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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만 있는 학교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8. 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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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만 있는 학교
-대전 유성 문학마을도서관 아이들 시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문화가 있는 날 수업도 마무리하는 날이다. 3,4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충청 지역 작은도서관을 다니며 시 이야기를 하고 시를 써서 함께 나누는 일을 했다.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서 멀리 돌고 돌아 작은 항구에 있는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여 설레고 좋았는데 이제 끝난다니 아쉽기만 하다. 책 보따리 옆에 따로 둔, 그동안 모은 시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몇 년째 울궈먹는 시에 바로 엊그제 나온 따끈따끈한 시를 읽어주면 신기하게도 자기만의 시가 나오는 이런 수업을 언제 또 해볼까 싶다. 자주 자주 불러주면 멀다 하지 않고 달려갈 텐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걱정이긴 하다. 막바지 단풍 구경 가기 좋은 날씨인데 아이들이 시 때문에 오긴 올까 싶다. 작은도서관 근무자 말로는 다섯 명밖에 모집이 안 됐다고 미안해 하는데 그마저 다 올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앞섰지만 이 또한 시이니 달게 받아들여야지.

유성 문학마을도서관은 구청 앞 공원에 있는 도서관이다. 그야말로 문학마을도서관이어서 문학 관련 책들이 2층 남향 서가에서 밝고 따뜻하게 기다리는 곳이다.  개관 기념으로 조정래 선생이 다녀가셔서 큰 사진을 걸어두기도 해서 누가 뭐래도 문학마을도서관이긴 하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바람에 도서관 책 구경을 하고 강의실에 앉아 고양이 그림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오면 꼭 보여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털 한 올 한 올을 다듬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아이는 재준이. 1학년. 오늘은 오는 아이들은 모두 1,2학년이라고 하니 내가 어디서나 말하듯 가장 시 잘 쓸 1학년들이라 잔뜩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엄마와 함께 들어온 재준이는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엄마가 날갯죽지를 밀어넣으며 ", 선생님한테 물어볼 게 있다며? 뭐 타고 왔는지." 하고 말해도 배시시 웃기만 한다.
연이어 주호, 주혜 남매가 들어온다. 주호는 덩치로 보면 3학년인데 2학년이고, 주혜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7살이다. 주혜는 들어오자마자 손을 번쩍 번쩍 들어가며 입을 방긋거린다. 할 말이 많은 7살인 게 틀림없다. 그리고 단짝인 것처럼 보이는 서은이와 하영이가 들어왔다. 한 아이가 더 오기로 했는데 긴급하게 일정을 바꾼 모양, 다섯 아이와 함께 수업 시작.

"오늘은 시를 가장 잘 쓸 1,2학년만 모였으니 재미있게 놀아보자."
딱 보니 한 십 분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을 아이들이라 유리문 밖에서 넘겨다보는 엄마들과 함께 걱정이 되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재미있게 두 시간 동안 논다고 했으니 책임을 져야 할 일.
"주혜와 주호는 남매구나!"
"언니도 왔는데 지금 밖에서 수학 문제 푸느라 못 들어와요."
7살 주혜가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분주히 오가는 언니를 두고 한 말에 방긋 터진다. 토요일에 도서관까지 와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니, 주혜 말에 너도나도 학원 이야기를 하며 정신 사납게 해도 꿋꿋하게 시작해야지.

"오늘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재미있게 시 놀이를 할 거고, 한 시간은 너희들이 쓴 시를 함께 읽고 말할 거야. 그러니까 서로 서로 잘 들어주고 궁금한 게 있으면 손 들고 말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혜가 쫑알거린다.
"진짜 쓸 거예요?"
"그럼, 그럼. 어디 놀러 안 가고 시 놀이 왔으니 재미있게 놀아보고 시 써야지."
딱 보니 1,2학년이어도 피아노학원, 영어학원 다니느라 바쁠 아이들이어서 시와 논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놀기로 작정하면 되는 일. 피아노학원 이야기가 나와서 잘 치는 곡이 뭐냐, 곡을 칠 때 무슨 생각하느냐, 엄마가 그거 안 치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안 했다는 주호, 자기는 아빠한테 자랑할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서은이(먼저 대답해놓고 생각하느라 재미있는 얼굴로 좀 뜸을 들이는)와 골똘히 웃기만 하는 하영이, 주혜는 그 틈을 노려 연신 말을 하는데 주호와 재준이는 스티커를 꺼내놓고 딴짓이다.

