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
- 장수경의 <전교 모범생>(사계절)을 읽고 -
전교모범생이란 상장을 놓고 벌이는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의 다툼을 지켜보자니 문득 어른들이 만드는 세상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범생이라고 하면 범상치 않는 녀석을 대하는 것만큼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한데 영훈이와 해룡이 엄마, 그리고 학부모회 엄마들과 교장 선생님 사이의 오랜 싸움은 교육 현장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해룡이의 활약상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껄렁껄렁하고 앞니 사이로 침을 찍찍 뱉어내고 능글맞게 엉덩이를 실룩대는 해룡이의 문제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전교모범상으로 불똥이 튀어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지 않나 싶다. 까불기 대장에다가 공부는 뒷전이고 지민이가 자기를 좋아해 주기 바라며 끊임없이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어줍잖은 기사도 노릇까지 할 줄 아는, 끊임없이 겁을 주고 호달구는 반장 영훈이 앞에서 당당한 해룡이라면 어린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 "정말 씩씩하게 잘만 커다오" 하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 한켠을 어둡게 하기도 하겠지만 - 든다. 변변한 상 하나 받아보지 못한 해룡이가 영훈이처럼 반장 노릇에 모범상까지 받으려고 욕심내는 것보다야 훨씬 건강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데 작가는 좀더 욕심을 내어서 엉겁결에 받은 모범상으로 고민하는 해룡이와 그를 둘러싼 교육 현장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고자 했던 것 같다.
해룡이는 이름만큼이나 웃긴 녀석이다. 조심성이라고는 눈곱만큼이나 없고 반장 영훈이 수첩에 이름이 수십 번도 더 오르는 녀석이다. 그리고 짝꿍 지민이를 위해서라면 무지막지한 체육 선생님의 퉁소를 견뎌낼 만큼 의뭉스럽다. 자기 딴에는 연약해 보이는 지민이가 맞는 것이 딱하다고 자기 깃발을 대신 건네주고 당당하게 퉁소맛을 볼 셈으로 독사 앞에서 뻗정대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무스 대신 물풀로 바짝 치켜세운 머리를 떠올리면 영락없이 코메디언 임하룡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룡이가 끌어가지 않고 해룡이가 체육 선생님한테 퉁소맛을 진하게 본 탓에 앞니가 부러지고 입술이 터지고 멍이 드는 것 때문에 말 많은 해룡이 엄마가 들고 일어나면서 벌어진다. 해룡이 아버지는 선거철에 식용유 하나 받는 것이나 길에 떨어진 돈을 주워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예의를 차릴 만큼 - 해룡이 엄마 말로는 "말도 조용조용 하는 사람이 따지기는 뭘 따지겠어요?" 하고 말한다 - 단호하지만 얼굴을 그리 많이 내밀지 않으니.
체벌을 넘어선 폭력은 맞는 말이다. 아무리 해룡이가 선생님이 눈에 벗어난 짓을 했다고 쳐도 전교생 앞에서 퉁소(퉁소를 보면 나도 지긋지긋하다. 중학교 때 퉁소를 잘 부는 미술 선생님이 점수에 따라 퉁소맛을 보여주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아프던지)로 엉덩이를 때리고 그 충격에 거꾸러져 앞니가 조금 부러지고 다쳤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단 아이가 다치면 문제는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고 단호하게 질서를 어지럽힌 학생에게 내리는 체벌의 뜻이었다면 충분히 세심하게 대처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체육 선생님은 교권과 훈육의 신봉자답게 지나친 체벌을 했다.
"오빠가 운동장에서 실컷 두들겨 맞았잖아. 전교생이 다 보는 데서."
해룡이의 밉살맞은 여동생 화정이가 말하는 것만큼 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고뭉치 해룡이한테는 그냥 체면 구기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 아니다 해룡이 일이라면 학교에 가지도 않을 거라고 한 해룡이 엄마의 말대로라면 해룡이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니 다르겠지만 - 해룡이 엄마는 그냥 두지 않는다. 나가서 맞고 들어오는 것보다 차라리 때리고 들어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몇몇 부모들처럼 교권과 학습권 사이에서 얄팍한 싸움을 거는 것이다.
그에 교권을 앞세운 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과 맞서게 되는데 여기서 느닷없이 '전교모범상'이라는 것으로 불똥이 튀었는지 어리둥절하다. 더이상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둘도 없을 장난꾸러기 해룡이에게 전교모범생이라는 허울을 씌워주었다는 것은 해룡이의 자존심이 먼저 허락치 않을 일이었다. 방학과제물상이라도 받아보지 못한 해룡이에게 그 상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 거라는 건 해룡이의 씩씩한 모습에서 벌써 감지했을 것이고 영훈이를 비롯하여 학급 친구들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인데 무리하게 전교모범상으로 입막음을 했는지 모르겠다.
해룡이는 그런 상을 받게 되니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어느 정도 대접받게 된 것에 좋아했지만 영훈이를 비롯하여 다른 학부모들까지 들고 일어나 모범상 반대 운동이니 등교 거부운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혼란을 겪는다. 이윽고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회 사람들과 걷잡을 수 없는, 그리하여 그 무섭다는 교육청 게시판에까지 드나들게 되는 골치 아픈 사건으로 발전해서 체육 선생님의 사퇴니 정년을 며칠 앞둔 교장 선생님의 사퇴로 이어지는 무리수로 이어진다. 지민이가 영훈이와 해룡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정자 노릇을 했다지만 이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욕심에서 일어나 사태 해결의지가 없는 무리한 공방으로 이어진, 어른들의 세계만 보여준 꼴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교장 선생님의 비리를 끼워놓고 축구로 화해를 하고 전학이라는 방편을 써도 전교모범생의 뜻은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아니 작가의 무리수가 된 것이 아닐까?
'전교모범생'이 제목이고 더 나아가 거기에 담긴 주제를 해룡이와 친구들 사이에서 풀어보려고 했다면 좀더 다른 시각에서 출발했어야 했다. 해룡이가 충분히 그 짐을 짊어질 수도 있었는데, 이야기의 재미로 이끌어가는 새로운 시도로 가지 못하고 어른들의 문제만 스스로 드러내고 만 아쉬움이 크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본 건 나의 딴죽걸기다. 해룡이 같이 조금 파헤쳐볼만 한 아이를 다루는 이야기를 기대해서 충분히 우리 현실에서 다룰 수 있는 또 하나의 시도에 딴죽을 건 것이다. 작가의 활기찬 이야기 전개는 다른 작품에서도 맛보아서 알고 있어서 판을 뒤집으며 질책하고자 하는게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두고 넘어가고자 한다. 어른들이 만드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숨쉬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간절하게 그립기 때문이다. 아니 벌써 끝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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