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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완벽해!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9. 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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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끝물이라고 하면 맞을 정도로 문닫힌 해수욕장 같은 날입니다. 열대야다 해서 잠 못 이룬 밤이 엊그제인데 이어달리기로 비가 내리고 서늘한 골짜기에 들어선 것처럼 가을 문턱에 와 있습니다. 이럴 때면 바빠지는 건 아이들입니다. 밀린 방학숙제 때문이지요. 따지고 보면 옛날보다 숙제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일주일을 꼬박 달려들어도 할까 말까하는 걸 보면 숙제는 짐인 게 틀림없습니다.


한길이도 다음주가 개학이라 열심히 방학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주제가 정해진 일기 쓰기는 우리가 생각해도 어려울 것 같아 사흘 걸러, 아니 나흘 걸러 쓰게 했지만 그것도 어렵기만 하고 한자 쓰기는 스무 번을 쓰는데 상형문자가 따로 없습니다. 연필심을 몇 번이나 부러뜨리고 다시 깎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쓰는 바람에 몇 글자 쓰는데 한나절이 걸리기도 하니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길아, 방학숙제 다 했어?"
밤늦게 일하고 돌아온 아내도 방학숙제가 걱정일 수밖에 없으니 잘 놀았느냐는 말 대신 나오는 말이 그렇습니다. 한길이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날잡아 강행군을 시키고 있으면서도 결과는 그리 곱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응, 책 읽기는 완벽해!"


도서관에 들어오면 그림책과 동화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자기가 읽은 책이라고 했으니 완벽할 수밖에 없지요. 틈틈히 읽은 걸 쌓아놓고 두고 두고 울궈 먹자는 것이지요. 게다가 명준이 형이 준 '빙하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읽었으니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딴죽을 걸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밥을 씹으면서 딴짓을 해도 밥을 먹고 있는 건 틀림이 없으니까요. 영어사전을 읽고 한자를 찾기 위해 옥편을 뒤적거리는 것도 책읽기이고, 마침 알라스카에서 온 이모(이민간 후배가 도서관에 놀러왔을 때)한테 "놈에 가 봤어요?" 하고 물어보며 지구본을 돌려보는 것도 책읽기의 곁가지이니까요. 그래서 그 이모한테 책을 좋아해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책읽기야말로 자기한테는 완벽한 장기나 다름없게 된 것이지요. 저금통에 모으는 돈만 된다면 이모 따라 알라스카로 가서 눈 쌓인 산과 여름꽃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들떠서 말이지요.


아직 자투리 숙제들이 많이 남았지만 한길이 말대로 책이나 실컷 읽었으면 하는 것으로 남은 방학을 널널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거의 일주일동안이나 숙제해라 마라 가지고 마음을 썼으니 이제 편하게 마음 먹어야겠다 싶습니다. 그까짓 숙제 때문에 말 안 듣는 송아지를 앞에서 끌어댈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간사하게도 마음이란게 실컷 잔소리하고 투덜거려놓고 난 다음에 가라앉는게 탈이지만요. 꼭 먼지 쌓인 방석을 터는 것과 다름없다 싶습니다. 털 때마다 솟아올랐다가 잠잠해졌다 다시 털 때 보면 득시글거리며 피어오르니까요. 그래도 털어낼 때마다 홀가분해지니 낫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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