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곧 시다
내 마음이 곧 시다
-충주 중앙탑중 학생 시를 중심으로
질문으로 시작하는 시 쓰기 교실, 첫 질문은 ‘시를 써서 먹고 사느냐’는 것이다. 시를 써서 먹고 살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싱겁게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꿈꾸는 일들이 궁금해진다. 생각을 잘 간추려서 하고 싶은 말을 써냈으면 하는 바람, 마음 한쪽이라도 확인하고 나눌 수 있으면 좋을 시간. 앞서 본보기로 들려주는 시들이 그래왔으니 중앙탑중학교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으며 깊이 들어가 보았다.
있는 그대로 쓰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어딜 가나 공통적으로 한다. 어떻게 써야 한다는 규칙이 없지는 않으나 오늘처럼 시 이야기보다 시 쓸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도 써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당황스러운 듯 하나 곧 알아듣고 자기만의 시를 써낸다. 시가 되는 이야기는 낯설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쓸거리가 없다 싶으면 시 쓰기 싫은 이유를 조목조목 써내고 된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가 흐린 아침
나는 우산을 챙긴다.
학교가 끝나고 보니
비가 그쳤다.
햇살이 뜨겁게 나를 비춘다.
날씨가 맑은 아침
기분 좋게 집을 나온다.
점심때쯤 되니
툭, 툭. 비가 오기
시작한다.
학교가 끝나기 전엔
그치겠지.
나는 비를 맞으며
집에 간다.
김가영(1학년), <비>
가영이는 어제 내리고도 오늘 내린 비, 어찌 보면 우산 챙기는 것이 귀찮은 마음에 내리는 비 이야기를 그대로 썼다. 우산을 챙긴 날은 햇살이 뜨겁고, 우산 없이 기분 좋게 나선 날은 비가 와서 ‘툭, 툭’ 비가 온다. 날씨가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니 ‘학교가 끝나기 전엔/그치겠지’하는 바람마저 통하지 않아서 짜증날 만도 하지만 묵묵히 ‘비를 맞으며/집에 간’다로 마무리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첫발 떼기라고 할 수 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것
흔적을 남기기도 하는 것
흔적을 유리창에 남기며 떨어지는 것
나는 준비도 없이
그 흔적을 맞고 있다.
내 어깨 위에도 흔적이 남는다.
비는 흔적을 남기며
내 어깨를 적신다.
황시하(1학년), <흔적을 남기는 것>
시하는 무덤덤한 듯한 마음에서 한 발 나아가서 ‘흔적’에 다른 복잡한 마음을 실으려 했던 것 같다. 유리창에 물큰한 선을 긋고 내리는 비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찜찜한 무엇이 남는 느낌이다. 비야 그렇게 흔적을 남기며 내리는 것 같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것’ 또한 비이다. 2연 ‘나는 준비도 없이/그 흔적을 맞고 있다’에서 끝냈더라면 읽은 이로 하여금 낯설게 하고 골똘하게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흔적’이란 말은 시하가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낯선 강가에서 집어든 돌멩이마냥 만지작거리는 마음 사전의 한 낱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에 비해서 뒤에 오는 민준이는 ‘조명’이란 말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비가 가져다준 다른 그림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 비가 오니
꽁꽁 묶인 밧줄처럼 가만히 있네
비는 사랑의 발자국을 따라
돌아다니니 도무지 비를 피할 방법을 모르겠네.
처벅처벅 큰 물소리인 줄 알았던 소리가
친구의 발소리였네. 친구의 손엔
소나무 같은 우산 두 개가 있는 걸 보니
또 하나의 조명같이 눈부시네.
김민준(1학년), <조명>
어디서 배운 것인지 비에 오도가도 못하게 갇혀 있는 자신을 ‘꽁꽁 묶인 밧줄’로 비유했다. 사실 비유는 딱 그때의 심정을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표현의 하나다. 굳이 직유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일상 생황에서 자주 쓰는 표현법이다. 마치 연애편지를 자주 써보거나 책에서 좋은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어본 것처럼 끝내는 빗속에 우산을 가져다 준 친구가 있는 그림을 ‘조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흔적’이 뭔가 말하고 싶은 ‘흔적’에서 끝났다면 ‘조명’은 마음 속에 환하게 그려지는 어떤 장면을 멋지게 제목 삼아 이야기를 잘 풀어내서 공감을 이끌어냈다. 어느 소설 제목처럼 ‘나의 눈부신 친구’인 셈이다.
