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수유 색시 ”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가 선운사 동백꽃만큼이나 설레게 하는 봄날. 아직 한 겹의 옷이 싸늘해서 스웨터를 입고 보니 따뜻한 산수유 빛깔이 그립다. 좋은 말로 하면 문학병 비슷하다고 하지만 뱃속에 거지가 들어가 있는 줄배고픔처럼 역마살이었으리라. 동백꽃 보러 훌쩍 떠나고 바다 보고 싶다고 빠져나가던 날들을 생각해 보면.
이제는 그도 쉽지 않아 꽃구경은 짬내서 골목 골목에서 보는 꽃이 전부이다. 그래서 집안에 발바닥 닿을 만한 자리가 되면 화분을 놓고 꽃을 기다리는 것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다 꽃구경은 못 가고 화분살이 꽃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고 볕 조금 화색이 도는 얼굴이다.
그래서 텃밭에 심은 배나무 옆 살구나무 옆 산수유나무가 정겹다. 지난해에는 산수유 하나 달리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새살림하는 나무들은 수습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에 지났는데, 올해는 피자 마자 벌들이 붕붕대며 달라붙어 야단법석이다. 잔치상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설레인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회색건물들 사이를 지나 붕붕대며 꽃을 찾는지 반갑다. 산수유꽃이 튀밥처럼 잘게 터진 꽃술을 달고 있어서 그런지 먹잤것도 없을 것 같은데 벌들은 하나랃 놓칠 새라 빤 데를 또 빨고 다닌다.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는 척 꽃 둘레를 감싸고 돌면서 춤을 춘다. 파리 녀석들도 덤으로 끼어서 입맛을 다신다. 호박꽃이라도 되면 뒷다리가 무겁게시리 꽃가루를 달고 갈텐데, 산수유꽃이 되려 벌을 갖고 노는 듯하다.
벌들이 붕붕대며 꽃을 빨아대는 것을 바라보니 벌써 빠알간 산수유 생각이 난다. 구례 산동 처녀들이 입안이 헐도록 씨를 빼냈다는 이야기에 한 번 흉내내려고 하니 성한 것 없이 찢어지던 산수유. 그래도 돼지 새끼처럼 산수유 가지 아래 몸을 밀어넣고 산수유를 따던 생각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렇게 붉게 말려 차를 끓여먹던 생각이 난다. 벌들이 풀무질을 해대니 내가 찻주전자처럼 끓는 느낌이다. 하, 그래서 산수유 같이 붉은 색시와 얼크러져서 지금 또 산수유나무를 심고 그 가지 아래 서있구나 싶어 실실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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