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이름으로
-대구 근대골목에서
골목 자산을 근대로(路)라는 길과 함께 전국 최고의 근대골목투어로 만든 대구. 대구를 대표하는 것에는 섬유패션산업과 약령시 한방 산업이지만 곳곳에 근대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어 근대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구를 중심으로 모두 5코스에 걸쳐 대구근대골목투어를 하려면 며칠이 걸려야 할 만큼 문화자산과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주로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들이지만 곳곳에 개발시대를 풍미했던 시멘트 슬라브 건물들 또한 큰 간판들에 가려져 빛을 다해가고 있기도 하다. 근대라는 테두리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곳곳을 이어주는 골목자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서구 건물들을 일본식으로 소화한 근대 건물의 형태를 빌려와서 한껏 멋을 부린 건물의 골격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회한 같은 것이 들기도 한다.
큰 건물이 아니면 거개가 인테리어 건축 자재로 뒤덮여 현대로 위장한 건물들이다. 근대역사관에 들어가면 체험해 볼 수 있는 그 시절의 버스 노선을 따라 재현된 건물들 사이로 있었을 일본식 2층 건물들은 커피집, 식당, 술집 등으로 바뀌어 헐리거나 재포장되어 골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도 읍성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헐리고 완전한 제국풍 도시로 탈바꿈해 간 것이 곧 근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오래된 사진 속에서나 무너져가는 한 나라의 배경으로 남아있던 읍성과 경상감영, 관덕정 같은 위용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버스노선을 따라 돌아보는 또 다른 제국의 심장부에는 요즘 영화를 위해 투자된 촬영세트 같다. 군산이 침탈을 위한 시설이어서 슬프듯이 사방대로를 걷는 엑스트라마저 슬프고 일본 본토의 어느 중심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계획적인 프로젝트형 도시 같다.
읍성을 돌고 있는 대구 사람들의 겨울 풍경을 보면 갓 쓰고 우산을 들었다. 연출된 사진 같아 보이지만 일본의 연구소 소장품으로 나와있는 사진에는 역사의 그늘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퇴락한 사람들의 누추한 삶이 보일 뿐이다. 또 한 세계가 오래 지속될 기미 속에서 단지 나라의 주인만 바뀐 듯한.
일본식 정원에 조선식 정자를 수놓는 일본 주인 여자와 유생들인 듯한 노인과 젊은 처자와 노비와 장사치들이 나오는 사진이 그렇다. 이마저 보존되어 있었다면 골목은 그 이상의 가치로 걷기 좋은 문화 자산이 되었겠지만 무너지는 나라의 적산가옥을 찾아볼 수 없는, 복원된 몇 군데의 근대역사라는 테두리 안에 꽁꽁 묶여 있으니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다.
지도를 펴들고 가까운 코스별로 돌아보기로 한다. 진골목. 긴 골목이라고 해서 진골목이라고 한다. 근대로가 일방통행으로 이어지는 상가들 사이로 난 골목은 사람들이 살던 여느 골목만큼이나 좁고 얼금얼금하다. 상가들의 뒷문으로 이어진 골목이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골목과는 달리 다른 목적지로 바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긴 골목이기에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다시 돌아오고 질러가는 재미가 있다.
골목의 담장은 높고 그나마 철망과 가시 울타리로 막혀있어 골목집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어찌하고 살았는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두텁게 마무리된 용마루나 추녀를 지탱하고 있는 목재들을 보면 알 것 같다. 고대광실은 아니지만 나름 한옥의 멋을 지닌 집이다. 어울리지 않게 돌을 쌓아 올린 담장 때문에 툇마루며 칸칸 방문들은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산다 하는 사람들과 근대로를 따라 오고 갔을 사람들의 동선을 어림짐작해 보며 걷는 데는 좋은 골목이다.
좁은 골목 끝에도 여관이 있고 세탁소가 있다. 달셋방이라는 애환 어린 말도 살아 있다. 정부에서 나오는 돈을 받아 달셋방에 살고 급식소에서 끼니를 채운다는 경상감영공원의 노인의 얼굴을 보는 듯한, 천천히 걸어 들어갔을 그림자 또한 느끼는데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덤덤한 풍경으로 이어지는 골목.
골목을 빠져나와 다른 골목에 다다르니 개방식 문고가 보인다. 대구는 골목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도서관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골목 사람들을 위한 문고가 있었고, 골목의 담장을 터서 이웃끼리 대화를 나누고 전시회도 하고 주차공간을 서로 확보해주는 미덕이 있었다고 한다. 광주 대인시장에서 보았던 책수레처럼 잠시동안의 이벤트가 아니라 골목 안에 다양한 삶이 있듯이 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의 나눔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진골목에 있는 작은 문고에는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고 갈 만한 여유가 있어 보이고 그늘 또한 반갑지만 식후경이란 말처럼 뒷전으로 물러난 풍경이다. 관광객을 위한 보여주기 식으로 보이지만 뜻만은 좋다. 작은도서관 형태의 문고도 골목 골목에 있으면 좋을 것이다. 경로당에 그림책이 있고 소설책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농사달력 또한 인문학 서적이었듯이.
골목에는 뭔가 해보고 싶은 것들로 차 있다.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설치하고 지도를 만들어 돌고 돌게 하는 사업이 아니라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다시 들려주고 책으로 만들어서 읽게 만들고 싶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골목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손때 묻은 것들을 박물관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쓰였고, 무슨 말들이 오고 갔는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오래된 소아과 건물과 재력가의 고택이 식당으로 쓰여지고 그저 한 번 훑고 가는 기념물이 아니라 골목 그 자체로 다시 씌여졌으면 좋을 것 같다.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고양이가 있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대화가 있고, 간편하게 빨리 해치우면 사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이름들이 빛을 발하는 자산들이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골목에 볕이 들면 더욱 더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듯이 죽어지내다 간신히 외출하고 돌아오는, 애써 외면하며 지내는 식구들이 있는 골목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 ‘성당-고택-박물관-대로’로 이어지는 골목이 아닌 이야기가 있는 마을과 마을,
사람이 살고 있어서 골목지도가 세세해져서, 누구 누구네 집, 감나무집, 석류나무집, 새우젓 팔던 집으로 가는 골목이 강으로 가는 곳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 골목 답사와 구술 작업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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