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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시집 <원근법 배우는 시간>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2. 10. 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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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에서 나서 자라고 지금껏 살고 있는 송진권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몸부터 즐거워진다. 형 따라 동생 데리고 동네 당산이나 천렵 가듯이, 대나무 잘라 불에 휘어 토끼 사냥 가던 겨울산마저 깔린다. 상경하여 젊은 사람들과 시를 배웠다 들었는데 그곳에 있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인이 태어난 고향 말과 마을을 떠올리며 그날의 형 동생 누나들과 저 혼자 깊은 물소리가 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시는 모든 글을 오가며 계속 여행하도록, 읽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되돌려 준다. ㅡ조르조 아감벤, <<저항할 권리>>
 
조르조 아감벤의 최근작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목처럼 '저항할 권리'를 반영하는 '모든 경고가 결국 철학의 언어이고 시어'라는 말. 약도 백신도 아닌 철학의 언어, 시어가 인간 존재를 밝히는 마지막 성냥이라는 대목과 맞아떨어진다. '시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시를 이해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필요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할 때만 이 질문에 대답이 가능해진다'고 덧붙인 철학자의 말이 곧 시를 대변하는 것임을 송진권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서 보여주고 있다. 입때까지 시를 버리지 않고 쓰고 있음을.
장대를 든 아이가 담장을 긁으며 걸어가요
또다른 아이도 집을 뒤져 장대를 찾아 들고 따라가요
장대 끝을 둥글게 휘어 거미줄 잔뜩 걷어 붙이고요
까치발 하고 몸을 길게 늘였어요
오늘 하늘은
푸르기만 해서요
구름 한점 없어요
매미 소리만 우렁차게 들려요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요
이렇게 기다란 장대를 높이 들고 가면
장대 끝에 우리를 데려갈 새가 날아와 앉는대요

장대를 높이 든 아이들을

키 작은 아이들이 따라가요
미루나무 길을 따라
마을 밖으로
도랑을 따라 강이 보이는 데까지
송진권, <장대 들고 따라와> 전문
시집을 펼치면 처음 만나는 <장대 들고 따라와>를 읽으면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장대를 들고 거미줄을 붙여 벌레를 잡았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아니 장대를 드는 순간 맑은 하늘 높이 새가 앉는 것처럼 설렌다고 해야 맞다. 언제 이렇게 해보겠나, 그러지 못하고 새가 데려갈 나이가 되는 것이겠지? 별별 생각을 할 때에 시인은 제목처럼 아무말 하지 말고 그냥 몸부터 따라 나서라고 한다. 그래 까따리로라도 끼워주면 신이 나서 먼지 나는 미루나무 길을 따라 도랑 따라 강까지 신이 나서 가지, 그렇게 시는 장대를 들고 시작한다.

이어지는 <가린여울 사시는 유병욱 선생님께>와 <모교 방문>에도 뭔가를 들고 땅을 적시며 흐르는 어릴적 설렘이 <소나기 지나간 여름날>로 한바탕 후줄근하게 적시는 기분을 가져다 준다. 그러다가 압권인 것은 <첫걸음마>이다. 앞선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에서 소 뱃속에서 태어나는 이야기가 압권이었다면 이번 시집에서 어린 송진권이 약간의 신기를 안고 첫걸음마를 뗀 시와 아부지 덕으로 입때까지 살고 있는 시인의 자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니까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진달래 꽃술 흔들다 꽃잎 떨구는 바람이나 잠든 물고기 지나치며 비늘이나 문대다 지느러미 흔드는 물결 같은 거였을 적에요 여기 사람은 아닌가본데 처음 듣는 말로 누가 자꾸 밖에서 부릅디다 나야 노상 방 안에서만 뒹굴다 가끔 성질이 나면 패악이나 부리다 시악을 쓰며 울기밖에 더 했던가요 다들 들에 나갔는지 조용한데 마악 잠에서 깬 내가 뭔지 모를 어룽거림이 천장에 얼비치는 걸 보며 발을 들까부를 적에 또 누가 불러요 그 목소리 참 그윽하고 향기로워서 문을 밀치며 밖으로 나왔을 적엔 아무도 없고 목소리의 주인은 아지랑이 속으로 너울너울 가버린 성싶었지요 마침 빨래 함지 이고 들어오던 누나가 얼레 야가 그새 혼자 걸어다닌다니께 하는 소리에 복사꽃 산벚꽃 펑펑 터지는데 빨래터에 방망이질 소리 드높고 집집 굴뚝마다 연기 오르던 날 아닌개벼요

