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다 물에 잠기겠어."
일찍 장마가 온다더니 장대비가 쉬지 않고 내리는 날, 한길이가 유리창에 딱 붙어 걱정이 큰 모양입니다. 일본 그림책 <비오는 건 싫어>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정말 이러다간 바다가 되버리겠다고 호들갑입니다. 그림책에서야 씩씩한 할머니가 난로에 온통 불을 때서 비구름 속에서 심술을 부리는 도깨비들을 혼내킨다지만 입으로만 다독거릴 수밖에 없지요.
"하수구가 있어서 거기로 빗물이 빠지니까 괜찮아"
"그럼, 내가 땅을 파야겠다"
하수구 이야기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걱정하더니, 이번에는 우리 집에 잠기면 어쩌냐고 하더군요. 작년에 한번 물이 새서 난리를 피운 적이 있기에 한길이도 걱정이 되는지 자꾸 방이 새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그러잖아도 비 때문에 일찍 할아버지 집을 나서기도 했지만요. 작년 여름 장마 때 방벽으로 타고 들어오는 빗물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운 날이 많았고 곳곳이 곰팡이꽃이 덕지덕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도서관 창문으로도 빗물이 들어와 바닥을 다 드러내고 속이 상했던 터라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 다른 집을 알아보고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세 놓는 집들마다 비가 새고 곰팡이가 슬어 그래도 여기가 낫다 싶어 눌러앉았고 주인집 아저씨가 돈 아낀다고 직접 방수 작업을 하니 마니 하고 비 새는 게 잦아들어서 안심했기에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랬지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와 보니 벽이 젖어있고 바닥은 벌써 흥건히 젖어있더군요. 한길이 녀석은 정말 자기 말대로 되는가 싶어 옆에서 울먹거리면서 앉아있고 서둘러 물을 닦고 새는 곳에 비닐을 치고 큰 대야를 놓고...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주인 집에 올라가 보니 아저씨 아주머니는 없고 애들만 있는데 배를 쭉 깔고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게 얼마나 속상한지, 비가 샌다고 해봐야 생뚱한 소리일 수밖에 없고, 옥상이며 곳곳을 둘러봐도 어디를 막아서 될 일이 아니더군요. 기세 좋게 밀려드는 빗물을 보면서, 그래도 방안에 물이 들어차 모든 살림살이가 젖고 도망하는 것보다야 나으니 그러려니 했지요. 천둥과 번개는 치고 더 오그라든 한길이 녀석, 말없이 엄마 옆에 딱 붙어서 앉아있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대야가 넘치고 다시 퍼내고 하면서 밤을 보냈습니다. 한길이야 지쳐서 잠이 들기는 했지만 잠이 올 턱이 없는 아내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빗물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도서관에 흘러든 빗물도 만만치 않아서 바닥재 밑으로 물컹물컹한 느낌이 나고, 아예 벽까지 젖더니 이번에는 두꺼비집이 나가는게 아니겠습니까. 한길이가 막 잠들었기에 다행이다 싶더군요.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까지 나갔으니 온갖 걱정에 분위기만 이상하게 만들어놓았을테니까요. 촛불을 켜놓고 어디에서 합선이 되었는지 찾으러 다니는데 곳곳이 젖어서 처음으로 되돌려놓으려면 아침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더군요. 옆집도 방이며 부엌이며 물이 차서 속상해 하는 건 마찬가지니 촛불 켜놓고 잘 셈이었지요.
그래도 어디 그래야지요. 아침에 밥도 해 먹야 하고 냉장고도 켜야 하고.. 몇 시간을 살핀 끝에 도서관 벽에 있는 콘센트에 물이 차서 합선된 걸 찾아냈지요. 선을 잘라놓고 마무리하고 두꺼비집을 올리니 다행히 불이 들어와 한 걱정은 덜었더랬습니다.
참 궁생한 이야기로 도토리 일기를 채웠군요. 잠깐 잠이 든 사이 벌써 대야가 차고 넘치려고 할 때 일어난 한길이가 화들짝 놀랬다가 바로 쓴 일기를 끝으로 장마 이야기를 끝내지요.
2004년 6월 20일 일요일
호우
오늘은 일요일. 호우가 오는 날이다.
바로 그 때, 천둥이 왔다.
집에 돌아오니까 물이 완전 샜다.
아침에보다 완전히 폭우다.
2004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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