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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복수할 거야!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8. 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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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복수할 거야!

-옥천 삼양초 1학년 시를 중심으로

 

초등학교에 시 이야기하러 갈 때마다 시 가장 잘 쓰는 1학년!”라고 말한다. 어디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새롭고 말하는 투로 달라서 좋다. 한글을 아직 다 배우지 못해서 자꾸만 은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물어보면 선생님 몰래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쓰라고 해도 좋다. 맞춤법에 전전긍긍하면서 쓰다 보면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사라지기도 하니 제멋대로 쓰라고 하면 그렇게 써서 좋다.

 

언니에 관한 거다.

언니는 귀찮다고 한다.

언니가 너무 밉다.

TV 리모콘을 맨날 뺏어간다.

이제 동생에 관한 거다.

동생은 나를 맨날 귀찮게 한다.

 

곽다희, <언니와 동생>

 

다희 시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언니와 동생에 관한 시인데, 어디서 배웠는지 “~관한 거다.” 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언니와 동생에 대해 억울했던 이야기를 일러 바치겠다는 다짐 같기도 하다. 언니와 동생에 대해 똑같이 “~관한 거다.” 하면서 시시콜콜 일러바칠 줄 알았으나 연필 잡는 손가락이 아파서인지 이렇게만 썼다. 그래도 진심이 느껴져서 좋다.

 

거실 화장실에 오빠가 들러 갔다.

똥을 쌌는데 막혔다.

그래서 그때 오빠가 내가 쌌다고 해서

억울했다.

다행히 오빠를 잡았다.

그래서 다행이다.

억울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잡았다.

 

김지민, <억울할 때>

 

지민이도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인지 거친 숨을 내쉬듯 앞의 시보다 자세히 일러바쳤다. 앞에선 어떤 일 때문이라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일이 벌어지고 오해를 살 뻔한 일을 해결한 이야기로 잘 마쳤다. 어떻게 잡았는지, 오빠의 변명은 어땠는지 듣고 싶었으나 여기까지 간결하게 보고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동생한테 화를 내서

엄마에게 혼나서 속상했다.

그래서 방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생한테 화를 내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김아인, <속상한 날>

 

속상한 일의 연속이다. 왜 가까운 터울의 형제 자매에게는 이리 가혹한 일들이 벌어질까. 화를 낼 수도 있는데 언니니까 참으라고 했겠지. 더군다나 동생한테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한 것은 화가 누그러져서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방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을 만큼 화가 난 것을 어찌 풀었는지 궁금하지만 여기서는 엄마가 개입해서 어쩔 수 없이 사과한 모양새이다. 얼마나 속상했을지, 이럴 때 흔히 묘약처럼 , 그랬구나!”하고 말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럴 때일수록 일머리를 알아가듯 감정이 생기고 풀려가는 과정을 잘 이해시켜 주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동생이 나한테

돼지라고 해서 슬펐다.

난 슬펐다.

동생이 자꾸 언니라고

안 해서 정말 슬펐다.

그리고 동생이 무섭다.

 

강나율, <슬프다>

 

나율이는 통째로 슬프다는 제목으로 자기 감정을 내던지듯 말했다. 동생은 돼지라고 놀리면서 화가 나면 언니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얼마나 슬프고 무서운 동생인가. 나율이 입장에서는 동생이라는 보호막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강짜를 부리는 무서운 동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슬기롭게 해결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언니나 동생이나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둘이 알아서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동생이니까’, ‘언니니까참아야 한다거나 일의 자잘못을 공평하게 따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학년 시에서 많은 동생들을 보아왔으나 이렇게 무섭다로 끝나는 시는 거의 보지 못했다. 역시 나율이에게 집에 가지고 가서 냉장고에 꼭 붙여놓고 해결하라고 말해줄 걸 깜빡 잊었다.

 

나는 남매다.

나는 첫째고, 나의 동생은 남동생이다.

엄마가 왔다.

아빠가 왔다.

아빠가 과자를 사오셨다.

엄마가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동생이 조금 더 많이 받았다.

동생이 자기 걸 먹고 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

내 걸 다 먹었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동생한테 물어봤다.

니가 내 거 먹었어?”

아니, 안 먹었는데.”

동생이 뭔가 수상했다.

다음날 할머니가 젤리를 사왔다.

할머니가 반반씩 나누어 주었다.

내 동생이 또 뺏어 먹을까봐 걱정이 됐다.

또 쉬가 마렵다.

이번에 속지 않아!

동생이 내 걸 먹으려고 할 때

내가 소리쳤다.

거기 꼼짝 마!”

