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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동화잔치

참도깨비 사진관

by 참도깨비 2021. 8. 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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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원 한켠에 선 개구진 느티나무다. 기념식순가 뭔가로 이사 온 뒤라 낯설지만 본성이 어딜 가나.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인적이 드물어 쏜살같이 지나치는 차들의 공명통 노릇 하는 공원살이 지겹다. 아직 철이 안 들어 노릇불긋 잠자리에 들 때인데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샐 수 있을 만큼 심심하기만 하다. 좀이 쑤신다. 가끔 어디 어디 사람들 나무 판때기에 붉은 글씨 목청껏 써서는 으쌰 으쌰 하는 건 재미없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뭔 사람들이 감고지, 대추고지떡 같은 옷차림으로 모여들더니 잔치를 한단다. 본능적으로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책에 나온다는 차림이다. 쥐같이 생긴 사람이 쪼르르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커다란 그림천을 매단다. 별꼴이다. 아예 어줍잖은 사람 꼴은 내려놓은 것 같다. 먼 바다 해적같이 생긴 사람이 호랑말코(이건 욕이 아님)같이 생긴 괴물에게 인사를 하지 않나, 백설공주가 마녀 손을 잡고 생쥐가 고양이가 주는 뻥튀기 과자를 먹질 않나,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려고 한다. 진짜 잔치다운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무엇보다 나랑 놀아주려고 온 것만 같아 온몸이 욱신거린다.

풍물패도 왔다. 어, 와랑장창 길놀이 장단을 치더니 공원 밖으로 길게 줄을 지어 나간다. 그대로 가 버리는 것일까? 아니다. 소풍날 용케도 찾아오는 솜사탕 아저씨처럼 좌판을 벌여놓은 사람들이 있는 걸 보아 잠시 난리법석을 떨다 올 모양이다. 잠시 조용해진 공원 안을 둘러보니 별별 게 다 있다. 천막마다 먹을거리며 놀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보인다. 이러다 나랑 안 놀아주고 지들끼리 노는 것 아닐까? 갑자기 어처구니가 없다 싶은데 뭐? 진짜 어처구니가 없게시리 어처구나 이야기에 대당사부를 잡아라, 뭐라해쌌는 놀이도 하려나보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다시 나더니 공원이 다시 꽉 찼다. 이제 제대로 놀아볼 모양이다. 저마다 사람 말로 자기는 누구고, 이런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실토를 한다. 그림책 동화책을 읽다가 금방 뛰쳐나온 것 같다. 꽤 외로웠던 모양이다. 쯧쯧.

그래도 가만 듣고 있으니 속내가 느껴져 재미있고 웃음이 난다. 호랑이가 오래된 우스개소리로 좌중을 휘어잡으려고 애쓰는 것도 우스워 오줌이 나올 것 같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여기저기 흩어져 논다. 어처구니없는 놀이에 달고나 만들기에 줄을 선 모습들이 한통속이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과자에 그림을 그려 먹기도 하고, 따뜻한 커피에 어묵을 팔고, 텐트 안에서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또록또록한 눈빛을 단번에 휘어잡았다. 어, 아까 나무를 타던 생쥐는 내 생명 같은 이파리며 이 꽃 저 꽃 말린 걸로 꽃창을 만들어준다고 애쓴다. 또 볕 좋은 무대에서는 황소아저씨와 쥐들이 사이좋게 먹고 노는 인형극을 하고 어우러져 대동놀이란 것도 한다. 모두 노는데 굶주린 사람들 같다. 그 기운이 한꺼번에 진액처럼 뿌리 저 밑부터 올라오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다. 보는 것만으로 땀나게 논 것 같다. 뭔가 보답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낌없는 단풍박수를 보내는 일 뿐이다. 내년에 또 만나!  

 

* 이 글은 2012년 10월 셋째주 토요일에 열렸던 가을동화잔치 이야기를 위해 썼다.

2018년 10월 22일 가을동화잔치 대동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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