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를 전문으로 펴내는 파시클출판사에서 박혜란 번역으로 새로 나온 책이다. 꽃과 어두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제목 없는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은 그림책에도 많이 나온다. 바바라 쿠니의 <에밀리>, 제인 욜런과 낸시 카펜터가 만든 <나의 삼촌 에밀리>, 제니퍼 번과 베카 스태트랜더가 만든 <시의 날개를 달고> 등 많다. 영화도 여러 편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암허스트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은둔 생활을 했다. 아이들에게 열린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꽉 찬 자연을 보여주는 시인이야말로 유명세와 달리 시 본연의 고독하면서도 찬란한 자리를 말해주고 있다. 이 한 편만 읽어도 그가 갖고 있었던 너른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박혜란은 '아프고 외롭고 슬픈 순간에 반전처럼 통찰을 보여주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꽂혀서 그의 시를 고르고 파시클판(손수 묶어서 낸 자가 출판 필사본)처럼 내고 있다. 그렇게 한 시인을 맞이하고 우리 앞에 있는 슬픔과 고통을 바로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죽었을 때 내가 갖고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입니다―그렇게
그것이 숨을 거두는 순간 바로
내게 속할 테니까요―
그들이 그것을 무덤에 감금해버려도
이것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행복
그들이 당신을 무덤에 가둔다 해도
열쇠를 쥔 주인이―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세요, 연인이여! 나와 그대는
서로 마주보도록―허락받았습니다―
생이 끝난 후를―죽음이라―우리는 말하겠지요―
죽음은 거기 있고―
당신이 여기 있으니―
당신께 다 말할게요―그건 정말 밋밋했어요―
우선 깊은 밤의 느낌이 어땠는지―내겐―
세상의 모든 세계가 어떻게 멈췄는지―
햇살이 나를 꼬집었는지―그날은 아주 추웠어요―
그때 슬픔에 잠이 들어―잠시 잠들었습니다―
영혼의 귀와 입이 멀어버린 듯―
막 신호를 보내면―당신에게로―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면―당신은 ―나를 알아채겠지요―
내가 어떻게 미소 하나 지키려 했는지
당신에게 말해줄게요, 당신에게 보여줄게요, 이 심연을
모두 헤쳐내고 나면―우리는 장난삼아 뒤를 돌아봅니다
저 옛 시절-갈보리를
용서해주세요, 저 무덤이 천천히 온다 해도―
당신을 보고 싶은 열망에―
용서해주세요, 당신의 서리를 만지려다―
천국을 봐버렸다 해도!
에밀리 디킨슨, <그것이 죽었을 때 내가 갖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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