여름은 너무 열정적이고
너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래서 너무 뜨거워서 힘들다.
나도 겨울처럼 약간 차가워지길
겨울은 너무 냉정하고 차가워지는구나.
너도 여름처럼 따뜻해지길.
신성현(1학년), <여름과 겨울>
그에 비해서 성현이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는 것처럼 여름과 겨울이란 소재로 순발력을 발휘했다. 어쩌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열정적이고 따뜻하지만 너무 뜨거워서’ 힘든 자신에게 ‘차가워지’길 바라는 마음. 주변 사람들에게도 듣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차가워지다 보면 ‘너무 냉정하고 차가워’져서 다시 ‘따뜻’해지길 바라게 된다. 본연의 ‘나’로 돌아오는 지금 ‘여름’인 것만으로 좋다. 타인에게 자신을 비추어 본 것이기도 하여서 흔한 소재이지만 잘 부려 썼다.
나는 모든 일정이 끝나면 밤이 된다.
나는 밤이 되면 과자와 노트북을 함께 들고
방에와 배구시합이랑 만화를 본다. 이게
유일한 내 취미이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버리고 집중을 하면
하루가 알차게 보낸 것처럼 뿌듯하다.
김은서(1학년), <나의 취미>
모든 문장에 글을 쓰고 있는 ‘나’가 들어갈 필요는 없는데, 많은 아이들이 ‘나는’을 중복해서 쓴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밤이 된다’면 되는 것을. 자연스런 말이 근간이 되는 문장이 아니라 문어체의 문장이 되다 보니 ‘모든 일정이 끝나면 밤이 된다’는 다소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으로 자기 말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버리고 집중’하는 ‘밤’에 친구와 즐기는 배구시합과 만화 이야기, 친구와의 교감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취미’가 아니라 ‘방에(?)’와 누리는 그 시간만의 풍족함을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있는 생각, 재미있는 시
시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그냥 이렇게 쓰면 ‘시’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언제나 거침없이 자신의 재미있는 생각까지 끌어모아 쓸 줄 안다. 삶 자체가 즐거운 것인 양 바로 쓴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간다
즐겁게 가고 있는데
개똥이 있다
그것도 개가 싸고 있었다!
그냥 가려는데
헉!
내 똥보다 굵었다
자존심이 상한다
많이 먹어야지
<개똥>, 신지우(공주동초 5학년)
뭘 써야 할지 잠깐 고민하더니 쓱쓱 거침없이 써낸 ‘개똥’의 압권은 내 똥보다 굵어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 끝에 “많이 먹어야지!”하고 다짐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것보다는 마침 자신 앞에 그런 풍경이 다가와준 것처럼 썼는데 자신만의 성격이 드러나면서 모두를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여기서 재미라는 것은 웃기는 농담이나 말 재주만이 아니다. 남이 뭐라고 한들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때로는 시를 쓰라고 하니 쓰긴 한다는 식으로 툭 던지는 가벼움이자 재미주의라고 할 수 있다.
눈이 운동을 한다.
무거운 눈꺼풀 견뎌내고
졸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텨낸다.
왜 항상 6교시에 기술인 걸까
매우 졸리고 피곤한 기술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점점… 더 졸리는 내 눈
꾸벅꾸벅 졸다 보면
기술 선생님은 내 앞에 와 있지
졸리는 기술 시간
김요한, <기술>
요한이가 그런 아이 같다. 시를 쓰는 자기만의 기술이 있는 것처럼 단숨에 쓴 시가 재미주의 그대로다. ‘꾸벅꾸벅 졸다 보면/어느새 선생님은 내 앞에 와 있지’란 대목에서 모두를 웃게 만든다. 선생님으로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으시겠지만 ‘졸리는 수학 시간’ 또한 그러니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사이에서 웃기고 재미있는 말로 이름이 짜한 친구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것 또한 시를 잘 쓰는 기술이다. 자기 안에 살아있는 자연스런 말과 생각을 잘 부려쓰는 기술, 주눅 들지 않고 그것 그대로 쓸 줄 아는 것이다.
