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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만들다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1. 9. 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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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를 만들다 ”

옛 도서관 의자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소사였다. 학교 일을 해주면서 학교 논을 부쳐 먹는, 땅 한 뙤기 없는 소작농이었다. 아니 농사래야 한 마지기 될까 말까 한 논이었으니 농사를 지었다고도 할 수 없다. 학교 일을 해주면서 쌀밥이나마 먹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이야기가 딴길로 샜다. 의자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렇다.
학교 일이 으레 그렇듯 고치고 만드는 것이 전부여서 아버지는 장도리와 톱만 가지면 목수나 다름없었다. 수업 시간에 유리창을 고치러 오셔서 작은 망치로 딱따구리마냥 유리창 틀을 두드리고 있을 때 면 아버지가 선생님이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평상을 만들고 선반을 해 올리는 솜씨를 볼 때마다 언덕 위 교회에 잠깐 다닐 때 들은 예수의 목수 아버지와 자꾸 혼동하고는 했더랬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뭘 만들고 싶어도 아버지 솜씨에 비하면 무슨 장난처럼 보여 만들어놓고도 군소리를 듣는 듯하다. 의자만 해도 그렇다. 도서관 마당에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한 의자를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네 다리를 가진 의자가 아니라 두 다리만 있는 의자를 만들었더랬다. 넓고 긴 판으로 앉을 자리를 만들고 나서 다리를 붙여야 하는데 앉을자리판에서 잘라낸 넓은 나무로 다리 두 개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디 세울 수가 있어야지.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날림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갖고 의자가 서겠냐? 뭘 하려면 야무지게 해야지"
아버지한테 싫은소리를 듣고는 자존심 세운다고 한 말이 가관이었다.
"원래 땅에 심을 작정이었다니까요"
"의자를 심는다고?"


공원 벤치에서 보듯이 땅을 파고 심는다고 우겼던 것이다. 그래서 땅을 파고 의자 자리를 묻어놓고 의자라고 했다. 다리 짧은 닥스훈튼가 하는 개도 아니고 벌쭘하게 주저앉은 의자가 되버렸다. 딴에는 동네 어귀 슈퍼 앞에 내놓은 의자처럼 만들려던 셈인데.


아무튼 심어놓은 의자는 오래 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앉아서 흔들거리기라도 하면 금세 뽑혀서 넘어지는 건 당연한 일. 그래 다시 단단히 붙들어놓을 셈으로 텃밭 경계로 심은 벽돌 사이에 끼워서 의자 노릇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 등쌀에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큰 벽돌이어도 아이들 몇이 올라가고 들썩이니 금세 넘어가고 말았다. 다시 뜯어서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 다시 심어놓고 땜방질만 했다.


그러다 벼르고 별러 오늘에야 따뜻한 날씨를 틈타 두 개의 다리를 더해 네 다리 의자를 만들었다. 마음에는 집이라도 짓듯 못 만들게 없을 것처럼 달려들었다가도 만들어놓는 솜씨가 메주다 보니 어엿한 다리 네 개에 왜 그리 감동이 밀려오던지, 보고 또 보고 했더랬다. 나처럼 알량하게 구부러진 대못을 펴서 만들었지만 제법 든든하게 서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면야 아버지 성미에 찰 의자는 아니지만 말이다.


역시 의자는 심는 게 아니라 네 다리로 서야 하는 법이다. 갈수록 하체가 부실해져가는 나로서는 당분간 의자를 보며 힘을 얻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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