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룡뇽알을 보다 ”
"계라도 아니면 평생 어디 한 번 나가보겠냐?"
혼잎 뜯어서 나물을 무친 어머니, 이런 저런 반찬까지 한보따리 싸더니 집을 나선다. 따로 사는 큰 아들네 먹으라고 맛나게 무친 나물이 나물나물 신이 났다. 그렇게 어머니는 늘 마음이 나물밭에 가있다. 늘 가게에 붙박혀 어디 나갈 새 없는 큰 며느리에게 나물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계 이야기를 한다.
"계 하나 안 들어놨니? 그래야 놀러도 가고 그러지"
농사일이다 집안일이다 바쁜 어머니들로서는 계가 아니면 어디 구경갈 일이 없으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계라도 들어두면 몫돈 안 들이고 계절 따라 바깥 구경은 할 수 있으니 그러라는 말인데 그러면서도 어머니 마음은 다시 나물반찬 만들어 보낼 생각만 하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 마음을 아니 틈만 나면 어머니한테 "나물 뜯으러 갈까요?" 한다. 덕분에 나도 바람 좀 쐬고 이것 저것 구경도 한다. 나도 손바닥만 한 도서관에만 있다 보니 그렇게 틈을 내는 것이 꿀맛일 수밖에 없다. 내가 바쁠까봐 직접 말은 못하고 이 나물 저 나물 많이 낫겠네. 그새 팼으면 어떡하나"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는 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가는 것으로 마음 한 번 맞춰준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서는 것이기도 하다.
비가 내리고 나니 더 푸르러진 산과 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탓에 어머니는 아리랑 찐빵 만두집에서 천원에 열 개 하는 찐빵과 만두를 사고 사이다를 산다. 싼 맛이기도 하지만 출출할 때 아이들 입 막음(?) 하는데는 이만 한 것도 없다.
이제 마지막이 될 홑잎을 뜯으러 산비탈에 선 어머니. 앞주머니를 차고 조용히 혼잎을 뜯는 것이 꼭 고라니 같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날까 싶을 정도로 고단한 몸을 재게 재게 놀리는 것이, 투박한 손에 와 닿는 홑잎이 딱 고라니가 오물거리며 입가심하는 그짝 같다.
어머니가 홑잎 뜯는 사이 난 논두렁을 겄다가 미나리를 뜯었다. 봄날씨가 무르익었는데도 산고랑이라 그런지 손이 시리다. 옛날에 미나리를 뜯다 보면 거머리가 그렇게 많았는데 거머리는 온데 간데 없다.
그런데 미나리 사이에서 도룡뇽 알을 보았다. 도토리묵만 먹다가 창포묵을 먹을 때 그렇듯이 희끗희끗하면서도 속이 비치는, 순대처럼 돌돌 말린 알주머니가 있어 보니 도룡뇽 알이다. 여러 알을 떠올려 보았지만 순대 같은 알은 도룡뇽 알밖에 없는 것 같다. 속을 보니 몽글몽글한 알이 있고 그 안에서 이제 밖으로 난 아가미를 단 새끼들이 보인다. 꼭 목련꽃에서 떨어진 보랏빛 씨알 같다.
알을 보니 천성산에서 도룡뇽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했던 스님 생각이 났다. 도룡뇽을 원고로 해서 소송을 걸었던,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무지막지한 개발에 앞서 몸으로 보여주었던 희망이라고 할까, 막 태어난 아기 손처럼 평화로운 도룡뇽의 발이 생각나서 한참을 물끄러미 앉아 바라보았다.
좌선을 하고 앉아 있는 듯한 도룡뇽 알을 만져보다가 그만 미나리 뜯기를 그만 두었다. 그러잖아도 촘촘한 미나리밭에서 조용하게 날을 기다리는데 훤히 젖혀놓았다가는 모든 꿈이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흔히 보던 것들을 아무런 마음 없이 떠나보내고 홀로 사막에 남은 모습을 생각해 보니 저렇게 웅크리고 앉아 때를 기다리며 또아리를 튼 도룡뇽 알이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원고가 되고 단식의 희생양이 되었던 스님을 떠올리게 했다.
나물을 보며 식구를 생각하는 어머니 마음처럼(물론 그것이 지나쳐 산과 들을 몸살나게 하지만) 저기 저 자리에서 마음이 시작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직하게 돌과 흙을 밟고 돌아다닐 도룡눃을 생각하며 복잡하고 텃새만 부리는 내 마음 한 쪽 구석을 비워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룡뇽이 헤엄치는 저 맑은 물처럼 마음 뿌리를 담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남의 빨래를 훔쳐보다 (0) | 2021.09.07 |
---|---|
무서운 이야기 (0) | 2021.09.07 |
꽃도 별도 사람도 (0) | 2021.09.07 |
소금쟁이야, 잘 가! (0) | 2021.09.07 |
목련꽃을 보내며 (0) | 2021.09.0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