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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재미 <똥벼락>

독서일기

by 참도깨비 2021. 9. 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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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재미

글쓰기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조금만 틈을 주면 내 훤한 이마를 두고 '빛나리'가 어쩌구 저쩌구 하며 우스개 소리를 하면 물을 흐려놓는 아이들을 한눈에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책을 읽어주는 것 뿐이다. 생각과 느낌이 어떻고 하며 입바른 소리를 해도 이 녀석들은 크나 작으나 부산스럽기 짝이 없고 학교 공부에 숙제에다가 빡빡한 학원 일정에 맞추느라 어디 한군데 참하게 집중하기가 어렵다. 딴에는 머리 컸다고 그림책은 유치해서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하며 집에 쌓아둔 전집이나 위인전을 이야기하지만 다 재미를 못 본 허세이자 뭔가 잘못 알고 있어도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빤히 들여다 보면 금세 탄로나는 공부 못자리 같은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림책을 읽어준다. 거기에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 친구들이며 걱정거리며 투정이며 바깥 세상이며 달달 볶은 콩처럼 고소한 것들이 다 있다고 꼬드기며 읽어준다. 괜히 힘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읽어준다.

 "하루는 돌쇠 아버지가.. 모처럼 잘 차린 상을 받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지 뭐예요. '귀한 똥을 밖에서 눌 수는 없지.' 돌쇠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똥구멍을 꼭 오므른 채 집을 향해" (<똥벼락>)

하며 누구나 한 번은 당해봤던 것처럼 똥 마려운 걸음을 하며 읽어준다. 그러면 아이들의 한데 몰린 눈빛이 한꺼번에 플래시처럼 번쩍 한다. 이에 더 힘을 받아 아예 더 망가지기로 한다.

"수리수리 수수리! 김부자네 똥아, 돌쇠네로 날아라!"

하고 욕심 많은 김부자네 똥간에 쌓인 똥을 아이들 머리 뒤로 힘껏 날려보낸다. 30년 일한 새경이랍시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밭을 준 김부자가 얼마나 밉살맞은지 다 눈치채고, 그런 돌쇠네가 얼마나 짠한지 눈치챈 아이들 머리 뒤로 팔을 이리 저리 휘저으며 똥들을 보내면 내가 진짜 산도깨비나 다름없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훔쳐 간 똥을 모두 갚든지, 아니면 그 똥 먹고 자란 곡식을 몽땅 내놔라."

하고 심술 사나운 김부자가 되어 가까스로 두 턱을 하고 없는 볼살을 잔뜩 늘어뜨려 큰 소리를 친다. 그 옛날 방정환 선생님이 이야기 보따리를 한 번 풀면 고무신에 오줌을 눠가면서 들었다지 않나. 이 녀석들 얼굴이 다 그 얼굴이여서 한층 더 힘을 받는다. 이때 끼어들기 좋아하는 한 녀석이 더 심술사납게 만들어보라고 하면 까짓껏 더 망가지기로 한다. 곧 똥덩이에 똥구름으로 몇 배로 갚아줄 것이니 괜찮다. 누구나 다 아는 속셈이지만 뻔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돌쇠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산도깨비가 있고 그림책만이 가진 힘이 있으니 신이 난다.

"굵직한 똥자루 똥, 질퍽질퍽 물찌똥, 된똥, 진똥, 산똥, 선똥, 피똥, 알똥, 배내똥, 개똥, 소똥, 닭똥, 말똥, 돼지똥, 토끼똥, 염소똥까지 후득후득 처덕처덕 사정없이 쏟아져 내립니다. 아이쿠 이게 웬 똥벼락이냐!"

푸드득 푸드드득, 퍼드득 퍼드드드득!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싶게 멋지게 복수를 해주는 일을 도맡아 하는데야 골 백번을 읽어준들 어떠랴! 하며 입에서 똥이 쏟아져나올듯 한참 똥벼락을 친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들썩해가며 듣도 보도 못한 세상 똥들을 합쳐서 던진다. 여치똥, 파리똥. 별똥까지 처덕처덕 던진다. 이쯤 해서 그림책을 보지 않고도 똥산이 족히 되었을, 그 밑에 깔린 김부자를 떠올리며 웃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함께 듣는 자리라서 그런지 자꾸 "아이구, 아이구" 하며 호들갑을 떨며 웃어댄다. 목이 살짝 아프지만 이 녀석들 앞에서라면 재미있는 광대가 되어도 좋아 힘이 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이 녀석들 똥거름 생각도 하고 내똥 네똥 가릴 것 없이 요즘 똥이 어떻느니 말도 많다. 조금 욕심내서 쓸거리도 늘어서 좋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렇게 책을 읽어주는 재미를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아빠, 선생님 할 것 없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어렵다는 '생각과 느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삘'이 꽂힌 김에 또 한 권 읽어준다. 이번에는 <난 늑대 싫어>란 그림책이다. 덩치가 커서 유치원 연극에서 느닷없이 늑대 역할을 해야 하는 동원이 이야기가 아이들이 한 번씩 겪어보았을 이야기이기에 '똥더미' 위에 철퍼덕 앉아서 읽어줘도  약발?이 잘 든다. 어디 착한 노릇만 할까, 다들 늑대라고 맡기 싫어하지만 의외로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두고두고 이야기할 거리가 늘어나니 좋다. 도랑치고 가재잡기가 따로 없다. 아이들에게 해줄 것은 바로 그림책(동화도 마찬가지)을 읽어주는  재미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런 자리를 빌어 동지를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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