 

박시아, <꼭 복수할 거야!>

 

1학년이라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아에게서 본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제목 정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시아는 꼭 복수할 거야!’라는 제목부터 정해놓고 가장 늦게까지 써냈다. 마치 느린 화면으로 다시 지켜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아빠가 사 온 과자를 동생이라고 더 받았으면서 언니 과자를 먹고 보는 동생이 얼마나 얄미운가. 처음에는 속았으나 두 번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묻어난다. ‘동생이 뭔가 수상했다는 말이나 이번에 속지 않아!’라고 말하며 마지막에야 모든 속셈을 간파하고 거기 꼼짝 마!”하고 말하는 것이 정말 시원한 복수로 보여 박수를 쳐주고 싶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강다지게 한 점 숨김없이 써내는 끈기마저 부럽다.

 

나는 슬라임을 먹고 싶다.

슬라임을 마실 거다.

 

○○○, <슬라임>

 

형아가 놀려서 화가 났다.

평생 놀렸다.

짜증 나서 형을 때렸다.

 

정성율, <억울>

 

나는 화를 풀 때

비개를 던지거나

아니면 비개를 때리거나 합니다.

 

태정, <내가 화풀이 할 때>

 

그에 비해서 위에 든 세 명의 시는 비개라는 사투리(할머니한테 배웠을까?) 말고는 새로울 게 없는, 그래도 손가락 풀어가면서 공들여 쓴 시여서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난 인형이 좋다.

왜냐하면 인형은 폭신폭신해서 좋다.

그런데 엄마가 귀여운 인형을 싫다고 해서

난 너무 속상했다.

엄마한테 물어보지만

엄만 끝도 없었다.

 

손예지, <인형>

 

이번에는 엄마와 인형 사이에 얽힌 이야기라 새롭다. 왜 엄마는 예지의 취향을 무시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일까. ‘엄마한테 물어보지만/엄만 끝도 없었다는 말이 알맞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선 귀엽고 폭신폭신한 인형이라고 했지만 엄마의 기준으로 보면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나치게 많은 인형을 가지려고 해서 단호하게 선을 그은 것일까. 아직 1학년 때는 충분히 폭신폭신하고 귀여운 인형을 좋아할 때이지 않은가. 엄마에게 그런 취향 차이에서 오는 모순을 물어볼 줄 아는 예지가 이름 그대로 예지스럽다. 그러니 엄마는 물음에 성실하게 답해서 오해라면 풀어야 할 것이다. 시가 이런 식으로 한 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호수에 갔다.

너무 예뻐 눈이 부셨다.

물도 맑았다.

그 근처를 돌아다녀서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오르막길을 또 올라가서

다리 뼈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김태희, <호수>

 

어떤 1학년은 어른들이 올라가는 산도 거뜬히 가기는 한다. 그렇지만 태희는 호수 한 바퀴를 도는데 아직 힘이 부치다.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다리 뼈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표현할 줄 아니 호수가 더 넓어 보이고 눈이 부실 만큼 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누나가 친구한테 사탕을 받았다.

누나가 피아노 수업 받는데

 

누나가 받은 사탕을

내가 먹었다고 했다.

아빠가 먹었는데

나는 억울했다.

 

강현준, <누나>

 

가족 사이에 자주 일어나는 일인 듯하다. 아빠가 장난으로 한 일에 엄한 피해를 입었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빠에 대한 원망보다는 누나에게 쏠려 있는 걸 보면 장난으로 먹은 아빠보다 누나가 더 밉기 때문이다. 전후 과정을 잘 살피고 지목해야 하는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썼으니 제목 또한 누나인 것이다.

 

나는 글씨를 거꾸로 쓴다!

막 해봤더니 글씨가 거꾸로 써졌다.

그래서 나는 깜짝 놀랐다.

계속 했더니 결국 거꾸로 도전했다.

 

육나연, <나는 글씨를 거꾸로 쓸 수 있다>

 

나연이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글씨를 거꾸로 쓸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장난으로 막 해봤더니 자신만의 장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거꾸로 쓴 시가 되었다. 시를 정리하기 전의 시 종이에 그린 그림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렇게 거꾸로 써 보면 전혀 새로운 시가 탄생하기도 한다. 좋은 도전이다. 자주 해 보면 어떤 시가 나올지 몰라 더 재미있는 시 쓰기가 될 것이다.

 

내 친구 김동하랑 장난을 많이 쳤다.

선생님이 쉬이랑고 했다.

쉬이라고 했으니

김동하랑 장난을 안 쳐야겠다.

