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이가 드디어 1학년에 입학을 하는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뜬 한길이는 주위 사람들한테서 쏟아지는 입학보조금(학용품이나 옷가지를 사라고 주는)을 챙겨서 엄마 은행에 맡기고, 건너뛰어서라도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더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계까지 잘못 보고 입학식에 늦었다고 난리를 피우더군요. 여덟 시에 가깝게 가 있는 시침 때문에 한 시간이나 당겨서 빨리 가야 한다고 그러는 것이지요.
입학식을 하기 앞서 한길이 교실에 들렀습니다. 1학년 3반 25번. 어떤 선생님일까 궁금했는데 차분해 보이면서도 다정해 보이는 여선생님이어서 좋더군요. 책상에는 교과서 11권이 쌓여있고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온 같은 반 친구들이 서먹한 얼굴로 있는데 병설 유치원에 같이 다니던 아이들도 군데군데 보이더군요. 한길이가 한때 소풍길에서 뽀뽀까지 하며 좋아했다가 시들해졌다는 여자 아이도 있고, 말 많고 첫 자리부터 한바탕 싸우려고 대드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한길이는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니 범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가 오전 시간에 휴가를 내서 챙겨주려고 하니 뒤에 가 있으라고 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범생이 같더군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도 코를 파고 있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한길이네 반 아이들은 모두 합쳐 29명. 1학년 모두 합쳐 세 반에 80명 정도되니까 작은 학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사는 곳의 특성상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중심쪽이라 이제 세 반씩밖에 없는 작은 학교가 되버린 것이지요. 새로 지은 아파트촌으로 몰려나간 탓에 그쪽은 8반, 10반까지 넘쳐나는데 비해 여기는 서른 명 안쪽으로 세반인 것입니다. 그나마 조금씩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옛날 생각나게 하는 일이지요.
좁은 강당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부르고 5학년 선배들이 주는 선물에 교장 선생님 말씀, 담임 선생님 소개를 끝으로 입학식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들어와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니 진짜 실감이 되더군요. 벌써 2학년은 될 법한 아이들 몇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가운데도 열심히 떠들고 토를 다는 것이나 아주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는 몇 몇 아이들을 보면서 이 모든 아이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1학년을 다녀야 한다는 것도. 아울러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온 여자 아이한테 도와줄 건 도와주라고 당부하면서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더군요.
입학식에 맞춰 나온 학원 사람들이 열심히 신발가방이며 종합장, 사탕, 음료수에 끼워서 안내문을 주는 걸 보니 학교 끝난 다음에 학원으로 열심히 불려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더군요. 그 아이들의 부모들 얼굴까지 둘러보면서 함께 묻혀가야 할 한길이의 등하교길이 보이더군요.
"아빠, 친구들을 도서관에 데리고 와서 책 읽으라고 할거야"
섣부른 학원 이야기는 젖혀두고 열심히 도서관 일이나 도와주라고 했더니 입에 바른 소리인지 진심인지 떠들어대는 한길이. 바람부는 날에 나무 가지마냥 신이 났습니다. 벌써 화이트데이에 맞춰 사탕을 사서 어떤 여자 아이한테 줄 것인지 두리번거리면서.
이제 학교 이야기는 유치원 이야기와 다르겠지요. 안내문에 적힌 것이나 이 나라 1학년을 위해 수없이 쏟아지는 특집까지 합쳐 곱절에 곱절을 넘는 이야기들이 있겠지요. 학용품 하나 하나에 이름을 쓰는 한길이를 건네다 보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앞으로의 심상치 않은 도토리 일기를 생각하며 언제나 첫마음 그대로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005년 3월 3일
야, 장사 잘 된다 (0) | 2021.09.03 |
---|---|
그래도 반쪽이가 좋아 (0) | 2021.09.03 |
재미가 고추까지 내려왔어! (0) | 2021.09.03 |
옷이 덜 말라서 그래 (0) | 2021.09.02 |
A 더하기 B는 영어 수학문제다 (0) | 2021.09.0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