 

송진권, <첫걸음마>

 

누구나 태어날 때는 혼자였다지만 이것은 전편의 소 뱃속만큼이나 신비롭고 쓸쓸하고 절로 힘이 솟는 이상한 느낌이다. 그러니 일찍부터 시를 쓰려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게다가 철도원 일을 하며 시를 쓰고 있으니 역마살이 있을까 모르지만 잘도 누르고 사는 셈이다. 그게 다 아부지 음덕이지만. 대부분 아버지 나이 때가 되어서야 아버지 마음을 안다 하고, 아니면 그 전부터 패악질에 시악을 쓰며 단절하여 부재한 아버지이지만.

나야 아부지 덕 보고 살지
혼자 사는 늙은이들 불쌍하다고
우리 소 몰고 가서
논 갈아주고 밭 갈아주고
저녁밥 한끼 얻어먹고
막걸리 한잔 먹으면 그만이던 분
동네 사람들 다 손가락질하며
사람이 미련하니께 저렇게 기운만 시어서
품삯두 제대루 못 받구 남의 일만 하구 돌아다닌다고 해두
그냥 웃기만 하던 아부지
제 일도 제대루 못 추면서
남의 일만 직사하게 하러 댕긴다고 엄마가 웬수를 대두
아, 그이덜은 혼자배끼 없는디 워뜨캬
나래두 가서 해야지
오죽하면 서울 사는 윤셍이가 부모님 모셔 간댔어두
그 부모라는 분들이 안 가구
우린 여기서 용재(우리 아부지)랑 살란다고 해서
들락날락 그 집 일 다 봐주던 아부지
그이들 돌아가셨을 때두 궂은일 다 해주던 양반
그이들 땅 부치다가 아부지한테 말도 안 하고 윤셍이가 땅을 팔아버려서
거름 내놓은 게 다 헛일이 되었어두 말 한마디 안 하던 아부지
그 덕 보구 살지
우리 수양고모나 다른 이들 모두 나만 보면
느 아부지 심덕을 봐서래두 잘 살겨
늘 말씀하셨지만
나야 그 덕으로 여적 잘 사는 거 같지
송진권, <음덕> 전문

미움과 원망 이전에 누군가의 몸과 유전자를 빌어 혼자 태어나 사는 사람의 길에서 유랑하듯 마음을 다잡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제 복으로 산다는 옛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세상만물의 기운과 음덕으로 산다 여기면 노철학자의 말처럼 '모든 글을 오가며 계속 여행하도록, 읽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되돌려 주'는 시의 본분으로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장날은 얼마나 신이 나는지.

 

 추석 밑, 대목장이다, 또렷하게 생긴 것, 못생긴 것, 안 생긴 것, 생겨먹다 만 것, 빌어먹을 것, 빌어먹다 쬐금 남겨둘 것, 오다 만난 것, 가다 만난 것, 오다가다 만난 것, 팔러 온 것, 사러 온 것, 사 갔다 되무르러 온 것, 혼자 온 것, 같이 온 것, 남 간다고 따라온 것, 어쩌다보니 와 있는 것, 큰 것, 작은 것, 즉은 것, 쬐끄마한 것, 눈곱만 한 것, 여문 것, 설익은 것, 너무 익어서 되바라진 것, 다리 한 짝 없는 것, 팔 한쪽 없는 것, 눈 하나 빠져나간 것, 뛰는 것, 걷는 것, 나는 것, 날아가다 잡혀 온 것, 얼어 죽은 것, 말라 죽은 것, 삶겨 죽은 것, 죽은 날 받아둔 것, 죽은지 얼마 안 된 것, 죽은 지 한참 된 것, 죽은 줄도 모르고 따라온 것, 모르고 따라온 것, 아침에 밭에서 따 온 것 모두 다 나와 흥성대는 장날이다.

 

송진권, <장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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