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식

김사량 소설집 <빛 속으로>

참도깨비 2021. 8. 26. 10:33

김사량 소설가는 오랫동안 금기의 이름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학창시절 항일시위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제대에 입학했고 일본어로 소설 창작을 한 탓에 우리 문학사에서 다룰 수 없었던 인물이다.  일본어로 쓴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니 이미륵이나 밀란 쿤데라의 언어처럼 다르게 읽혀왔다.

 

그러나 김사량은 소설 속에 일본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천마』, 『풀이 깊다』를 발표하고 모국에 근원을 두고 활동한 작가이다. 대표작인 『빛 속으로』에는 식민지 치하에서 겪은 정체성 상실의 문제가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은 정확하게 말하면 세 편의 소설(<빛 속으로>,<천마>,<풀이 깊다>)과 한 편의 기행문(<노마만리>)이다. 해방 직전 독립운동 근거지인 중국의 타이항산으로 망명하였고 해방 이후 평양에 정착하고 한국전쟁에는 종군기자로 내려오기도 했던 인생역정이 그의 문학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사카대학에서 김사량 연구로 언어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석의가 번역한 이 책에는 김사량 자신을 닮은 <빛 속으로>의 미나미 선생이 나온다. 동경제대 재학중인 조선인 학생으로 빈민촌의 S협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1인칭 화자가 김사량이나 다름 없다. '내 안에 품었던 비굴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폭로와 함께 펼쳐지는 식민지인의 심리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천마>에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무대로 얄팍한 재능으로 기인 행세를 하는 소설가 현룡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결국 그가 살아남고자 애쓰는 길은 철저한 기생 뿐이었고, 최후의 모습은 비굴하기만 하다. 이 또한 시대의 다른 얼굴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소설 <풀이 깊다>는 김사량 문학을 관통하는 민족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변방의 군수로 나오는 주인공(박인식)의 큰아버지가 군민들에게 흰옷을 버리고 색깔 옷을 입게 하려고 독려하는 일본어 연설은 압권이다. 더 슬픈 것은 그의 일본어 연설을 과거 주인공이 다니던 학교의 은사(코풀이 선생)가 통역해서 다시 들려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의대생의 자격으로 산간 오지로 자원봉사를 떠나는 과정에서 가난한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백백교의 범죄 현장을 다루기도 했다. 

 

네 번째 나오는 <노마만리>는 도쿄를 거쳐 서울-베이징에 이르는 기행문인데 그 시대의 모습과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김석희 번역가는 '김사량은 때로 저항하고 때로 협력했으며 협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온몸을 던졌'던 작가로 말하고 있다.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김사량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의 이름과 언어, 문학과 방랑에 대하여'라는 해설로 매김하고 있다.

 

목차

책 머리에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
노마만리
해설 - 김사량, 그의 이름과 언어, 문학과 방랑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