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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쪽이가 좋아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9.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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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노린재

한길이가 아직도 놓지 않고 좋아하는 책은 '반쪽이' 시리즈입니다. 하예린과 반쪽이 아빠가 나오는 만화 이야기인데 이 녀석한테는 거의 인생의 길잡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1학년에 들어갔으니 다른 책도 봤으면 하고 은근 슬쩍 들이밀어 보면 어느새 반쪽이 만화를 꿰차고 들들 볶고 있지요. 도서관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도 가장 먼저 재미있다고 권하는 책이 바로 반쪽이입니다. 요란한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해도 자기가 배운 인생의 지름길을 가르쳐 주듯 이곳 저곳을 짚어가며 보여주려고 안달이지요. 내가 만화를 그릴 줄 알면 반쪽이 못지 않은 책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물론 반쪽이 만화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않으려고 해서 속상할 때가 있지만요.


"그래도 반쪽이가 좋아"
더이상 왜 좋으냐 물어본다는게 실없을 정도입니다. 며칠 전에는 반쪽이와 하예린이 파리에 가서 겪은 이야기를 그린 <온쪽이 파리에 가다>를 책꽂이에서 찾아내고 좋아서 얼마나 팔짝 팔짝 뛰던지, 참 오래간다 싶더군요. 뭐 하나 하면 지긋지긋하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그것도 덜렁덜렁하지만)에 딱 들어맞는 찰떡인 셈이지요.


그래서 새로 나온 <이제 나도 1학년> 같은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습니다. 얼마 전에는 <책 먹는 여우>를 읽어주었고요. 그리 길지 않은 동화책이지만 한 번 읽어주려면 목이 다 아프지만 그래도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읽어주다 보면 스스로 읽을 날도 오겠지 싶은 것이지요. 그것도 크게 바라지 않아야겠지만요.


처음에는 뭐가 이렇게 기냐고 얼굴을 찡그리며 들썩거리더군요. 반쪽이 만화에 빗대면 긴 것도 아니지만 글만 나오니 그럴 수밖에요. 삽화가 나오면 그것 먼저 들춰대면서 읽기를 방해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읽어주었지요. 어쩌면 잘 때마다 들려주던 옛이야기 몇 편을 읽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싶습니다.


'책 먹는 여우'는 무엇보다 책에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먹는다고 하니 슬슬 구미가 당기는 듯 하다가 침을 듬뿍 발라놓고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것이나 서점에서 책을 훔치다가 걸려서 감옥에 가게 되는 우스꽝스런 것에 흥미를 갖더군요. 아직 몇 페이지를 남겨놓고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서 구술로마나 독서일기까지 썼더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도 1학년>은 취학통지서를 받는 것부터 시작하여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자기와 비슷하니까 흥미를 갖더군요. 역시 삽화가 언제 나오나 먼저 들춰가면서 꿈틀거렸지만요. 그러다가 1학년 교실에 들여보내놓고 나서 혹시 잘 하고 있나 궁금해서 교실을 엿보다가 선생님한테 들켜서 혼나는 어머니들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자기네와 다르다, 어머니들이 1학년인지 모르겠다고 바뀐 것 같다고 참견하더군요. 나머지는 다 읽기도 전에 잠이 들었지만 첫시작은 중요한 것이다 싶더군요.


 동화로 넘어가는 길은 그림책과 만화책으로 풍부하게 무장(?)이 된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녀석은 그 중간에 반쪽이 만화 같은 것이 쐐깃돌마냥 박혀있어서 더 힘들지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면서 책을 대하다 보면 그림책과는 또다른 이야기가 술술 나와서 좋습니다. 앉아서도 1학년 교실을 다 들여다 보는 듯하고 나름대로 점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사실 그림책과 동화책의 경계는 눈에 보이는 형태 뿐일지도 모릅니다. 까막눈 앞에서 화를 내가며 글씨만을 가르치려 들 때처럼 이곳과 저곳은 전혀 다른, 아니 이제야 아기 티를 벗고 새로워져야 하고, 그 대신 지나온 그림책의 세계를 버려야 한다고 못박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봅니다. 실제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집집마다 독서환경을 조사해 보면 그 경계가 아주 훤히 드러난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풍부한 숲을 지나지 않고 바로 질러 가버린, 딱딱한 교훈과 지식의 쓸모만으로 재단하는 책의 세계란 허황된 세계일 따름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녀석한테 온 것인데, 도서관에 있는 책만큼이나 묵혀두면서 스스로 재미를 붙여가도록 읽어주고 읽어주어야겠지요. 사실 나도 반쪽이 만화가 좋거든요. 굳이 만화쪽으만 들어도 김수정의 '일곱 개의 숟가락'도 있고 '짱뚱이'시리즈도 있고 '캄펑의 개구쟁이' 시리즈도 있고 끝이 없으니 더디 가더라도 온전한 재미로 구워 삶으면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5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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