>에서 말한 것처럼 시는 월요일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번갯불에도 시를 구워 먹은 친구들이 있으니 일종의 무승부라고 해야 할까.

 

월요일만 되면 힘이 많이 없다.

월요일에는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일주일이 끝나면 다시 월요일이 온다.

월요일은 왜 오는 걸까?

 

정민재, <월요일>

 

고양이는 난폭하다.

잠을 자면 얌전히 있고

일어나면

사람을 공격한다.

고양이를 피해야겠다.

 

이다은, <고양이>

 

다은이의 고양이는 앞선 시 쓰기제목의 표현처럼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 같다. 묘한 고양이의 삶이 요즘 이야기거리가 되는 것처럼 좀 더 자세하게 끌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호불호는 있는 법이니 거기까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

전라도이다.

전라도는 김치가 싱싱하고 맛있다.

싱싱한 과일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면

할아버지가 자기 고향에 와서

고향 구경을 할 것이다.

 

강국성(6학년), <전라도>

 

국성이는 지난 해 시 쓰기 시간에 할아버지가 들려준 조선족 이야기를 하더니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연달아 시 쓰기를 할 수 있으면 어디서 시가 나오는 어떻게 나아가는지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는 어쩐지 전라도라는 말에 의미심장하게 고여 있는 느낌이다. 친구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알 만한 어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마무리 두 행은 멋모르고 쓴 것 같아도 먹먹한 느낌을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자기 고향에 와서 고향 구경을 하는 것이 넋이 되어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 고향을 공감하는 국성이만의 감정이 섞인 탓이다.

 

엄마가 게임 할 시간이 1시간이다.

나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1시간이 됐다.

그래서 나는 2시간이나 했다.

게임 했는데 조금 시간이 빨리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2시간 하기로 했다.

 

엄재민, <게임 할 시간이 너무 짧다!>

 

어린이날 1년 기다릴 줄 알았던

닌테도를 받았다.

기분이 좋다.

신이 난다.

피파21이랑 마리오카트를 해야지.

재밌을 거야.

 

○○○, <닌텐도 스위치>

 

재민이는 자나깨나 게임 생각이어서 그런지 게임에 대해서 쓸 거라고 말하고 썼다. 게임을 실컷 하지 못한 불만을 그대로 썼다.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어쩌다 2시간이나 했다는 말인데, 그때의 불안감이나 설렘이 살짝 묻어난다. 2시간이나 게임을 하면서 들킬 것을 염려하며 오히려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더라는 말 같으면서도 실랑이 끝에 2시간으로 합의를 보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좀 더 게임 관련한 다양한 시들이 나와도 무방하다.

 

1교시일 때 강당으로 가서

춤을 추는데 T터님이

성현이랑 나를 불렀다.

우리가 잘해서 배틀해 보라는 것이다.

그때 느낌상 살짝 귀찮았다.

ㅋㅋ

 

문초성, <클럽>

 

오늘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했다.

테이프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수연이 얼굴을 그렸다.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했으면

 

김나은, <테이프 미술>

 

예술놀이터가 좋은 것은 다양한 예술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보는 시간이 있다는 것. 이런 느낌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아 몰랐을 내용이 나와서 반갑다. 느낌상 살짝 귀찮았다면서 마지 못해 보여주기는 한다는 약간의 까칠함과 웃음이 그냥 끝날 시를 구했다.

나은이의 <테이프 미술>은 새로운 체험인 만큼 그에 맞는 느낌이 사라져버려 아쉽다. 테이프로 그린 친구 얼굴 이야기를 하거나 그렇게 다시 겪은 놀이 체험을 살려서 썼으면 예술가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오빠가 나를 모라 하면 나도 하는데

오빠한테 욕을 많이 듣는다.

진짜 짜증 난다.

오빠가 막 그러면 짜증 나서 뒷담 깐다.

왠지 모르는데 그냥 기분이 좋다.

오빠하고 엄마한테 들키면 난 죽는다.

ㄸ 아, 맞다 오빠한테 들켜서 욕을 먹었구나?

짜증 나

 

박보미, <오빠가 싫은 이유>

 

나에겐 5살이나 차이가 나는 언니가 있다.

나이가 많이 차이 나는 언니나 오빠가 있다면

다들 잘 챙겨 준다는데

우리 언니는 제외다.

 

언니가 이젠 고딩이라고 난리법석을 친다.

맨날 화내다가 갑자기 우쭈쭈 우리 동생님이라고

잘 챙겨준다.

그럴 때마다 너어무 소름 돋는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만 가면 그렇게 시끄럽던 언니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러다가 착한 척을 한다

가끔 언니의 인격은 몇 개인지 소름이 돋는다.

 

우리 언니가 옆에 오면

있는 털 없는 털 모두가 선다.

 

안수연, <소름 돋는 언니>

 

이른바 현실남매의 진한 말을 듣는 기분이다. 오빠와 언니의 존재가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도록 쓸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안타깝다. 어디까지나 동생이 겪어야 할 공감대이니 그것만 보자면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적확하게 써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빠의 행동에 대해 분개하면서 뒷담 깐다는 말이 거친 듯하지만 현재의 기분을 풀고 가자는 뜻이니 격하게 공감이 간다. 그걸 들키면 죽는다는 표현에 이어 벌써 들켜서 죽은적이 있다는 탄식이니 내 일처럼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수연이의 소름 돋는 언니는 더 깊이 들어가 있다. 몇 개 일지 모른다는 언니의 인격까지 들먹이며 털이란 털은 다 서는 듯하다니 얼마나 소름 돋는 표현인가. 그동안 현실남매에 대한 보고서 형식의 시가 많이 나왔지만 이렇게 조목조목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들이대는 표현이 없었는데, 이 다음부터가 또 다른 시의 출발이자 미덕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마음껏 풀어내고 시를 읽고 공유할 시간을 갖는 것이 시의 미덕인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