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늙은 마누라의 잔소리와 같다는 말이 있지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올해는 일찍 장마가 온다던데 별 우스개 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 반쪽이 만화에 나오는 말이더군요.
"너, 이 말이 뭔지나 알고 떠드는 거냐?"
"아빠는 왜 내 말을 짜르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짤랐다고 그래"
"아빠가 지금 내 말을 짜르고 있잖아. 아빠가 엄마도 아니면서"
아내가 와서 몇 마디 하니 또 그런 소리를 하기에 알고 봤더니 이것도 반쪽이 만화의 대사이더군요. 완전히 반쪽이에 파묻혀 살다 보니 대사 하나까지도 다 외어버린 것이지요.
"이건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야!"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아주머니들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이 말에 황급히 주워담는다는게 변명처럼 들리니 웃지 못할 촌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장마는 늙은 마누라의 잔소리와 같은 것일까요. 아내와 내가 하는 말까지 잔소리로 몰아서 심심찮게 반항을 해오더니 늙은 마누라의 잔소리로 또 한 번 맞서려고 한 것일까요.
"예끼, 이놈!"
<훨훨 간다>는 그림책에서 이것만 크게 배워 나한테 써먹고 아내한테 써먹으며 좋아라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말로 앙갚음을 하는 재미가 쏠쏠한가 봅니다.
아무튼 큰 애들이 만화 보는 것 가지고 난리를 피우는 어른들마냥 이 녀석한테도 이제 제발 반쪽이 만화를 그만 좀 보라고 잔소리해야 하니 뒤죽박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를 보면서도 왠지 멋지게 써먹을 말이 없나 하고 살피는 것 같고 반쪽이 만화 때문에 어른 일에 시시콜콜 나서서 애어른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아 적잖이 고민이 되는 대목입니다.
"안 되겠다. 너 하예린한테 장가 보내야겠다"
"어휴! 에벌레 셀벌레~"
온달한테 시집 보낸다는 말 만큼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하예린이 사는 과천을 들먹이고 영락없이 나와 아내를 반쪽이와 째란이로 둔갑시키는 걸 보면 있을 수 있는 일 같기만 합니다. 만화에 나오는 하예린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한창 자라는 때에 나온 거라 지금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겠다고 해도 아직 만만한 제 누나쯤 생각하는 한길이. 혹시 하예린의 눈으로 우리를 감싷면서 마음 속에 시시콜콜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끔씩 내가 쓰는 이 도토리 일기를 골똘하게 읽어가면서 무슨 조화를 부리려고 시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반쪽이 만화에서 하두 실감나게 어른들 사회와 집안 이야기를 그려놓은 탓에 이 녀석도 그림책과 만화, 세상에서 들쭉날쭉 하면서 일기를 써가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200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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