몇 몇 시를 읽어주고 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기들이 쓴 그림일기 한 대목이 생각나는 시여서 할 말이 많아졌다. 그림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그린 산수유를 보여주니 놀라며 한 마디씩 덧붙인다. 칠판에 맛보기로 그린 사람은 못 그렸는데 어떻게 그렸느냐고 하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건 오래 바라보면 이렇게 그릴 수 있다고 하니 주호가 산수유나무를 떠올리며 딱지를 꺼내든다.
"111동 앞 산수유나무를 지나 무지개문방구에서 42탄 딱지를 사고 싶다."
붉은 산수유를 보니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 생각이 났고, 거기를 지나 문방구에 가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딱지를 보여주는데 빨간 딱지다.
", 그거야! 시는 이렇게 뭘 보면 바로 생각하는 것일 수 있지."
칠판에 주호가 한 말을 적어놓고 밑줄을 그으며 칭찬을 하니 저마다 할 말이 많다. 연이어 보여준 감을 두고 주혜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말한다.
"감 따봤는데요, 유치원 선생님한테 감을 따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긴 막대기를 올려서..."
나름 6하원칙을 지켜가며 다 이야기를 할 모양인지 길고 길다. 주호나 서은이, 재준이도 감을 좋아하는지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떠들어댄다.
"먹고 싶다!"
서은이와 하영이가 눈빛을 반짝이기에 무슨 감을 좋아하느냐 했더니 서은이는 단감을 좋아하고 아빠는 홍시를 좋아하는데 엄마는 좋아하는지 못 봤단다. 단감이 왜 맛있느냐니까 깨물면 아삭하고 달아서 좋다고 하는데 아빠는 홍시만 좋아한다고 하니 주호는 주혜가 말한 긴 나무막대기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에 어떻게 땄는지에 집중해 있다. 대나무 끝을 쪼개서 그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끼워서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따는 것이라고 말하니 자기가 하려던 말이 그거라며 맞장구를 친다.
주혜는 다시 6하원칙을 근거로 말하고 있고, 다른 아이들도 할 말이 많다.
"그런데 감은 언제 그렸어요?"
서은이가 궁금해서 물어본다.
"엊그제 바로 그린 거야. 오늘도 너희들 기다리며 고양이 그림을 마저 그렸는데."
봉숭아나무 아래 오두마니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여주니 진짜 그렸냐고 물으며 칠판에 그려놓은 사람 그림을 번갈아보며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잘 보고 그리는 마음으로 생각난 것을 수첩에 적기도 하면서 시와 놀면 된다고 알려주고, 즉석에서 그림 실력을 볼까, 하며 5초 동안 내가 하는 동작을 빨리 잡아서 그려보라고 하니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밖에서는 무슨 선생님이 저렇게 까부냐고 여겼을 것이다. 생각보다 수업에 잘 참여하고 있나보다 하고 안심이 되면서도 걱정은 될 게 틀림없다.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다짐해놓은 말들이 있을 테니. 빨리 동작만 잡아서 그리는 그림이 처음인지라 원성이 자자하다. 5초는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폼 잡는데만 해도 몇 초인데. 서은이와 하영이는 머리숱부터 배운 대로 그리느라 5초 동안 머리만 그렸고, 주호와 주혜, 재준이는 졸라맨처럼 동작만 그렸다. 그 와중에 주혜는 동작을 특징만 잘 잡아서 그렸다. 놀자고 하는 일이니 일일히 뭐라 말할 필요 없다. 다만 이렇게 단숨에 떠오른 것을 잡아서 그리거나 쓰는 것도 좋다는 말만 해주고 놀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그렇게 떠들고 들어주며 시 한 편씩 썼다.

토요일만 있는 학교는 안 가면 된다.

, , , , 금만 쉬고 토요일만 학교를 가면 많이 쉬고 갈 수 있다.

