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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은 치유부터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1. 9. 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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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은 누가 하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문헌정보학 과정을 이수하여 사서라는 직함이 없는데도 책이 좋아 작은도서관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작은도서관 관장이라고 해도 운영자나 활동가, 자원봉사자로 불릴 수밖에 없다. 처음 시작이 공공도서관의 부족 상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분투이거나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에서 성장하는 사람으로서 가까운 곳에 책 읽는 공간을 마련해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였기에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파트 거실을 마을 사랑방으로 내놓거나 교회의 한 공간을 활용하거나 임대 공간에 들어가 책 읽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공동주택(아파트)에 의무적으로 작은도서관을 만들어야 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은도서관을 꾸려온 사람들의 희생으로 점철된 지난한 과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저절로 이루어진 천변의 숲 같다. 아이를 들쳐업고 그림책을 읽어주러 오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공감하며 가사 노동과 육아에 북새통 속에서 지켜온 공간이다. 필요한 책을 적어내면 엄숙하게 꺼내다 주는 폐가식 도서관을 지나 독서와 취직 공부를 겸하며 문화교실과 대출 반납을 함께하는 개가식 도서관으로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공공도서관의 변화는 주로 도서관 이용자의 수요 조사나 의회의 감시와 지원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작은도서관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공공도서관이 이용률과 대출 권수, 문화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 만족도 조사로 이루어지지만 작은도서관은 그런 정량 평가로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기 집의 한 공간을 작은도서관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그런 부분은 개인적인 희생 점수일 뿐이다. 평가기준에 따라 모든 작은도서관을 공공이라는 주민 공간이라는 틀에 맞추다 보면 작은도서관마다의 고충은 묻혀버린다. 

 

작은도서관의 고충은 즐거움(흔히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것이니 그런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공공의 책무이면서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찾게 되는 몇 안 되는 말이기도 함)으로 시작했던 것이니 참아야 하는 것이기에는 가혹할 때가 많다. 아파트 도서관의 경우 관장의 선임이나 자원봉사자 구성을 둘러싸고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주민 사이의 잡음은 생산적인 토론을 거친 좋은 결과가 아니라 상처만 남기는 폭탄이 될 때가 많다. 문제는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관장은 작은도서관을 책임 지고 운영하는 사람이면서 더 좋은 독서 문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쳐 두루 돌아다니고 유관 기관이나 단체(공공도서관, 동네서점, 작은도서관협의회, 시 의원 등등)들과 협력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 공과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자원봉사자나 활동가 또한 자신의 노력이나 희생이 오해를 불러오거나 불화로 인한 상처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작은도서관을 입신의 발판이나 명예의 한 얼굴로 내세우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불협화음이 작은도서관의 근간을 흔들곤 한다. 작은도서관은 그대로인데 자기 입맛대로 쥐고 흔들거나 지원에만 눈독을 들여 자기 도서관의 평가지표만을 높여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속셈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관종별로 사례는 많을 것이다.

 

지금은 작은도서관이 치유를 받아야 할 때이다. 각자 어떻게 소중한 공간을 작은도서관으로 성장시켰는지 공과를 따지기보다 사람과 사람 아닌 무엇으로 상처 받는 마음을 치유하고 가야 할 때이다. 그러자면 공동체의 역할이 커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잘하게 보이는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책이 있고, 그 책과 관련한 이야기가 어떤 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지속가능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진단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안으로 곪아 있는 몸은 진단이 먼저이다. 제대로 된 진단과 그에 맞는 치유법과 분석이 필요하고, 그것을 자료로 만들어 공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늘 같은 평가와 지원, 그에 따른 불만과 상처만 남길 수 있다. 

 

지금 작은도서관은 피로골절 상태인지도 모르고 공공이라는 레이스에 도전하는 마라토너인지도 모른다. 먼 길을 달려온 몸은 충분히 쉬어야 마땅하지만 또 달려야 할 먼 길이기에 지금은 치유의 시간으로 오래된 미래를 구현해야 한다. 너무 거창한 말 같지만 지금까지의 작은도서관을 만든 오래된 미래가 내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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