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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산문의 정석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독서일기

by 참도깨비 2021. 8. 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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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인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의 짧고 간결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은 전 세계에서 3천만 부 이상이 팔리기도 한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의 산문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레스프레소』잡지에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제목으로 진짜 성냥갑에 다 들어갈 만큼 간결한 내용으로 그동안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미네르바 성냥갑>, <가재걸음> 등으로 책을 묶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공포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다행히도 그게 마지막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영원히 구제할 길이 없다."

이렇게 읽다 보면 전 지구적 현상이자 문제를 직면한 느낌이 들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 미래를 갉아 먹는 자본주의 시대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특유의 유머와 해학을 행간에 숨겨두기도 해서 바보가 된 느낌이 든다. 에코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우리가 <유동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기문트 바우만이 현대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쓴 <유동사회>는 국가와 신,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지속적인 불안 상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와 죽음이라는 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불안한 것이고 서로를 잡아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유동사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무관심과 무지를 떨쳐야 한다고 에코를 말하고 있다.

에코는 동선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강연과 저술을 통해 얻은 예지력에 의해 더욱 더 돋보인다. 날카롭지만 구석구석에 웃음과 긍정의 미학을 담고 있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음을, 자신의 뒷모습을 들킨 것처럼 헛웃음을 지으며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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