민들레는 어렸을 적
어린이집 가는 모습
민들레가 새로 만날
친구를 위해 옆으로 눕는다
나는 어린이집 가기 싫어
옆으로 눕는다.
김선아(1학년), <민들레>
요한에 이어 선아 또한 재미주의자다. 내용은 한껏 귀찮은 듯 늘어진 듯보이지만 ‘민들레’를 어릴 적 어린이집 가기 싫어 옆으로 눕던 자신의 모습에 비유한 것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서너 행까지는 새로 만날 친구에 대한 설렘으로 눕는가 싶었는데 다소 앞뒤가 바뀐 듯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어린이집 가기 싫어’ 눕는다는 표현이 선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들레도 어린이집 가기 싫어 눕던 자신처럼 누워있다는 것이 시의 또 다른 기술을 보여준 셈이다.
좀 더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내야 할 시간
아이들 질문 중에 “시 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가 있었다. 뭘 복잡하게 생각할 겨를 없이 “쓰기 싫으면 쓰지 말아라”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붙들리면 꺼내드는 것이 ‘행복’이나 ‘기쁨’ ‘미래’ ‘친구’ 같은 말들이다. 책이나 누군가의 명언에서 간추린 듯한, 말해놓고 나니 이미 전달자로서의 머쓱한 위치만 느끼게 해주는 것들. 거기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섞어 또 다른 공감을 주어야 하는데 거기서 머무른 시.
나의 기쁨은 행복이
오고 행복이 오면
즐거움이 오고 즐거움이
오면 웃음이 나온다.
나의 기쁨은 웃음이다.
양서영, <나의 기쁨>
기쁨과 행복의 원천은 ‘웃음’이란 것인데 무엇이 웃음을 만드는지 자신의 삶에서 꺼내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한다는 시인처럼 웃음의 원천에 대해서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서영이는 ‘웃음’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고 있고 ‘기쁨’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으니까 또 다른 ‘웃음전도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란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것과 같다.
누군가도 힘들면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게 친구이다.
유태양, <친구>
태양이도 ‘친구’에 대해서 좀 더 써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선 <조명>처럼 친구의 의미라든지 누구를 지목해서 언제나 ‘기댈 수 있’게 만드는 친구에 대해서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말았다. 힘든 순간에 발견한 친구의 의미, 그것이 아니라면 힘든 순간만이라도 썼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내 마음속 태풍
니 마음속 태풍
둘이 만나면
주변이 쑥대밭이 되고
부서지고 날아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한 바람만 불어오네.
류경민, <태풍>
경민이가 말하는 ‘태풍’의 순간이야말로 ‘주변’(가족이나 친구를 대표하는 말이지 싶다)의 진위를 말해주는 때이지 않을까.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일을 벌인 순간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던 일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상황을 몇 마디만으로 잘 비유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바다는 선이고, 비는 악이기 때문이다.
방진양(1학년), <바다>
진양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온 문장을 빌어다 썼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은 많은 글에서 인용되고 있어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빌어다 쓴 까닭이 있을 것이다. ‘바다는 선이고, 비는 악’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앞 문장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바다를 뒤집어놓는 태풍이 악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분법에 빠지기 쉽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거나 전율케 한 문장을 받아 쓰려면 그만큼 삶의 이야기를 내놓아야 한다. 아니 거꾸로 말하여 그렇게 간절할 때 책속의 문장 또한 깊게 다가오는 법이니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도록 열심히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소소한 하루 속
갑자기 내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비록 그 시간이
아주 잠깐일지라도
정려원(1학년), <행복>
려원이에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시간’은 언제일까? 정작 그 가슴 뛰는 순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잠깐’이더라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때에 대해서는 숨겨두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떠올려볼 수 있지만 말이다. 때로는 그런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우개는 아기다.
지우개는 아기처럼 똥을 많이 싸고
또
아기처럼 아무 데나 똥을 싸댄다.
난 그걸 치운다.
아기똥을 치우는 것처럼
지우개 똥 치우기가 힘들다.
지우개는 아기다.