최서은, <토요일만 있는 학교>

본보기 시로 들려준 <, , , , 토요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시에 주호가 제목을 잡았는데 서은이가 낼름 가져다 쓴 시다. 정말 한 줄만 써도 되죠? 하며 1학년 시 가운데 더할나뉘없이 뛰어난 시라고 소개한 '엄청 빠르다/내 친구다'<강해용>'이란 시를 버금가는 시를 썼다. 처음엔 한 줄이었지만 옮겨 쓰면서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을 썼는데 처음 문장이 훨씬 좋다. '그런 학교는 안 가면 된다'에서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너무 짧다 싶어서 덧칠을 했는데 첫 문장으로도 되었다고, 마저 남이 잡아놓은 제목을 자기만의 생각으로 완성해도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산을 가보았다
너무 낮은 산밖게 안 가보았다
난 어른이 되어서
지금 세계로 가장 높은 산
에배래스트산보다 훨심 더 높은 산을
어른이 되었을 땐 9000미터 이상의
산을 꼭 가보겠다

낮은 산은
4500미터로 낮은 산이다
더 낮은 산은 3700미터다

유재준, <>

어은초등학교 1학년 재준이는 가족과 함께 산에 자주 간다고 한다. 그런데 맨날 낮은산만 가니까 재미가 없단다. 엄마는 옆에서 숨을 급하게 몰아쉬는데 자기한테는 아주 낮은산이라 시시하단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보다 더 높은 산에 올라가는게 꿈이란다. 처음엔 '~산을 꼭 가보겠다'로 끝냈는데 이야기 도중에 조금 바꾸어서 썼다. 그렇게 높은 산을 오르려면 낮은 산 몇 번을 넘어야 할까? 하고 말하는 바람에 재준이 생각에 낮은산 수준은 4500미터가 된 것이다. 그냥 넘어가도 좋을 것을 입방정으로 시는 고치고 다듬어서 더 좋은 시가 된다고 말한 것인데 재준이는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고 밀어부친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사탕을 좋아한다.
특히 딸기 맛 사탕을 좋아한다.
알사탕과 막대사탕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의 이름은
배고플 때 먹는
딸기 맛 사탕이다.
그리고 딸기 맛 사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딸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주호, <사탕>

어은초등학교 2학년 주호는 딱지만큼 붉고 맛있는 딸기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배고플 때 먹는 딸기 사탕은 어떤 맛일까, 하는 말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이유를 댔는데, 전형적인 초등학생 시가 될 뻔했다. 딸기 맛이라고 했는데 그걸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오래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어떻게 하느냐는 눈치여서 역시 안 하니만 못한 것이 되었다.    

놀이터에는 놀이기구가 많아서 좋다.
동생하고 신나게 놀다가
730분 정도에 집으로 가면 된다.

조하영, <놀이터>

하영이는 말 없이 웃기만 하는 아이다. 서은이와 주혜 사이에서 빙긋 웃는 얼굴로 묻는 말이 대답하기만 하는데 시도 그렇다. 놀이터에서 동생과 뭐 타고 놀았는지 물으려다가 그냥 정곡을 찔렀다.
"하영이는 730분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730분을 강조했으니 그때가 엄마가 들어오라는 시간인 것이다. 역시 말없이 웃는 얼굴로 시인한다. 더는 물어보지 않고 웃어줄 수밖에.

내가 울 때 연필통도 따라 운다
내가 개속개속 울면 연필통도 개속개속 운다
내가 맨날맨날 울면 연필통도 맨-날 운다
내가 그만 울면 연필통도 그만 운다
내가 맨-날 안 울면
연필통도 맨-날 나 따라하면서
맨날 안 운다.

이주혜, <연필통>

처음 본보기로 읽어준 '침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썼다. '베개에 눈물을 흘란다/흘릴수록 더 슬프다/슬플수록 더 슬프다'는 대목을 자기만의 시로 써냈는데 나름 운율이 있다. 자기 따라 우는 연필통은 애착하는 물건인게 틀림없으니 '계속계속' 울면 '계속계속' 울겠지. 그렇게 또 '맨날맨날' 울면 '-' 운다고 마치 혀를 내밀며 놀리거나 강조하듯 중간에 '-'을 썼다. 내가 그만 울면 그만 운다고 했다가 안 울면 또 나 따라서 안 우는, 죽이 딱딱 맞는다는데 놀랍다.  다음부터는 시 가장 잘 쓸 일곱 살이라고 해야 할까?

열두 시가 넘어 배고플 시간이라 더는 못 하고 끝내면서도 아이들이 받아치는 이야기에 아쉽다. 아이들도 그런 눈치지만 배꼽 시계와 막바지 가을 햇살이 공원에서 불러대니 어쩔 수 없이 마무리했다.
수업이 끝나자 문학마을도서관 관장님이 한 마디 하신다.
"30분도 가만 있지 않는 아이들 데리고 참 잘 노시네요."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이다.

 

 

2019.12

대전 유성 문학마을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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