 

박주원, <장난>

 

주원이는 선생님이 쉬라고한 말을 일부러 늘여 쓴 것 같다. 어쩌면 !’이라고 한 말에 가깝다. 그 말을 받아 적으려다 보니 어려웠던 것이다. 받침 있는 글자가 어렵지 않은가. 김동하랑 장난을 안 쳐야겠다고는 말했으나 어찌 그게 쉬운 일인가. 수업 시간에만 조심하면 될 일이니 다음에는 장난친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

 

국어가 어렵다고 해서

엄마한테 혼났다.

머리, , 다리

97번이나 혼났다.

 

홍진혁, <나는 어른이 되겠지>

 

오늘 나온 시에서 가장 어려운 시다. 제목부터가 애매하다. 진혁이로서는 정말 어렵게 꺼낸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제목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맞춤법을 다 익히지 못한 진혁이가 가까스로 쓴 제목을 보니 <나는 어른이 되겠지>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국어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97번이나 혼낸 엄마 같은 어른이 되겠지로 읽지는 않겠다. 마땅히 진혁이로서는 모르는 문제를 알기 쉽게, 아니면 실마리라도 주는 선에서 도움을 줘야 할 엄마가 혼내기만 하니 당황스럽고, 어른이 되면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97번은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보인다. 진혁이에게 엄마나 선생님이 자분자분 말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한글 깨우치는 어마어마한 벽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리 쉬운 학습지 문제라고 알아서 풀라고 강요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시에서 진혁이는 더 큰 물음을 던지고 있다. 어른이 빨리 되어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거나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같은 혼자만 삭혀야 하는 물음일 수도 있으니.

 

보라색 포도랑

초록색 포도가 맛있다.

씨를 싫어하기 때문에

초록색 포도가 맛있다.

 

전도현, <포도>

 

도현이는 씨가 없는 포도를 좋아하는 취향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처음에는 포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내려고 보라색이기 초록색이기도 하면서 씨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은?’ 이라고 하려다가 그만 쉬고 말았다. 이 또한 재미있는 시 쓰기의 과정이다.

 

게임을 했다.

게임이 너무 하고 싶다.

하루에 세 번이다.

게임을 몇 번 할지 정했다.

 

이건희, <게임>

 

1학년이라고 게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고학년처럼 하루종일 하고 싶을 만큼 게임의 세계는 누구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규칙을 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엄마와의 밀당이 느껴진다. 그래도 너무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으니 좋다. ‘~정했다.’의 마침표가 더 굵게 느껴진다.

 

친구는 학교 끝나면

맨날 나만 따라온다.

왜 맨날 나만 따라올까?

학교 갈 때는 안 따라오고

피아노학원 갈 때만 따라온다.

그 친구가 싫다.

하지만 내 친구다.

 

전송연, <친구>

 

친구는 늘 자기를 따라다닌다. 행동까지 따라 할 수도 있다. 그 친구는 송연이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기 때문에 떨어질 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싫고 귀찮으면서도 알고 보면 그 만한 친구도 없는 것이다. 생각의 과정이 읽혀서 좋다. 진득하게 생각해 보니 자기를 좋아해서 따라 다니는 친구이니 싫다가도 좋은 내 친구인 것이다. 이렇게 시가 되어가는 과정이 보이는 시가 좋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나는 게임을 잘 한다.

나는 동생 돌보는 거를 잘 한다.

 

최준혁, <잘 하는 거>

 

준혁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잘 하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동생 돌보는 일을 가장 잘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림과 게임을 잘 할 수 있으니 동생 돌보는 것을 잘 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대견하기만 하다.

 

오빠가 싫다.

친하고 같이 놀 때도 있지만

오빠가 장난칠 때는 진짜 짜증 난다.

 

임소율, <오빠가 싫다>

 

이렇게 짜증만 내는 동생을 돌보는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더 어린 동생이라면 이렇게 돌보는 것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도 잘 할 것이다. 오빠가 준혁이처럼 동생을 잘 돌보면서 장난이 즐거운 놀이가 된다면 좋겠다.

 

나는 엄마한테 혼났다.

까불지 말아야겠다.

휴대폰 많이 해서 혼났다.

 

설치민, <엄마한테 혼났다>

 

이름 가지고 한 마디 할 뻔했다. 엄마한테 까불고 설치다가 혼날 만하다고 말할 뻔했지만 꾹 참으며, 웃음도 참아가며 읽었다.

 

내 친구 박주원이랑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내 친구 박주원이라 마주쳤다.

 

김동하, <내 친구 박주원이랑>

 

동하는 신기한가 보다. 박주원이라 공부하다가 다시 박주원과 마주쳤다고 말하니 진짜 막역한 사이라는 것일까, 이것도 하나의 놀이인 것인가. 1학년만이 쓸 수 있는 시라서 좋다. 역시 1학년들이 시를 잘 쓰는 1학년 그대로 밀고 올라가 모두가 시를 잘 쓰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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