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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독서일기

by 참도깨비 2021. 8. 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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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의 신조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다. 조금 낯선 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말인데,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 아니다. 요즘처럼 복사기가 있는 시절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문서를 몇 부씩 필사해야 하는 직업, 필경사로서는 필사 행위 자체가 생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틀비는 변호사의 필사 요구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불과 글>이란 책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존재하거나 행동할 잠재성"과 "존재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을 잠재성" 사이에 있는 '비무장 지대"와 비슷하다고.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떤 일을 해서 아니 한 것만도 못한 일을 불러오는 것보다 낫다는 뜻일까?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이 된 후로 사무실에서 기거하면서도 필경의 요구에 앞에서와 같이 '택하지 않는 것"을 고수한다. '일을 하지 싶지 않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두 가지를 긍정하는 것이다.

왜 바틀비는 그런 말과 함께 끝내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구치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어떤 상징 같다.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분신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부유한 무역상이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 멜빌은 온갖 직업을 떠돌며 스스로 연명해야 하는 가난한 작가였다. 당대 최고작으로 꼽히는 <모비 딕>도 그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무역선과 포경선을 타며 일했던 경험을 살려 쓴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주로 작품들에서 쓰고자 했던 것이 문명 비평과 사회 풍자였던 탓에 <모비 딕>마저 그가 죽을 때까지 삼천 부도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냉대받는 작가였고, 그런 죽음 의식이 바틀비가 처한 현실에도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가 일하는 월 스트리트 변호사 사무실도 '벽의 거리'이고, 여기서 '벽'은 일종의 감옥과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바틀비가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서 하는 일이라고는 벽을 맞대고 죽음과도 같은 상태에 빠져있고, 변호사가 그에게서는 느끼는 연민의 감정 또한 작가의식이 내비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틀비는 줄곧 '안 하는 편을 택'한다. 그는 일종의 '파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어떤 방법으로도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변호사가 동정과 연민, 분노,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따라 신념이 바뀌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무실을 이사하고나서도 그는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구치소로 가서도 좋은 대접과 음식을 권유 받지만 역시 '안 하는 것을 택'한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결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자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말해둘 것이 있다. 이 짧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서 만일 독자들이 바틀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다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바틀비를 알 수 있는 소식을 전하는데, 그가 필경사 이전에 했던 직업이 워싱턴의 사서(死書) 우편물 계의 하급 직원이었다는 것이다. '발신자나 수신자의 주소가 잘못 되었더나, 양쪽이 이사를 가거나 사망해서 반송할 수 없는 우편을 취급'하는 부서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느꼈을 바틀비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이렇게 끝내고 있다.

"절망하며 죽은 자들에게 용서를,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은 자들에게 희망을, 절망하며 구제 없는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나오'기도 했던 그 공간에 대해 말하며,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하고 부르짖는다. 바틀비는 멜빌이자 부치지 못한 편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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