최가란(1학년), <아기 지우개>
느티나무야, 너는 멋있구나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너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느티나무
나도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채성, <느티나무>
가란이와 채성이는 흔한 소재로 시를 썼다. ‘지우개’와 ‘느티나무’로 대변되는 흔한 소재는 어려 곳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만큼 시를 쓰기 위한 방편일 때가 많다. 새로울 것이 없다. 자신이 쓰고 있는 지우개를 ‘아기’ 상태로 만들어 하나하나 치워줘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허방에 빠졌다. 차라리 엄마가 했던 말(저지레하던 어릴 적 자신에게)을 빌어다 쓰면서 재미있는 발상으로 시작했으면 조금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또한 더 이상 새로운 것 없이 반복되는 시다. 차라리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뻗어가는 가지와 바람, 그 그늘 아래 앉아있는 자신의 마음을 떠올려 쓰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니 충분히 느껴보고 말하는 것이 먼저다.
시골에 놀러 갈 때마다 할머니를 도와 캐는 냉이
작은 꽃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캔 냉이를 요리해 먹을 때면 특유의 향과
씁쓸한 맛 때문에 많이 먹지 않았었다.
할머니는 “조금 더 크면 냉이 맛을 좋아하게 될 거란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 시골에 놀러 가서 냉이를 캤다.
요리한 냉이를 먹어 보았는데
웬일로 나쁘지 않았다.
씁쓸한 냉이의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문별(1학년), <냉이>
‘냉이’가 그렇다. 할머니와 함께하면서 쌉싸름한 냉이 맛을 알게 되었으니 ‘냉이’의 재발견인 셈이다. 새삼 할머니의 “조금 더 크면 냉이 맛을 좋아하게 될” 것이란 말을 쓴 것은 삶에서 얻는 것이다. 느티나무란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늘’이 그렇듯 조금씩 알아가는 것들을 쓰는 것이야말로 비슷한 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가족은
힘들 땐 서로 도와주고
기쁠 땐 기쁨을 나누는 것이
가족입니다.
이수정(1학년), <가족>
허름한 커피집에 들어간다.
사회라는 컵에
쓰디쓴 커피를 넣고
노력이란 설탕과
인내란 시럽,
배려의 부드러움과
가족의 따스함을 넣는다.
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 커피가
내 인생을 바꾼
인생커피이다.
강지민, <인생커피>
두 편의 시는 확연히 다르다.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인 만큼 그 안에 자신의 존재 또한 발견해가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수정이의 ‘가족’은 흔하게 말하는 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그런 말로 덮고 마는 가족의 의미. 그러나 지민이의 <인생커피>는 진짜 ‘인생’과 ‘커피’의 맛을 알았을까 싶지만 앞선 ‘가족’에서 한발 나아가 나름의 의미를 붙여보았다. 어찌 보면 자못 진지하면서도 모호한 생각들이긴 하지만 그만큼 ‘가족’이란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질문과 답을 내놓고 있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이란 ‘노력’과 ‘인내’, ‘배려’로 어우러진 커피 맛과 같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겪었던 것일까. ‘따스함’과 ‘눈물’에 이어 ‘내 인생을 바꾼/인생커피’라고 하니 충분히 그런 과정을 보았거나 최소한 마음으로 겪은 듯싶다.
띠리링, 띠리링,
너무나도 시끄런 아침 소리.
난 지친 몸으로 준비해
학교에 간다.
투벅투벅
학교 가는 길은
언제나 지친다네.
김진성, <학교 가는 길>
나의 마음을 전할 때 쓰는 시
나의 마음을 표현할 때 쓰는 시
내 마음이 복잡할 때 써내려가는 시
내 마음이 곧 시다.
김동민(3학년), <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모두 다 좋은 시를 쓸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런 시간에 집중하고 마음을 조금씩 내보이려고 한 흔적이 보여서 좋다. 어쩌면 진성이처럼 늘 ‘지친 몸’과 ‘마음’ 상태이기 때문에 표현 자체를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쓰는 것이 시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시고, 기쁘고 즐거울 때만이 아니라 ‘복잡할 때’ 써내려가는 것이 시이기도 하다는 동민이의 말은 백번 맞다. 어떻게 써야 할지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순간을 잘 떠올려보고 있는 그대로든, 상상과 재미를 덧붙여 맛깔나는 시를 써야 한다. 오늘 이렇게 시의 첫발을 뗀 시간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이나 몸과 마음에 과 어우러지는 흔적들을 찾아 쓰는 시간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