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루이사 스파치아니는 앙증맞은 책 <몬탈레와 여우>에서 에우제니오 몬탈레와의 기나긴 우정과 영혼의 친밀성이 뚝뚝 묻어나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스파치아니와 몬탈레는 딱총나무 숲을 지나간다. 스파치아니가 늘 사랑하는 나무다. 왜냐하면 <이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속엔 빛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자잘한 꽃봉오리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법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이 예전부터 외우고 다니던 몬탈레의 시들 가운데 특히 사랑하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딱총나무 덤불의 뾰쪽한 탑들이 저 위에서 파르르 떠네.> 몬탈레는 딱총나무 앞에 감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스파치아니를 바라보며 말한다. <참 아름다운 꽃이군!> 그러고는 이게 무슨 꽃이냐고 묻는다. 순간 애인의 입에서는 상처 입은 동물이 터뜨릴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온다. 딱총나무를 그렇게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시인이 실제 딱총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몬탈레는 좀 머쓱한 표정으로 이렇게 변명한다. <뭐 그렇긴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문학은 말로 하는 거잖아> 나는 이 일화가 시와 산문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산문은 실제, 또 실제라고 상상하는 사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일 딱총나무를 이야기에 쓴다면 서술자는 당연히 그게 어떤 나무인지 안 뒤 상황에 맞게 묘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나무를 언급할 수 없다. 따라서 산문의 원칙은 <사물이 먼저고, 말은 그다음>이다. 만일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사물을 잘 알고 있으면 그에 맞는 말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즉 <말을 먼저 장악하면 사물은 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몬탈레는 자신의 시에서 묘사한 그런 전형적인 <부수물들>, 예를 들어 수확 후 남은 자잘한 곡식 더미, 불가사리를 품은 바닷말, 가시 식물, 끝을 자른 돈나무 산울타리, 새 잡이용 끈끈이가 잔뜩 달라붙은 깃털, 부서진 납작 기와, 황홀한 배추흰나비, 바위자고새들의 합창, 푸를라나 민속춤, 리고동 춤(이런 것들은 자신이 겪은 것들과 비교해보면) 같은 것들을 한 번 본 적이 없을까? 누가 그걸 알 수 있을까마는
그게 바로 시에서 말의 가치다. 시에서는 고여 있는 시냇물도 돌돌 말린 <낙엽>과 운을 맞추기 위해 <졸졸거리며> 흘러야 한다. 자연의 시냇물은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꿀렁거리기도 하고, 철퍼덕거리거나 신음하거나 헐떡거리디고 하지만 말이다. 순수 문학적 필요성은 강이 사부작거리며 아름답게 흐르길 원하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남기를/하나의 순환처럼 하루를 마무리 짓고/기억을 키우는 사물들 중 하나로 남기를>(몬탈레의 <오래된 시구> 중) 원한다. -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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