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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야, 잘 가!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1. 9. 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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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쟁이야, 잘 가! ”


음성 금왕읍 본대리 광일아파트 단지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인도, 파키스탄에서 멀리 일하러 온 사람들이 고향을 못 잊어 크리켓 놀이를 하고 각자 자기들 나라 말로 연신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그야말로 여러 나라 공동체이다. 게다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나  조선족 며느리를 얻은 집까지 합치면 베란다에 날리는 빨래들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비오고 난 뒤에 생긴 물웅덩이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유곽과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웃고 있다. 묻지도 않았는데 소금쟁이를 잡았다가 자랑을 한다. 집에서 키운단다. 아이들은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다 보니 있는 아이들끼리 잘 뭉쳐다니고 인사성도 밝다. 그렇게 놀다가 대형 트럭이나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며칠 만에 들어온 아버지거나 또 먼 길을 가야 하거나 잠깐 눈 붙이려고 들어온 아버지들에게 금쪽 같은 자식들이다.


그러니 비오고 난 뒤의 흙탕물 웅덩이도 놀이터가 된다. 흙탕물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생긴 지도 얼마 안 된 웅덩이에 나왔다가 잡힌 소금쟁이가 발을 반도 넘게 빠진 채 허덕이고 있다. 소금쟁이야 물 위를 쟁쟁거리며 떠서 다녀야 소금쟁인데 반은 뒤집어져서 있으니 불썽사납다. 아이의 아버지는 몇 시간 눈 붙이고 나가야 하는데도 아이가 착 달라붙어서 이것 저것 사달라고 하니 집에도 안 들어가고 놀이터에 서있다.
"소금쟁이 잡아다 뭐하려고, 그냥 놓아줘라"


아이들을 흥을 깨고 소금쟁이를 놓아주라는 말을 꺼냈다. 왠지 도회 느낌이 강한 말처럼 느껴졌다. 소금쟁이라도 잡으며 아버지 기다리는 재미에 사는 아이들에게 소금쟁이를 살려주라는 목소리가 가냘퍼 보였다는게 맞는 말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웃어주던 녀석들이라 까탈스럽지 않다. 그냥 웃으면 갸웃거리더니 조금 큰 녀석이 "야, 소금쟁이 불쌍하다, 살려주자!" 하고 말한다. 자기들이 잡아놓고도 다시 풀어주자고 하는 소리가 도회 느낌이 나는 내 말과 달리 아주 친근하게 들린다. 아주 잠깐 혼곤하게 쥐었다가 놓아주는 재미로 그럴 뿐인 느낌이 살풋하게 느껴진다.


그러자 작은 녀석도 아까운 것 내놓는 모양으로 머뭇거리다가 과자 상자를 열고 소금쟁이를 살려준다. 흙탕물로 다시 돌아온 소금쟁이가 영 힘이 없이 물에 잠긴다. 곧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보인다. 얼마 있지 않아 기운을 찾고 물 위를 쟁쟁거리며 떠다니겠지만 아직은 기름이 돌지 않은 몸이 아이들의 아버지처럼 후줄근하게 보인다.


한참을 물 웅덩이에 앉아 소금쟁이를 내려다 보는 아이들. 고인 웅덩이지만 옛날에 그랬듯이 침 탁 뱉고 맑아져라 하고 노래불렀던 것처럼 곧 맑아질 것만 같다. 그러면 소금쟁이들도 제 몸과 너무나 딱 어울리는 춤을 추겠지. 손을 맞잡고 왈츠라도 추듯이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비추겠지.

봄꽃을 보고 돌아오니 소금쟁이들이 힘차게 웅덩이를 키우고 있다. 좍좍 늘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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